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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현의 교육희망] 교장이 바로 서야 교육이 산다

“교장은 교무를 통할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가 교장에게 부여한 임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교무 통할, 교직원 지도·감독, 학생 교육)에 대한 권한은 교장이 행사한다.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는 물론 운동장의 풀 한 포기를 옮기는 일도 법령상 교장의 권한이다. 정부수립 후 50년 동안 우리나라 교육을 지배했던 교육법 제75조는 “교사는 교장의 명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라고 규정했었다. 교사를 교장의 명을 수행하는 도구적 역할로 제한했던 교육법 제75조는 전교조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교육 민주화 요구에 따라 1998년에 폐지되었다. 당시의 교육법을 대체한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교사는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라고 했다. 교사의 임무를 교장의 명이 아닌 법령을 따르는 것으로 새롭게 규정하였다. 그러나 교장에게 부여했던 막강한 권한은 그대로다. 군부독재 시대만큼 교장 권력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나, 학교는 여전히 교장 개인의 능력과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아직도 학교는 제왕으로 군림하는 학교장의 갑질 사례로 넘쳐난다. 비민주적인 학교에서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교육기본법의 교육이념을 실현하는 일은 요원하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를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를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민중의소리

권력이양 증명서로 전락한 교장자격증

교육자치와 학교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교장에게 집중된 권한과 더불어 현재의 교장승진제도 때문이다. 국·공립학교의 교장 임용은 교육공무원법 및 관련 법령에 따르며, 근무평정, 연구·연수 평정, 가산점 평정, 경력 등을 통해 부여한 교장자격증에 기반을 둔다. 현장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행정편의주의와 권위적 관료주의의 산물로 여겨져 왔다.

작년 2월에 참교육연구소가 실시한 ‘교장공모제에 대한 교사의견조사’ 결과는 이 사실을 확연하게 뒷받침한다. 전국 유·초·중·고 교사 2,158명(가입단체별 전교조 22.5%, 교총 23%, 기타 단체 5%, 단체 미가입 49.5%)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현행 교장자격증을 기반으로 한 교장승진제도가 실제 교장의 전문성을 보장하는가’라는 물음에 28.2%가 긍정, 71.8%가 부정적으로 답변하였다. 학교현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물었다. 현행 승진제도가 ‘연구활동에 매진하고, 기피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교사들에게 승진기회를 줌으로써 교원들의 사기를 높여주는가’라는 질문에 37.8%가 긍정, 62%는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또 ‘승진 경쟁으로 교육활동에 소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72.8%가 동의했고, 27.2%는 동의하지 않았으며, ‘근무평정 등으로 인해 관리자의 눈치를 보며, 권위주의적 학교문화가 지속되는가’라는 질문에는 74.6%가 동의했고, 25.4%는 동의하지 않았다.

대다수 현장 교사들은 현행 근무평정과 가산점에 바탕을 둔 자격증은 교장의 전문적 역할 수행과 상관이 없고 오히려 교육활동을 소홀하게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권위적인 학교문화의 원인으로 현행 교장승진제도를 지목하였다. 근무평정에서 교장이 주는 점수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현 교장이 승진점수를 매개로 다음 교장을 만들어줄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한다. 결국 다수의 교사들은 교장자격증을 교육전문성 보증서가 아니라 권력이양 증명서로 본다. 이러한 제도에서는 협력적 조정자로서의 수평적 리더십을 갖춘 민주적 교장이 나오기 어렵다. 학교가 좀처럼 변하지 않으며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항에 부딪혔던 내부형 교장공모제

20여 년 전부터 전근대적 교장자격증제와 교장승진제의 대안으로 교장선출보직제가 제시되었다. 교장 직책을 승진이 아니라 보직 개념으로 보자는 것이다. 학교 구성원들의 자치역량을 강화하고, 집중된 제왕적 권한을 분산하며, 교장에게 민주적 조정자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교장을 선출하고 임기를 마치면 다시 교사로 돌아가도록 하는 제도다. 한번 자격증을 따면 다른 신분을 획득한 것처럼 계속 군림하는 교장이 되는 권위주의적 학교문화를 개혁하자는 취지다.

