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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호 교육칼럼] 자사고 ‘재지정 파문’에 대해

지금 전북의 상산고, 경기도의 안산 동산고에 대해 자사고 ‘재지정 취소’가 예고된 사건으로 파문이 일고 있다. 사실상 고교 서열화의 정점에 있는 이들 학교가 자사고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일반고로 전환될 것인가 여부는 이제 교육부의 최종 판단에 달려있다. 교육부의 판정 이전인 지금이 여론 수렴의 적기라고도 할 수 있다.

주요쟁점은 자사고 재지정 기준점수 및 평가지표의 변경이 교육감의 권한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자사고 및 보수층에서는 이를 자의적이며 불공정한 것으로 보는 데 비해, 진보진영에서는 지역과 학교의 특성을 감안해서 결정할 수 있는 재량권으로 본다. 이념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념이란 본래 정책적 판단에 늘 개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합리적으로 이념을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전북 상산고와 같이 전국단위로 모집하면서 학비도 적지 않은 자사고는 신종 입시명문고의 위상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자사고와 동일한 평가척도를 사용하면서도 보다 더 엄밀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공정성’에는 개별 특성을 무시하고 동일한 척도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별 특성을 반영해야 하는 이중적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넘나들 수 있어야 진정한 ‘공정성’에 접근할 수 있다.

교육부의 판정이 지니는 의미는 ‘고교 평준화의 복원’의 향배가 결정된다는 데 있다. 즉 이명박 정권에서 훼손시킨 평준화의 흐름을 되살릴 것인가 아니면 포기 혹은 유예할 것인가가 판가름 난다. 이는 강원 민족사관고 등 주요 자사고 판단에 도미노로 영향을 줄 것이다. 물론 이번에 경북의 포항제철고와 김천고가 자사고 지위를 유지하게 된 것과 같이 예외도 있다.

최종적으로 ‘자사고 유지’라는 판정을 내리면 정부가 대선공약을 스스로 거스르며 자가당착에 빠질 것이며, ‘자사고 폐지’라는 판단을 내리면 보수 야당 및 여론의 반발과 자사고의 법적 반발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여당 실세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텃밭 가꾸기’ 차원에서 교육감의 방침에 반대한 것으로 보이는 발언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 전 의장의 발언은 표현의 자유를 감안한다 해도 영향력 있는 위치의 인물이기 때문에 ‘교육적 판단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

전북교육청은 20일 전북 상산고에 대해 자사고 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김승환 전북교육감
전북교육청은 20일 전북 상산고에 대해 자사고 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김승환 전북교육감ⓒ김철수 기자

평준화:자유와 평등의 가치갈등에서 길을 잃을 수 있어

이번 자사고 재지정 관련 갈등은 파괴가 아니라 창조로 이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있다. 지난 22일 저녁에 김두루한 교사(경기고 재직. 교육운동단체 ‘참배움연구소’ 대표 및 서울교육정책연구소 위촉 연구원)는 “고교평준화에 반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결국 고교 서열화를 조장했다. 지금껏 1%, 0.1%의 수월성에서 앞서는 인재를 키워낸 교육적 열매가 과연 다수에게 나눠졌는가? 자사고 등 고교 다양화 정책은 예전의 경기고, 서울고 등을 다른 형태로 재현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자사고가 존속되는 한 평준화는 ‘무늬만 평준화’ 혹은 긍정 평가를 한다 해도 ‘절반의 성공인 평준화’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사례를 평준화를 위한 전열 재정비의 기회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의 상황을 잠시 본다. ‘캐나다는 수능이 없으며 고교는 대체로 평준화되어 있다. 대신 대학처럼 학점을 신청하며 이동수업을 한다. 그리고 한국의 특목고, 과학고, 자사고, 외고 등과 같이 노골적으로 수월성을 강조하며 운영하는 학교가 없다. 대신 “(우리로 본다면 모두 일반고 안에) 특목반이라고 하여 IB, AP, 수학·과학 특별반, 영재반, 예술반 등을 학교 내 특별학급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이 뛰어난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지만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모두 그 프로그램을 택하지는 않는다. 일반 학문반에서 여유롭게 공부하는 우수 학생들도 많다. 별도의 평가를 하는 특목반에서 좋은 성적을 못 받으면 일반반에 다니는 것 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성적이 낮으면 졸업도 힘들어질 수 있다’(박진동·김수정, 캐나다교육이야기, 122~123쪽 발췌).

