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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엄마의 그림일기] 이것으로 충분하다

시골에 있다 보니 저녁 시간엔 밖으로 다닐 일이 거의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녁이 되면 깜깜해지고 아침이 되면 환하다. 홍천에서 두어 달 살다가 간만에 아이들과 성남에 갔는데 복잡한 도시의 밤길을 걸으니 아이들이 황홀한 얼굴로 “엄마! 엄청나게 반짝반짝 해요!”한다. 두어달 만에 본 도시의 밤은 정말 눈이 부시도록 반짝반짝 했다. “시골에서 갓 상경하면 어지럽다고 하던데 괜찮아?”하고 농담하시는 선배님이 계신데 정말이지 도시를 갈 때마다 너무 어지럽다. 길거리를 지나면 눈을 붙잡는 새로운 신상품들... 반짝 반짝 세련된 가게들. 행여나 놓칠세라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잠깐 사이에도 변한 것이 너무 많아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도시가 이렇게 설렘을 주고 소비를 유혹을 하는 곳이라면 홍천살이는 거의 금욕생활과 다름이 없다. 소비를 참으려고 노력한다기보다는 물욕자체가 안 생긴다고 할까.

홍천으로 이사 오면서 많은 짐을 정리하고 냉장고도 세탁기도 없이 살려고 했다.

가전제품 없이 못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가 냉장고를 처음 본 게 1986년이었는데 그 후 33년 동안 내 주변을 하루도 떠나지 않고 항상 윙윙 돌고 있다. 결혼할 때 주변 분들이 냉장고는 무조건 커야 한다고 하셔서 비좁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양문형 냉장고를 사서 이사를 갈 때마다 문짝을 떼서 끼워 넣었는데 10년 후에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이 냉장고는 터무니없이 크다는 걸. 사실 없어도 된다는 것을. 홍콩 사람들이 장수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음식에 한약 재료를 넣어서 먹는 것, 둘째는 집에 냉장고가 없는 것, 셋째는 좁은 골목을 걸어 다니는 것이라고.. 항상 골목의 가게에서 신선한 식재료를 사서 바로 조리해 먹는단다. 우리는 냉장고 없이 사는 방법을 불과 30년만에 다 잊어 버렸다. 조금만 나가면 신선한 음식들을 바로 살 수 있는데도 말이다. 없애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반대와 주변분들의 우려로 반쪽짜리 작은 냉장고로 결정했다. 전보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양은 줄어들었고 집 공간은 더 여유로워 졌으며 식구들은 건강해졌으리라.

눈을 감고 먹으면 더 맛있는 아이스크림
눈을 감고 먹으면 더 맛있는 아이스크림ⓒ박지선

세탁기도 그렇다. 적은 옷을 아껴 입고 깨끗하게 오래 입으려면 손빨래가 훨씬 낫다. 자기 전에 몇 분정도 빨래하고 꾹 짜서 널어놓는다. 보통 계절에 주로 입는 옷은 몇 개 없기 때문에 손빨래로 최대한 옷의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노력한다. TV는 볼 시간도 별로 없고 각종 걸러지지 않는 사고방식들이 쏟아지는게 불편해서 안 보는 쪽으로. 그래서 TV도 없다. 에어컨도 없이 한여름을 난다. “엄마!! 작년에는 정말 뜨거운 여름을 보냈어요.. 학교 버스가 세상에서 가장 시원했다는...” 한 여름엔 꾹 참고 1-2주일을 엎드려 지낸다. 복날의 복자가 엎드릴 복자라고 하지 않는가! 세 번 엎드리면 무더위가 간다고. 너무 더울 땐 도서관 에어컨을 공유한다.

그 이외에도 남들은 세 개씩 놓고 산다는 공기청정기도 없고 전자렌지도, 전기밥솥도, 에어프라이기도 없다. 달랑 스텐리스 후라이팬 하나, 30년 넘은 시어머니가 물려주신 압력밥솥 하나, 냄비 한 개로 모든 조리를 다 해결한다. 물론 식기 세척기가 있으면 저녁시간이 훨씬 여유로워 지지 않을까, 건조기가 있으면 가사노동이 획기적으로 줄고 아이들과의 시간이 더 생기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단촐하게 사는게 청소부담도 적고 무엇보다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덜 쓴다는 작은 보람 같은 것이 있다.

없어도 생존에 지장을 받지 않는 물건들은 사지 않고 돈과 소비에서 자유로와지기, 더 특별한 삶의 의미 찾기가 홍천생활의 첫번째 목표다. 그래서 아이들과 산책하기, 차 마시며 이야기하기, 도서관에서 책읽기, 그림그리기, 아름다운 자연 감상하기 등등으로 더 시간을 쓰고 싶다.

홍천에서 만난 꽃차
홍천에서 만난 꽃차ⓒ박지선

“얘들아! 돈을 버는 건 정말로 힘든 일이야. (때론 앓아누울 정도로 힘들다ㅠ) 근데 힘들게 돈을 벌어서 고민 없이 쓰는 사람이 많아. 자칫 생각을 놓치면 우리 주머니에서 의미 없이 돈이 빨려 나가는 거야. 그래서 어렵게 돈을 버는 만큼 쓰는 것도 어렵게 써야 돼. 이것이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인지, 만들어진 생각인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한 달에 이틀정도는 냉장고를 끄고 기간을 조금씩 늘리고 싶은데 조금 불편해지기가 그렇게도 어렵다. 가끔 도시에 나가면 보이는 대로 사오고 싶어 귀는 한없이 얇아지고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도 넘치게 충분하니 물건보다 시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보자!

박지선 마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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