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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화 칼럼] 지켜야 할 ‘선’과 ‘냄새’

“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냄새는 호흡과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냄새가 자신의 형제와 함께 그들 사이에 나타날 때 그것을 도저히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인간의 가슴 속으로 들어간 냄새는 그곳에서 관심과 무시, 혐오와 애착, 사랑과 증오의 범주에 따라 분류된다. 냄새를 지배하는 자, 그가 인간의 마음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 파트라크 쥐스킨트, 『향수』 중에서

문화로서 냄새
영화 기생충의 키워드는 ‘선’과 ‘냄새’일 것이다. 신분의 선이 있고, 신분을 나타내는 것은 냄새이다. 신분의 선을 가르는 것은 냄새이다. 냄새란 표현하기 힘들지만 한번 감각하면 그 냄새는 기억에 오래 남고, 냄새를 품은 자의 인격으로 각인된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박사장과 가족의 냄새가 아니라, 기생하는 기택 가족의 냄새이다. 즉 영화 속 냄새는 불쾌하며 감추어야 하는 악취로 일방적으로 규정된다. 박사장 가족의 냄새에 대해서는 불쾌하지 않은 냄새, 지켜야 할 냄새의 기준이라는 암묵적 동의를 영화 관객들은 하고 있다. 그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까?

냄새는 개인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역에도 적용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편견일 수 있지만, 한국 사람은 마늘 냄새 때문에 외국인에게 혐오 대상이라는 자기 비하의 말이 예전에 있었다. 그래서 외국인을 만날 때는 각별히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었다. 물론 이때의 외국인이란 한국인의 선망 대상인 잘사는 나라의 백인을 말한다. 이는 서구식 냄새를 기준으로 하는 의식이었다.

영화 기생충 한 장면
영화 기생충 한 장면ⓒCJ엔터테인먼트

나 자신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거꾸로 한 적이 있다. 20여년 전, 캄보디아 여행 때였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에서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 여행에서 내가 이용한 교통수단은 트럭을 개조한 것이었는데, 트럭의 짐칸에 양쪽으로 긴 의자가 있었다. 지붕이 없어서 승객은 한더위의 태양빛을 그대로 받으면서 가야 했다. 그런데 뜨거운 직사광선도 문제지만 도로가 엉망이었다. 도로에는 우기 때 파헤쳐진 웅덩이가 여기저기 있었다. 그 웅덩이 때문에 차가 출렁였다. 그러다가 큰 웅덩이를 만났다. 길이 움푹 파여서, 차가 지날 수 있게 웅덩이를 메꾸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차들이 줄이어 멈췄다. 승객들 모두 차에서 내려서 기다렸다.

이런 일이 흔한지 광주리에 간식거리를 가지고 와서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속에는 아이스크림 장사도 있었다. 네모난 아이스박스를 어깨에 메고 다녔다. 아이스박스에서 나온 것은 연초록의 메론 색을 띠는 막대 달린 아이스크림이었다. 더워서인지 여기저기서 그것을 샀다. 나도 한국의 막대 아이스크림이 생각나서 샀다. 그런데 그 첫맛은 지독한 냄새와 함께 왔다. 단맛은 분명한데, 꿉꿉하고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났다. 다른 캄보디아 승객들은 모두 아이스크림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살짝 대열에서 벗어나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버렸다. 캄보디아 사람들이 내게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어떤 지역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 지역의 냄새와 익숙해지는 것이다. 지역마다 특징적 냄새가 있다. 타자에게는 이질적이고 고약할지 몰라도 지역민에게는 일상의 삶이 배어있는 것이다. 냄새를 공유하는 것은 바로 일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 냄새가 좋든 나쁘든.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독특한 체취가 있다. 그런데 요즘 체취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예의가 되고 있다. 점점 대인과의 접촉이 적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타인이 풍기는 냄새가 더욱 생경하고 두드러진다. 익숙하지 않아서, 이해를 하지 않고 무시해서 냄새의 차이들은 더욱 커진다.

특히 가난에는 지독한 증표가 따라다닌다. 가난을 표현하는 다양한 상징이 있다. 대부분 우리는 시각적으로 가난을 표시한다. 더러움, 남루함 등 부정적 표현이다. 그런데 가난을 극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시각적 요소보다 후각적 요소다. 그 냄새에는 구조적 가난이 만들어내는 비위생적인 냄새도 있지만 가진 자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있다. 냄새도 다른 상징과 마찬가지로 좋고 나쁜 냄새를 가르는 기준은 계급에 기초한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선을 지키는 삶
영화 기생충에서 선과 냄새를 계속 강조하는 인물은 박사장이다. 박사장 가족 중 막내가 먼저 기택 가족의 냄새를 인지하지만, 막내는 냄새에 대한 불쾌한 의식은 없다. 차이로서 냄새를 인지할 뿐이다. 그러나 박사장에게 기택의 냄새는 같이 섞이고 싶지 않은 불쾌한 것이다. 박사장은 영화에서 자신의 신분, 계급에 가장 충실한 인물이다.

영화 속 박사장 가족은 폭력과 폭언을 사용하는 갑질과는 거리가 있다. 박사장 부인은 남을 의심하지 않고 착하기도 하다. 그러나 박사장은 선을 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선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강고한 신분제 사회임을 인정하는 것, 피고용인은 고용인의 요구를 무조건 묵묵히 따르는 것이다. 박사장은 아들의 생일에 기택 가족에게 본래 업무 외의 일을 시킨다. 기택에게는 인디언 복장을 하고 인디언 역할을 하게 한다. 이러한 역할에 당황하여 우물쭈물하는 기택에게 박사장은 정색을 하며 업무 중이라고 선을 지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결국 그 선은 바로 자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 한 장면
영화 기생충 한 장면ⓒCJ엔터테인먼트

기택 가족은 기생하고 있으나 선을 지킨다는 점을 잘 모른다. 의도적으로 박사장 집에 들어왔으나 그 집에서 지켜야 할 선을 완전히 체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선을 넘는 냄새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 선을 지켜온 사람들은 지하에 사는 부부이다. 이들은 문제없이 이곳에서 살았다. 바로 선을 지키고 냄새가 섞이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은 기생하면서라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기생하는 선을 지켜야 한다. 선을 넘는 냄새조차 스스로 위장해야 한다. 그들은 가난의 냄새를 향수로 덮는다. 그러나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가난한 자들은 가난의 냄새를 다시 맡는다. 위장의 향수는 낮 동안 날아가고 본래의 가난 냄새가 새어 나온다. 그리고 반지하가 줄지어 있는 거리에서 익숙한 냄새에 젖는다.

선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것과 같이 냄새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영화 속 냄새는 쌍방적이지 않다. 기택이 말하는 박사장 댁의 냄새는 없다. 정작 가난한 자가 모르는 것은 가진 자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냄새이다. 가진 자들의 본래 냄새는 어떨까? 혹시 그들은 소설 ‘향수’의 그르누이처럼 냄새가 없는 인간들이 아닐까? 그래서 각종 향수를 만들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아닌가?

김애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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