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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석의 정의로운 에너지] 차라리 서울에 핵폐기물을 보관하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5년 전인 2004년 1월, 당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과장이던 강창순 교수는 황우석 교수 등 서울대 교수 7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서울대 관악캠퍼스 지하에 핵폐기장을 유치하자고 주장했다. 훗날 원자력안전위원회 초대 위원장이 된 강창순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순수한 학자적 양심과 애국심에서 드리는 건의”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서울대 교수 63명 이름으로 발표된 이날 건의문에서 이들은 “주민 안전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확신을 바탕으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며 심경을 밝혔다. 기자회견 이후 관악구 주민들이 핵폐기장 건설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서울대 대학 본부나 관악구가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하지 않음에 따라 이날 기자회견은 한차례 소동으로 끝나버렸다.

그들이 관악산에 핵폐기장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의사가 얼마나 있었는지 그 속뜻은 잘 모르겠다. 이날 기자회견 이후 자신의 주장을 계속 이어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부안 핵폐기장 문제로 전국이 떠들썩하던 때라 원자핵공학과 교수들을 중심으로 핵폐기장의 안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종의 퍼포먼스를 한 것 아닌지 추측해 볼 따름이다.

2004년 1월 7일 강창순 원자핵공학과 교수(가운데)와 생명공학계의 권위자 황우석 수의과 대학 교수 등 서울대 교수 60여명이 지난 7일 원전 수거물 관리 시설을 서울대 부지 내 관악산에 유치하자고 제안하는 회견을 하고있다.
2004년 1월 7일 강창순 원자핵공학과 교수(가운데)와 생명공학계의 권위자 황우석 수의과 대학 교수 등 서울대 교수 60여명이 지난 7일 원전 수거물 관리 시설을 서울대 부지 내 관악산에 유치하자고 제안하는 회견을 하고있다.ⓒ자료사진

만약 당시 그들이 더 적극적으로 핵폐기장 서울 유치운동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본다. 지금 핵산업계와 보수야당, 보수언론이 똘똘 뭉쳐 ‘탈원전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당시 그들의 주장처럼 정말 안전하게 핵폐기물을 관리할 방안이 있었다면, 서울대가 있는 관악산이든 국회가 있는 여의도이든 장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현대그룹에 비싼 값에 팔렸지만, 당시엔 한전 본사가 삼성동에 있었으니 땅 값이 조금 비싸긴 하겠지만 서울 강남에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15년 동안 핵폐기물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었다. 2004년 2월, 부안군민들의 주민투표로 부안 핵폐기장 건설 계획이 백지화된 이후, 정부는 고준위와 중저준위핵폐기장 건설 계획을 분리했다. 당시 정부는 각종 금권·관권 논란에도 경주와 군산 등 전국 4곳에서 주민투표를 진행했고, 그 결과 2005년 경주가 중저준위핵폐기장 부지로 확정되었다. 하지만 3년이면 완공할 수 있다던 중저준위핵폐기장은 지질 문제로 건설공사가 지연되어 10년이나 걸렸다.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는 2013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만들어져 1년 반이나 공론화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국민 다수는 그런 공론화가 있었는지 조차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사이 정부에 대한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의 불신은 계속 높아졌다.

일부에서는 이제 와서 또다시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핵발전소마다 설치된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고가 가득 차게 되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발전소를 가동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시급할 것이다. 고준위핵폐기물을 보관할 임시저장고가 없으면 핵발전소를 멈춰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기존 핵발전소 부지에 추가로 임시저장고를 지을 계획을 추진해왔다. 이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발은 매우 크다. 점차 핵발전소는 수명을 다해 하나둘 폐쇄되어가고 있는데, 지금 임시저장고를 지으면 향후 50년 동안 핵발전소 부지 안에 두어야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기존 핵발전소 지역이 핵폐기장으로 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국의 경우, 해체를 마친 핵발전소 부지에 핵폐기물만 덩그렇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처분장을 건설할 기술이나 부지를 찾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 기존 발전소 부지에 두는 것이다. 발전소 운영 기간 동안 핵발전소가 인근 지역주민들의 걱정이었다면, 해체 이후엔 핵폐기물이 또 다른 걱정거리가 된 것이다.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와 시민환경연구소 공동 주관으로 25일 오후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고준위핵폐기물 원탁토론회’가 열렸다.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와 시민환경연구소 공동 주관으로 25일 오후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고준위핵폐기물 원탁토론회’가 열렸다.ⓒ환경운동연합 제공

처음 핵발전소를 지을 때, 농어촌 지역인 핵발전소 지역에서 전기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곳에 핵발전소를 지은 것이 아니다. 정부는 그동안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해당 지역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해왔다. 탈핵운동 진영이 핵발전소의 위험성과 함께 핵폐기물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으나, 그동안 정부는 이런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와서 “시급한 해결”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 “그동안처럼 고준위핵폐기물을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이 계속 갖고 있어라”는 말처럼 들린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핵폐기물”, “핵쓰레기”라는 말은 종종 욕처럼 쓰이기도 한다. 그만큼 사람들이 싫어하는 물질이다. 나는 양심과 애국심에서 핵폐기장 서울 유치를 주장했던 서울대 교수들이 더 이상 주장을 이어가지 못한 것 또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이 핵폐기물 저장을 둘러싼 과학적 논쟁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많은 나라에서 연구를 하면 할수록 과거에 발견되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폐기물을 핵발전소가 위치한 5개 지역 주민의 책임으로만 떠넘기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이 책임은 1차적으로 그동안 핵폐기물에 대한 대책과 기술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와 핵산업계의 탓이 크다. 그리고 이들을 탓하는 것과 별도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이 엄청난 쓰레기를 어찌해야 할 것인지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의 양심과 연대의식,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말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도 대책 없이 핵폐기물을 양산하고 있는 핵발전소를 어찌할지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핵발전을 사랑하는 이들의 주장처럼 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그들이 더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서울에 핵폐기장을 유치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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