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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석의 정의로운 에너지] 감춰졌던 1970년대 고리 1호기 방사능 누출의 비밀

“발전소가 사흘들이(자주) 고장 났다 안카노”

우리나라 최초의 핵발전소 고리 1호기가 있는 부산 기장군 일대에 가면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지역엔 고리 1호기 건설 당시 인부로 참여했거나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진다. 이중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것이 고리 1호기 운영 초기인 1970년대 말 발전소가 수시로 멈추고, 그 때 방사능도 많이 누출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알기 힘들었다.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당시 고장이 많았다는 것 정도만 알수 있다. 1978년 4월 처음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1979년말까지인 1년 8개월 간, 총 29건의 고장이 있었다. 2017년 고리 1호기가 영구정지 될 때까지 총 고장·사고 건수가 131건(연평균 3.4건)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고장이 초기에 있었다. 당시에는 핵발전소 사고·고장 보고체계가 미흡했기 때문에 은폐된 다른 사건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많다. 하지만 이 역시 확인할 방법이 없다. 더구나 방사능 누출에 관한 것은 소문만 있을 뿐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되는 시점에 맞춰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 외벽에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촉구하는 구호를 빔으로 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되는 시점에 맞춰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 외벽에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촉구하는 구호를 빔으로 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그린피스 제공

38년 만에 밝혀진 충격적인 갑상선 피폭

그러던 중 최근 “균도네 소송”으로 널리 알려진 고리 핵발전소 인근 방사능 피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었다. 한수원의 전신인 한국전력이 1980년 작성한 “고리 1호기 환경방사능 종합평가” 보고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방출 액체에 따른 피폭 경로별 개인 최대 피폭선량”이 담겨 있는데, 1979년 인근 주민(성인)의 갑상선 최대 피폭선량이 연간 0.183mSv 였던 것이다. 이는 미국 NRC(핵규제위원회)가 정한 “원자로 1기에서 배출된 액체의 연간 피폭선량 한도 0.1mSv”의 2배에 가까운 수치이다. 같은 해 어린이의 갑상선 최대피폭선량은 0.205mSv, 유아는 0.296mSv로 피폭선량이 더 많았다. 이와 같은 수치에 대해 당시 보고서에서도 한전은 피폭선량 목표치를 약 3배 정도 상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 같은 결과가 나온 이유로 어류와 해조류 등을 많이 섭취하는 특성에 따른 것이라며 원인 분석까지 하고 있다.

그동안 한수원은 핵발전소 인근에서 피폭선량 한도를 넘은 방사성 물질이 배출된 적이 없다고 밝혀왔다. 일반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핵발전소에서는 계속 액체·기체 방사성 물질(핵폐기물)이 배출되고 있다. 작업복이나 장갑, 필터 같은 고체 상태 핵폐기물은 드럼통에 모아 핵폐기물로 보내지만 양이 많고 관리가 힘든 액체, 기체 상태의 핵폐기물은 상당량이 인근 지역에 배출되고 있다. 이는 고리 뿐만 아니라, 모든 핵발전소에서 공통적으로 이뤄진다. 다만 그 양이 피폭선량 한도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 그동안 한수원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자료가 발견됨에 따라 한수원의 설명은 거짓말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1980~1984년 사이에는 이러한 자료조차 없어 얼마나 많은 피폭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과 원전 주변 갑상선암 피해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과 원전 주변 갑상선암 피해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체르노빌·후쿠시마 같은 대규모 사고만 문제가 아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같은 대규모 핵발전소 사고로만 설명하곤 한다. 찬핵 진영은 이 논리를 바꿔서 이런 규모의 대형 사고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는 안전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핵발전소를 둘러싼 오랜 논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급 대형 사고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핵발전소 운영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바닷물로 배출된다.

이들 액체·기체 방사능의 존재는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지역주민들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해당 지역 농수산물 판매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해야 애써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결국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또한 핵발전소 인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고통 받는 인근 지역주민들의 싸움을 고립시킬 따름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고리 뿐만 아니라, 월성, 영광, 울진 등 모든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이 갑상샘암 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경주 월성에서는 벌써 4년 넘게 인근 지역주민들이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단지 대형사고가 일어나지 않아 핵발전소는 문제가 없다거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전기요금이 올라가고 핵산업계가 붕괴한다며 연일 포화를 쏟는 이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단 한 번만이라도 진솔하게 들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끊임없이 방사능을 쏟아내는 핵발전소가 과연 안전하며, 지역주민들의 오랜 요구가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이제는 들어야 할 때이다. 그들은 단지 핵발전소 인근에 살았다는 이유로 계속 방사능에 노출되고 있다. 그동안 차별받아온 그들의 목소리를 이제 우리가 들어야할 때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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