노무현 대통령은 ‘교장보직제와 학교자치’를 공약으로 제시했고, 인수위는 ‘교장보직제를 포함한 교장임용제도 다양화’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교장보직제를 정책화하지 못했다. 대신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혁신위는 2005년 교장제도 개선안으로 ‘교장공모제’를 제시하였다. 교장공모제의 유형을 초빙형, 내부형, 개방형으로 나누고, 초빙형은 교장자격증 소지자를, 내부형은 15년 이상의 교육경력자를, 개방형은 관련 분야에서 3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자를 공모자격 기준으로 삼도록 했다. 교장자격증제를 완전히 폐지하여 보직 개념으로 나가지는 못했지만, 자격증에 구애받지 않고 교육활동에 헌신한 능력 있는 교사가 교장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정책이었다.

교육혁신위가 마련한 개선안을 근거로 2007년부터 6차에 걸쳐 291개 학교에서 교장공모제를 시범 운영하였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한 성과분석을 교육개발원에 위탁하였다. 이에 대한 보고서인 ‘교장공모제 성과분석 및 세부시행모형 개선 연구’(연구책임자 김갑성, 2010년)에 따르면 민주성, 유능함, 학력 신장 등 8개 전체 항목에서 교장 자격증이 없는 평교사가 응모할 수 있는 내부형 공모제가 1등을 차지했다. 이는 앞선 연구였던 ‘교장공모제 학교의 효과 분석’(연구책임자 나민주 충북대 교수, 2008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장자격증과 교장의 능력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 객관적 연구 결과를 통해 증명된 것이다.

그러나 교장 기득권을 옹호하는 한국교총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내부형 교장공모제 저지를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하면서 공식 문서에 ‘청와대, 국정원 등 협조요청’을 담은 것이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했다. 이들의 요구를 반영한 이명박 정부는 2009년 초중등교육법시행령으로 내부형 공모교장 임용비율을 자율학교 중 신청학교의 15% 이내로 제한했다. 2011년, 긴 논의 끝에 교장공모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15% 제한 조항은 교육공무원임용령에 그대로 옮겨 남아 실질적으로 내부형 공모제를 무력화시켰다. 9,955개의 전체 국·공립학교 중 2017년 12월까지 평교사가 내부형 교장공모제에 진입한 인원은 56명으로 0.56%에 불과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문재인 정부에 교장공모제 확대를 철회할 것을 주장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문재인 정부에 교장공모제 확대를 철회할 것을 주장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교장공모제 확대 가로막는 한국교총과 자유한국당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과 국정기획자문위 5개년 계획에서 교장공모제 확대를 약속했다. 내부형 교장공모제 자율학교 비율 15% 시행령부터 폐지하고자 했다. 적어도 자율학교 중 신청학교에 대해서는 모두 평교사도 진출할 수 있는 내부형 공모제를 도입하고자 했다. 그러나 교장 기득권을 지키려는 교총과 자유한국당은 끊임없이 무자격 교장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방해했다. 결국 2018년 3월 13일, 신청 자율학교의 50%로 후퇴한 안을 확정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전에 비해 평교사 출신의 내부형 공모 교장이 대폭 늘어나면서 학교 혁신의 사례가 유의미하게 축적되고 있다. 이에 비례하여 기득권 세력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현재 각 시·도교육청은 2019. 09. 01 공립학교 교장공모제 시행을 위한 계획을 추진 중이다. 시·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5월 말까지 운영학교 지정을 신청받아 6~7월 중 추진하여 9월 1일에 임용할 계획이다. 여전히 관심과 논의의 대상은 교육경력 15년 이상의 평교사가 응모할 수 있는 자율학교와 자율형 공립고의 내부형(B) 공모 유형이다.