즉 특목반과 일반반의 시험이 다르다. 한국의 고교 학점제의 주요 전제조건으로 얘기되는 ‘내가 가르친 학급은 내가 출제하는 시험만 본다’는 교사별 평가에 대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당연히 대학에서 학생들을 선발할 때도 특목반에서 공부했다는 사실만 갖고 우대하지도 않는다.

흔히 평준화는 아직도 한국의 보수층에서 ‘평등’과 마찬가지로 ‘평균화’로 오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의 캐나다 평준화 사례는 우리의 평준화에 대한 오해와 과장을 정확하게 수정해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수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함과 동시에 다양한 성향과 잠재력을 지닌 학생들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의 보장, 즉 ‘평등’의 가치를 결합하는 조합의 기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 영재가 같은 조의 성적이 평범한 친구에게 짬짬이 가르치는 모습, 신체 건강한 아이가 장애인 친구를 부축하는 모습, 교과성적은 뒤지는 아이지만 과학영재인 친구에게 톱과 대패질을 가르치는 목공수업의 장면, 성적이 차이가 나도 모두 한 조가 되어 이란 및 북한이 왜 미국과 적대관계에 놓여있는지를 함께 탐구하고 토론하는 모습, 학생과 교사 모두 어우러져 농구 경기를 하며 땀흘리는 모습, 용돈으로 증권에 투자하는 경험, 도우미로 교육감 선거 참여 경험 등이 진정한 배움의 영역들이다.

이 모든 것이 장차 인성, 사회성, 노동 및 자본의 가치, 민주시민의 훈련, 사회적 연대로 연결되는 잠재력을 지닌 소중한 경험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자연스럽고도 평범한 교육적 일상이요, 협동의 기제가 너무 오랫동안 사라져 있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성적 우수생은 고립된 존재에서 고립된 계층, 고립된 파벌로 연장되곤 한다.

특권학교폐지 및 일반학교살리기 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가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등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특권학교폐지 및 일반학교살리기 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가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등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교육 사회주의?

한편, 홍후조 교수(고려대 교육학과)는 자사고 폐지를 ‘교육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하면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홍 교수의 견해를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2019.6.21일자 문화일보. 제목:자사고 폐지는 ‘교육 사회주의’ 발상).

“첫째, 헌법 전문에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게 하는 것’이 교육인데 열심히 공부시키는 모범적인 학교(자사고를 지칭할 것임)를 훼파(헐어서 깨뜨리다)하는 것은 헌법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둘째, 기득권층은 자녀들을 대거 사립학교에 보내고 있다. 즉 진보적 성향의 영국 교육학자 마이클 영(Young)의 두 딸, 미국 대통령들의 자녀 다수가 그렇다.”

우선, 홍 교수의 진단에서 사회주의를 균등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읽힌다. 하지만 현재의 진보세력이 옹호하는 것을 사회주의라 한다 해도, 이는 ‘무조건적 균등’이 아니라 ‘차이를 긍정하는 평등’이라 할 수 있다. 평등은 기회를 균등히 함과 동시에 결과의 평등까지 고려해야 하며, 결과는 능력을 무시한 균등이 아니고 능력에 따라 차등을 두되 그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 교수의 견해대로라면 위의 캐나다를 포함하여 평준화가 보편화한 대부분의 교육선진국이 사회주의 국가이며, 한국은 자유주의 국가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면 일례로 한국 교육을 풍자한 드라마 ‘SKY 캐슬’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중국에서도 흥미롭게 시청되는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그렇다면 한국은 진정한 자유주의라기 보다 자유가 제 궤도를 타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칸트(I. Kant)가 강조하는 도덕적 명령, 즉 ‘네 의지의 격률은 언제나 그리고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에 맞도록 행위하라!’는 말을 교육적 판단에 적용하면, 사회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조건에서는 자사고를 포함하여 어떤 교육정책도 용인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홍 교수가 언급하는 ‘열심히 공부하는’ 내용이 상위권 대학진학을 위한 단편 교과 지식이라면 이는 공부라는 이름에 값할 수 없다. 게다가 공부의 결과가 계층분열의 계기로 작용한다면 헌법이 보호할 가치는 그만큼 상실된다. 캐나다의 사례는 ‘능력주의’와 ‘공동체주의’, ‘경쟁’과 ‘협동’,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로 영미권과 한국의 경제사회적 상위계층에서 자녀를 사립고에 많이 보내고 있다는 홍 교수의 지적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모순된 현실이 자사고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 이런 현실에 이유를 돌리는 것은 자칫 발전적 변화보다는 체념과 퇴행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존 롤스(Johh Rawls). 1921~2002. 코넬-하버드-매사추세츠공대-프린스턴대 교수 역임. 학문적 경향:분석적 사회적 자유주의. 그의 주요 개념들:공정성으로서의 정의, 원초적 입장, 반성적 형평성, 공적 이성, 무지의 베일 등.
존 롤스(Johh Rawls). 1921~2002. 코넬-하버드-매사추세츠공대-프린스턴대 교수 역임. 학문적 경향:분석적 사회적 자유주의. 그의 주요 개념들:공정성으로서의 정의, 원초적 입장, 반성적 형평성, 공적 이성, 무지의 베일 등.ⓒ위키백과

