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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석의 정의로운 에너지] 지역주민 무시해도 되는 법·제도 언제까지 그냥 둘 것인가?

핵발전소나 석탄화력발전소처럼 환경적 논란이 많은 시설만 지역주민들과 갈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소 같은 재생에너지 시설도 지역주민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을 단순히 지역이기주의 –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보상금을 노린 반대 운동이나 가짜뉴스에 속아 잘 모르고 하는 일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일부 지역에서 처음부터 적지 않은 보상금을 요구하다 지역주민들끼리 갈등을 빚거나 ‘중금속 덩어리 태양광 패널’ 같은 가짜뉴스가 혼란을 일으킨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인천 동구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월 26일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주민 총궐기대회를 열고 건설 계획 백지화를 촉구했다.
인천 동구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월 26일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주민 총궐기대회를 열고 건설 계획 백지화를 촉구했다.ⓒ비대위 제공

주민 모르게 추진된 연료전지 발전소 건설 사업

최근 갈등을 빚고 있는 인천 동구 연료전지 발전소 문제를 한번 보자.
한수원과 두산건설 등은 인천 송림동 두산인프라코어 공장 부지에 39.6MW 급 연료전지발전소 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2017년 6월, 인천시, 인천 동구청과 사업추진 양해 각서(MOU)를 체결했다. 발전소에서 200~300 미터 떨어진 곳에 아파트 단지가 있지만, 이 곳의 주민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양해각서 채결 이후 구청장과 구의원들을 대상으로 간담회가 진행되긴 했지만,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제대로 된 설명회는 없었다. 아파트 단지별로 2~7명 정도의 입주자 대표를 모아 설명한 것이 전부였다.

그 사이 발전사업자는 건설공사 준비를 하나씩 진행해 나갔다. 2018년 12월 산업부 전기위원회는 인천연료전지 발전소 건설 허가를 승인했다. 전기위원회 제출 서류에 ‘지역주민 수용성 제고’ 항목이 있었지만, 별도의 민원이 들어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단서조항도 없이 발전소 건설이 허가되었다. 발전사업을 허가하는 전기위원회는 발전사업자가 무리 없이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허가를 내준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자의 기술력이나 재정 건전성, 자금확보능력 같은 것이다. 발전소 건설 허가를 내주었는데, 부실한 사업자가 발전소 건설을 못하게 되면 전력수급에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풍력발전소 같은 재생에너지 시설에 대한 민원이 많아지자 ‘지역수용성’이 심사항목에 추가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지역주민들이 설명회·공청회를 요구했을 때 노력을 했는가’ 여부를 심사한다. 인천연료전지 발전소처럼 지역주민들이 사업 진행 여부를 몰라 요구조차 없었다면 ‘해당사항 없음’으로 발전사업이 허가되는 것이다.

현행 제도상 환경영향을 검토하는 것은 산업부 소관이 아니라, 환경부 소관이다. 하지만 인천연료전지 발전소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현행 환경영향평가법은 100MW 이상 연료전지 발전소의 경우에만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조항이 만들어진 지 20여 년이 되었지만, 아직 단 한 차례도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100MW 이상 되는 연료전지 발전소는 없기 때문이다. 연료전지 발전소는 화력발전소에 비해 규모가 작고 유해 화학물질이 적게 나오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어떤 유해물질이 얼마나 나오며, 지역주민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실증적 연구는 진행된 적이 없다. 연료전지발전소라는 것 자체가 신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주민들은 연료전지 발전소가 어떤 환경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궁금해하지만 이를 속시원하게 답해줄 수 있는 자료는 없는 것이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지역주민들이 올해 1월 중순 처음으로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직후 다급해진 인천 동구청장은 일체의 행정절차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지역주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이 발전소가 처음에는 인천 송도에 건설될 계획이었으나 부지 활용 등의 문제로 옮겨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도심인 인천 동구 주민들의 상실감은 더욱 커졌다. 현재 지역주민들이 접할 수 있는 자료는 발전사업자 홈페이지에 올려진 20여 페이지 분량의 파워포인트 자료와 허위사실 유포하면 형법에 저촉된다는 자극적인 문구가 크게 적힌 유인물 정도가 전부이다.

허인환 인천시 동구청장은 18일 동구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료전지 발전소 건립을 위한 모든 행정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허인환 인천시 동구청장은 18일 동구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료전지 발전소 건립을 위한 모든 행정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동구청 제공

개발주의 시대가 남긴 적폐

안타깝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합법이다. 발전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법과 제도를 잘 지키며 절차를 밟아왔는데, 갑자기 지역주민들이 나타나 반대 운동을 벌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사업자와 정부, 지자체가 지역주민 몰래 사업을 추진하다 발각된 것처럼 보인다. 법과 제도가 필요한 이유가 이런 시각 차이를 줄이고 문제점을 바로 잡기 위해서이다. 현행 전기사업법이나 전원개발촉진법은 더 많은 발전소를 손쉽게 건설하기 위해 만든 개발주의 시대의 발명품이다. 발전사업 허가만 나면 20여 개 관련 인허가를 얻은 것으로 인정해주고, 공청회나 설명회는 형식적으로 진행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다 보니 정부와 발전사업자는 매번 ‘왜 이제와서 그러냐’라고 하거나 ‘이미 투자한 금액이 많아 어쩔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이런 불합리한 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를 수십 년째 시민사회단체와 해당 지역주민들이 하고 있으나,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 동구 주민들은 연료전지발전소 건설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계획하고 있다. 인천에서 주민투표가 진행된다면, 부안, 삼척, 영덕, 기장에 이어 에너지 현안에 대한 5번째 주민투표이다. 이들 주민투표는 핵발전소와 관련한 주민투표였다는 공통점 이외에도 정부가 주민투표를 인정하지 않았던 ‘법외 주민투표’라는 공통점이 있다. 심지어 주민투표가 진행될 때 ‘불법주민투표’라며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말라는 반민주적 행위까지 벌어졌다. 현행 주민투표법은 국가 사무, 즉 국책 사업에 대해서는 주민투표를 불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선동이 정책 결정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를 꺽을 수는 없었다. 공정한 주민투표가 진행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자발적 모금과 연대 운동이 벌어졌고, 그 결과 매번 주민투표는 성사되었다.

어쩌면 인천 동구의 주민투표도 비슷한 길을 겪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앞선 4번의 주민투표에서 모두 지역주민들의 뜻이 실제 정책에 반영되었던 것처럼, 이번 주민투표도 그 결과를 아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 만들어진 법과 제도는 다양한 문제점을 낳고 있고 ‘에너지 민주주의’를 직접 만들고자 하는 우리 국민의 의지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계속 주민투표가 거론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역동적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우리의 법·제도는 아직 개발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역주민의 알 권리, 선택권은 계속 무시되었고, 발전사업자에게는 다양한 혜택과 권한이 주어지고 있다. 뒤늦게 사안이 알려져 우리 사회가 겪어야 할 사회적 비용은 지역주민이나 발전사업자 모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다. 시대에 맞지 않고 문제만 일으키고 있는 현행 법제도야 말로 개발주의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적폐이다. 이제 이것을 어떻게 없앨지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한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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