교장자격증을 신주 단지로 모시는 사람들은 첫째, 지난 공모 과정이나 절차에서 나타난 흠결 또는 공모 교장 학교의 일탈 사례를 찾아 침소봉대하며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공격한다. 전형적인 흠집내기 수법이다. 갑질과 부정부패, 비민주적 교육행정이 나타나는 학교의 교장은 교장자격증을 갖고 승진한 분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둘째, 평교사 교장을 여전히 무자격 교장이라 부른다. 교장자격증이 전문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은 이미 다양한 연구 논문과 여론조사 그리고 현장 교사들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셋째, 그들은 평교사는 시야가 좁아서 교감 경험 없이 교장이 되면 학교 운영이 미숙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장, 교감이 평교사보다 학교 전체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맞다. 처음부터 시야가 넓은 자가 교장이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을 존중하며 넓게 보고 두루 들으면 시야가 넓어지게 마련이다. 그동안 교장자격증 미소지 내부형 공모 교장이 다양한 혁신 사례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오히려 구성원들과 함께 민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학생을 중심에 두고 교육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넷째, 전교조가 공모 교장을 휩쓴다고 공격한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면 무조건 그 선거가 잘못된 것인가? 선거제를 폐지하고 유신정권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부활해야 하는가? 공모 교장은 해당 학교 주체들의 엄정한 심사 과정을 거친 선택의 결과다. 특정 교원단체 소속의 교사들이 결과적으로 많았다면 이는 그 교원단체가 현장에서 신뢰받고 있다는 증거다. 더구나 불공정 시비를 피하기 위하여 전국의 모든 시·도교육청은 더욱 엄격하고 공정한 공모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사립학교에서도 교장공모제 도입해야

지금까지의 논의는 모두 국·공립학교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다. 그런데 아주 큰 부분을 빼놓고 있다. 바로 사립학교 교장임용제도다. 중학교의 20%, 고등학교의 40%가 사립이다. 특히 서울은 중학교의 28.4%, 고등학교의 62.5%가 사립이다.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오히려 고등학교만을 두고 교장승진제도를 얘기하려면 오히려 사립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 사립학교 교장은 공립학교 교장이 갖는 제왕적 권한을 그대로 갖고 있다. 그런데 사립 교장은 철저하게 자신의 임용권을 쥐고 있는 학교법인 이사장의 영향력 안에서만 제왕이다. 사립학교법 제16조는 이사회에 학교법인이 설치한 사립학교의 장 및 교원의 임용에 관한 모든 사항에 관한 권한을 부여했다. 명목상으로는 이사회에 부여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학교법인을 대표하고 사립학교법과 정관에 규정된 직무를 행하며 기타 학교법인 내부의 사무를 통할하는 이사장에게 부여한 것과 같다. 사립학교 교장 임용에 관한 사립학교법은 다음 조항이 전부다

사립학교법 제53조(학교의 장의 임용) ①각급학교의 장은 당해 학교를 설치·경영하는 학교법인이 임용한다.

사립학교 교장은 ‘학교법인이 임용한다’라는 법률 조항만 있을 뿐 교총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교장 자격증이나 기타 임용 방법과 절차에 관해 아무런 규정이 없다. 교총의 주장에 따르면 대한민국 사립학교 교장은 100% 무자격 교장인 셈이다. 공립의 승진점수 관리에 따른 교장자격증 제도는 사립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것이다. 사립은 이사장과 측근 몇 사람의 의도에 따라 누구나 교감도 되고 교장도 된다.

며칠 전 학생들을 부적절하게 술자리 공연 등에 동원해 물의를 빚고 퇴직한 서울공연예술고 교장 박모 씨가 인천의 다른 사립중학교에 초빙 교장으로 임용되었다가 전교조와 서울시교육청의 문제제기로 제동이 걸린 사실이 보도되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 결과에 따라 파면 요구를 받은 박 씨를 공연예술고 이사회는 퇴직처리를 했다. 그는 퇴직한지 불과 보름 만에 다른 사립중학교 교장으로 임용되었던 것이다.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이었던 박 씨는 새로 교장으로 임용된 사립중학교의 개방 이사이고, 이 사립중학교 이사장은 공연예술고 개방 이사이다. 이 사립중학교 이사장이 박 씨를 교장으로 초빙했다고 한다. 사립학교 교장 임용제도가 얼마나 후진적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사립학교 역시 공립과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의 민주적 절차에 따른 교장공모제를 도입해야 한다. 공립이든 사립이든 교장이 바로 서야 학교가 산다.

권종현(전교조 부대변인, 우신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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