사회계약론을 계승하는 철학자 존 롤스(J. Rawls)는 정의의 원리에 기초를 이루는 유명한 전제로서 ‘무지의 베일(a veil of ignorance)’을 제시한다.

“이 베일은 계약의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원리를 재단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치다. 즉 아무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계급뿐만 아니라 생득적인 자산과 능력, 지성, 힘 등과 같은 것의 분배에서 자신의 몫을 알지 못하는 상태다. 나아가 정당 혹은 집단이 그들에게 선하다는 것, 그들의 심리·사회적 지향성도 모른다. 정의의 원리는 무지의 장막(베일) 뒤에서 도출된다(위키백과 영문판. A theory of Justice).

무지의 베일 뒤로 가자는 말은 장자(莊子)의 수양법인 심재좌망(心齋坐忘)을 떠올리게 한다. 허(虛)의 상태에서 도(道)를 만나는 것, 현세적인 지(知)를 잊고 대도(大道)와 합일하는 것이 롤스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철학자의 견해를 토대로 자사고 문제를 보면, 우선으로 우리는 의식 저변에 자리한 사적욕망(私的慾望)을 지성의 명령에 의해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그러면 공공성을 강화하는 고교개혁이 보다 무리 없이 사회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우리가 자사고 재지정 점수할당 문제로 잠시 주춤해도 고교 평준화, 혁신학교 확산을 통한 ‘일반고 살리기’ 등 진보 교육의 큰 물줄기가 계속 흘러가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나아가 정부는, 차제에 “왜 자사고만 갖고 그래요?”하는 불만의 목소리에 응답도 할 겸 영재고, 과학고, 특목고도 극소수를 남기고 일반고로 전환함으로써 큰 흐름에 합류시키는 것이 공평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고로의 전환 곧 평준화는 하향식 평균화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절묘한 조합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사고 지정을 유지하려는 측의 견해도 이해가 가는 것이, 다양한 배움의 욕망을 충족할 수 없는 여건이라면 평준화가 ‘하향 평준화’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교과 공부만이라도 질 높게 받아 자녀가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롭게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은 욕망은 다른 곳을 향한다. 즉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흐름과 궤를 같이해서, 일반고를 선진화된 고교로 전환하는 투자와 혁신의 속도를 더 내지 않으면 홍 교수의 지적대로 해외 유학으로, 사교육 기관으로 가는 행렬은 더 늘어날 것이다.

현 정부는 유치원 3법 이외에 이렇다 할 정책적 개선 없이, 심지어 교육개혁에서 있어서 ‘현장의 동반자’인 전교조의 존재가치를 줄곧 외면하는 등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또 정부는 교사의 정치참여, 고교학점제, 수능 절대평가제 혹은 논술형으로 전환, 공사립대학 공동입학제 및 학점 공유제 등의 유기적 연관성에 주목하기보다는 이를 분리된 것으로 파악하거나 미리부터 배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총괄적 개선능력이 미흡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교육감과 자사고의 갈등 그 이면에는 이러한 갈등을 촉발한 간접적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정부가 자리하고 있다.

신남호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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