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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엄마의 그림일기] 홍천아 고마워, 우리를 잘 부탁해

작년 2월에 홍천으로 이사왔으니까 벌써 1년이 넘었다. 복잡하고, 사람들이 와글와글 많이 살던 성남을 떠나 생각지도 못했던 홍천에 오게 되어 느꼈던 그 낯설음이란. 시골마을도 아니고 400 가구 정도의 외곽 작은 아파트인데도 일찍 깜깜해져서 여기가 혹시 유령마을은 아닐까 하며 혼자 섬뜩해 하기도 했다. 깜깜함이 이렇게 낯선 일이었다니.

2014년 UN 세계도시화 전망에 따르면 2050년에 이르면 전세계 인구의 75%가 도시에 거주한다고 하는데 점점 커지는 도시를 뒤로하고 우리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미 4년을 주말부부를 하다가 더이상은 아닌 것 같아 내린 결정이었다. 아이들은 전교생 60명 정도가 다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시골이라 지역이 넓어 스쿨버스가 8시 40분에 아파트 앞으로 태우러 온다. 아이들은 난생 처음 타는 스쿨버스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 스쿨버스 덕분에 학교가기 싫다는 소리를 거의 안한다. 고학년이 되면 언니들처럼 맨 뒷자리를 차지하기를 고대하면서...

너의 첫걸음을 응원할게
너의 첫걸음을 응원할게ⓒ박지선

“엄마 여기 애들은 성남 아이들과 다른 게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떨어뜨렸다’를 ‘떨겼다’라고 하고 성남에서는 ‘팀을 뽑자 데뎀찌~’ 그랬는데 여기 애들은 ‘어글렀다 찌글렀다 할 수 없다 위! (아래!)’ 그래.”

홍천은 강원도 억양이나 사투리 같은 건 못 느끼는데 지역마다 조금씩 특성이 있다.

“엄마가 해남에서 성남으로 너만 할 때 전학을 갔어. 성남 애들만 쓰는 말이 있었다. 여자친구끼리 부를 때 ‘야얘!’ 그러는거야. 얼마나 다정한 말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요즘 애들도 쓰는지 모르겠네? 다른 지역 사람들은 모를 것 같은 지역 특유의 그런 말이 있더라”

아이들은 같이 놀아야 하니 놀이언어부터 배우고 그 다음으로 학교에 있는 잣나무 아래에서 작년 가을에 떨어진 잣을 주워 돌로 깨뜨려 먹는 걸 배웠다. 친구들은 잘도 까서 먹는데 우리 아이들은 깰 때 힘조절이 서툴러 잣까지 뭉개져 버리는 것이다. 아! 그 미묘한 힘의 차이란... 부단한 연습과 숲향기 가득한 잣맛을 아는 아이만이 아는. 나는 우리 아이들이 부지런히 잣까기를 연습해서 껍질만 깨지고 잣은 상하지 않을 만큼의 힘주기를 몸으로 터득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매일 “오늘은 잣을 잘 깠니?” 하고 물어보며. 세상은 그 미묘한 힘의 차이로 변화가 시작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몸으로 배운 건 잊어먹지 않으니까.

3월 한 달 동안은 학교 주변이 논밭이라 거름냄새가 진동해서 코를 싸쥐고 다녔다. “다 좋은데 거름냄새만은 정말 토나올것 같아! 시골학교는 이게 정말 안 좋다니까”하고 투덜투덜, 우엑우엑 한다.

“우리가 먹는게 다 거름으로 키운 거야. 좀 힘들어도 금방 지나갈 거야.”

마트에 가면 농산물들이 흙 하나 묻어있지 않고 반들반들하게 비닐포장 되어 있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다.

새싹은 어떻게 나는지, 흙냄새는 어떤지, 꽃은 어떤 모양으로 피는지, 열매는 어떻게 성장하는지 늘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면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 다행이 아이들은 시골학교로 난데없이 공간 이동을 하는 바람에 선생님과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논밭 사이를 산책하기도 하고, 오고가며 푸르러지고 누릿해지는 자연의 변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대자연의 품에서 주말이면 삽을 들고 흙을 파고 놀고, 야심차게 기르기 시작한 토끼들 먹이 공수하느라 한여름 땀 흘리며 풀을 베러 다니기도 하고. 계절마다 길가에 너무나 다양한 모습으로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감탄하고, 대륭 저수지에 날아드는 가마우지와 원앙을 구경하러 가고. 회색 도시에서 온 우리에겐 너무나 신기하고 감탄사가 나오는 일투성이다.

삽과 나뭇가지를 들고 오늘도 바쁜 아들
삽과 나뭇가지를 들고 오늘도 바쁜 아들ⓒ박지선

감탄사 나오는 일이 하나 더 있다면 2학년 아들이 줄넘기를 제법 잘 하게 된 사실이다. 작은 학교 몇 개를 묶어 체육선생님이 요일마다 학교를 돌아가며 다니시는데 등교한 첫날 체육을 겪은(!) 큰딸은 집에 돌아와 울며불며 온몸이 아프다고 내일은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속을 태웠다. 아이들이 열 명이라 구르기도, 셔틀런도 대충하는 법이 없이 매서운 눈으로 지도하시는 것이다. 전에 학교에선 체육시간에 대충 서 있다가 시늉하다가 끝났는데 여기선 도무지 선생님 눈길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해찬아! 작년엔 줄넘기를 그렇게 못하더니 어떻게 잘하게 되었어?”
“응 체육 선생님이 계속 나를 보면서 고래고래 하시잖아.”

첫 3월, 4월 체육이 있는 날은 집에 돌아와서 뻗어버리기 일쑤.

“엄마! 여기 애들은 정말 체력하나는 짱인 것 같아” 만날 알배겼다며 끙끙대며 어기적거리며 다니는 우리 아이들에 비하면 날아다니는 물찬제비들 같달까.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도 올라가서 놀고 시냇가에서도 노는 방법을 알려주는 고마운 친구들. 진짜 너무 너무 고맙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홍천아 우리를 잘 부탁해!
따뜻하게 품어 주어서 고마워!

*편집자 주 - 강원도 홍천에서 12살 딸, 10살 아들을 키우는 마을활동가 박지선씨의 기고를 새로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박지선 마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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