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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자라는 아빠] 마지막 아이는 언제쯤 갔나요?

퇴근 1분 전. 오후 5시 59분이면 이미 달릴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컴퓨터 전원은 진작 껐습니다. 사무실 출입구 앞에 서서 시계를 봅니다. 세상에서 제일 긴 1분입니다. 여섯 시 정각 퇴근 도장을 찍은 후에는 버스정류장을 향해 땅을 박차며 뛰어갑니다. 워킹맘인 동료 한 명도 같이 뜁니다. 처리하지 못한 업무가 떠올라 얇은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그저 부지런히 달립니다. 운이 좋은 날엔 숨을 미처 고르기도 전에 버스가 도착하기도 합니다. 하차 문 가까운 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하차 교통 카드를 미리 찍어둡니다.
 
달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아이가 아빠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집은 맞벌이 가정입니다. 음악으로 먹고사는 프리랜서인 아내는 저녁 늦게 일정을 마치는 경우가 잦아, 많은 경우 제가 어린이집 하원을 합니다. 그 덕에 제 일과에는 단거리 달리기가 들어있습니다. 엄마나 할머니, 하원 도우미의 손을 잡고 하나둘 떠나는 친구들을 보며 “잘 가, 내일 봐. 빠이빠이.”를 가장 많이 했을 아이는 시내버스의 절반쯤 되는 좁은 방에 혼자 남아 선생님과 시간을 보냅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는 딱히 재미있는 활동을 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립니다. 이제부턴 걸어갈까 싶지만,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는 엄마와 할머니들이 보입니다. 그 따뜻하고 평화로운 풍경에 나는 또 달립니다.

드디어 어린이집 앞입니다. 벨을 누르니 디지털 새소리가 선생님을 부릅니다. 선생님은 “잠시만요. 수현아 아빠 오셨네?”라는 어제와 똑같은 대답으로 저를 맞이합니다. 그 특유의 억양에 밝은 동요와 같은 흥이 묻어 있어, 직장인인 제겐 ‘드디어 퇴근~’이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현관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제게 선생님은 늘 오후 7시 30분까지 와도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1분이라도 일찍 도착하고 싶은 심정뿐입니다. 저는 완벽한 부모를 지향하지도, 불안감이 높은 양육자도 아니지만, ‘오늘은 얼마나 많이 기다렸을까’, ‘아이 기분은 괜찮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신발 한 켤레, 오후 6시가 되면  사무실에서 증발하는 이유?
신발 한 켤레, 오후 6시가 되면 사무실에서 증발하는 이유?ⓒ필자 제공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현관에 서서 어린이집 안을 둘러봅니다. 아이들 고사리손으로 찍은 무지갯빛 손바닥 그림이 보입니다. 귀여운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리는 듯하여 저절로 함박웃음이 납니다. 그러다 신발장에 시선이 고정됩니다. 신발이 한 켤레 뿐입니다. 눈물이 왈칵 올라옵니다. 반 뼘 길이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신발에서 외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마음과 달리 아직 웃음기가 남아있는 얼굴로 선생님께 어제와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마지막 아이는 언제 갔나요?’ 아이가 혼자 남은 시간이 최대한 짧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늘 좌절됩니다. 아이는 거의 예외 없이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 정도를 혼자 남아있습니다. 그건 너무 긴 시간이었습니다. 달리기 선수는 연습을 통해 기록을 단축할 수 있겠지만, 저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아이가 혼자 남아있는 시간을 단축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아이가 밥은 잘 먹었는지, 똥은 눴는지, 낮잠은 잘 잤는지, 간식은 뭘 먹었는지 등에 대해 몇 마디 인수인계를 나누다 보면, 마지막 신발의 주인이 다른 선생님의 손을 잡고 방에서 나옵니다. 외롭고 무료한 시간에 지쳤다는 것이 아이의 표정과 몸짓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아이는 양팔을 벌리고 있는 저를 발견해도 시무룩한 표정이 밝게 바뀌거나, 걸음이 빨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까지 달려왔지만, 아이의 걸음은 무겁고 느립니다. 세발자전거에 태우는 대신, 일부러 아이를 안아 들고 집까지 걸어갑니다. 우리의 몸을 밀착함으로써 서로 떨어져 있던 긴 시간이 보상되길 바랐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괜히 웃겨보기도 하지만, 아이의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방법을 떠올렸습니다.

“내일은 아빠가 제일 먼저 올게. 약속.”
“응, 알겠어.”

다음날 회사에서 조퇴를 했습니다. 어린이집까지 여유롭게 걸어갔습니다. 약속대로 제일 먼저 어린이집에 도착했습니다. 신발장에 신발이 가득 차 있습니다. 마지막 아이가 언제까지 어린이집에 있었는지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환한 얼굴로 품으로 달려왔습니다. 제가 달리는 날에는 아이가 걷고, 제가 걷는 날에는 아이가 달렸습니다. 기분이 좋아서 아이를 안아 들고 놀이터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아빠가 제일 먼저 왔어!
오늘은 아빠가 제일 먼저 왔어!ⓒ필자 제공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 때문에 죽고 싶네요'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양육자의 출근으로 인한 육아공백을 어린이집 보육시스템으로 제대로 받쳐달라는 어느 워킹맘의 절규였습니다. 이 가정의 아이도 많은 맞벌이 가정의 아이처럼 어린이집에 혼자 남아있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의 청원은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서명 인원은 대개 10~20명에 그친 채로 종료되어 있습니다. 출퇴근 및 근로시간 동안 아이를 보살펴 줄 양가 부모님이 없는 맞벌이 부부들의 간절한 호소는 몇몇 양육자들의 댓글 사이에서 작은 메아리를 울리고 사라지고 맙니다.

아이를 조금이라도 빨리 하원 시키려면 조퇴나 택시를 이용할 수 있지만 한계가 분명한 선택지입니다. 저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을 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육아를 마라톤에 비유하곤 하던데, 저의 육아는 무수한 단거리 달리기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하는 양육자들이 더는 어린이집으로 달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같은 시기를 견디고 있을 일하는 양육자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맞벌이 육아에 허덕이며 ‘라떼파파’를 꿈꾸는 오창열 정신건강사회복지사의 육아 일상이 담긴 ‘아이와 자라는 아빠’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창열 정신건강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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