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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노래] 응급실에서 들은 “X신 같은 년”

“X신 같은 년”

며칠 전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던 한 간호사가 환자의 보호자에게 들은 말이다.

응급실은 담당하는 환자에 따라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있는데 피해간호사는 그날 중증응급환자를 보는 5구역의 담당간호사였다.

5구역에는 간호사 3명이 상주하고 침상이 12개가 있다. 1인당 평균 4명의 환자를 보는 것이 맞겠지만 응급실에는 침상 수가 의미가 없다. 환자가 밀려들면 밀려드는 족족 다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은 응급실 일일 평균 내원 환자 수에 비해 간호사 수가 늘 턱없이 부족하다. 그날도 그 피해간호사는 무려 10명의 중증응급환자를 담당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일하고 있을 때 그 환자가 응급실을 통해서 왔고, 문제의 보호자는 중환자인데 왜 바로 모니터 적용하지 않냐며 “X신같은 년”이라고 하고 환자 침상으로 돌아갔다.

밀려드는 환자와 응급을 다투는 상황들로 너무 바빴던 간호사는 그런 욕을 듣고도 계속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욕설이나 폭언은 응급실에서 비일비재했기에 굳이 나에게 찾아와 이야기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응급실 환경

문제는 그다음 날 근무가 끝난 후에 일어났다. 수간호사가 그 보호자가 민원을 올렸으니 거기에 대해 답변을 해줘야 한다며 자초지종을 물어보는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발생한 것이다. 피해간호사는 그 일로 큰 상처를 받았다. 그제야 노동조합을 찾아왔고 문제를 제기해서 특별휴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수간호사는 오히려 전체 인계 때 피해간호사에 대해 험담하듯이 그 간호사가 잘못한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나는 이 간호사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만 따지는 수간호사에게 되묻고 싶다. 만약 피해간호사가 무슨 잘못을 했다면, 보호자를 화나게 한 거라면, 욕먹을 짓을 한 거면 저런 욕을 들어도 괜찮은 건가?

그럼 거꾸로 생각해보자.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인의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 열 받은 간호사가 “X신 같은 년”이라고 말했다면 그 때도 환자나 보호자에게 가서 물어볼 건가? 대체 어떻게 행동하셨길래 간호사가 그런 말을 하게 만드신 거냐고?

나는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응급실의 이 현 상태가 너무나 우려스럽다. 간호사에게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폭언이나 폭행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관리자들은 문제의식도 없는 것 같다.

거꾸로 뒤집어서 간호사가 가해자들이 한 것과 똑같은 말이나 행동을 했다고 상상한다면 그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응급실은 폭력에 매우 둔감해져 있고, 폭력으로부터 간호사들을 보호하긴커녕 매우 부적절하게 대응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2차 가해를 하고 있다.

폭력에 노출된 간호사 보호는 없었다

병원 근무를 하다 환자에게 목 졸린 간호사
병원 근무를 하다 환자에게 목 졸린 간호사ⓒ필자 제공

얼마 전 JTBC 뉴스에 보도되었던, 환자가 간호사 목에 있던 명찰 목걸이 줄로 간호사의 목을 조르는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이 까매지고 의식이 흐려질 무렵 목걸이 줄이 끊어져서 그 간호사는 다행히 풀려나게 되었지만, 목 전체에 새빨간 줄이 생길 정도로 심하게 목이 졸렸다. 하지만 경찰을 부르거나 코드블랙 방송을 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근무 하루만 특별휴가로 바꿔주고 모레 출근을 하라고 한 것이다.

나는 그 일이 있었던 날 밤 12시경에 해당 사건에 대해 전해 듣고 나서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데이근무 시작하자마자 찾아가서 따졌다. 이 간호사보고 지금 내일 당장 출근하라는 거냐고, 사람이 목 졸려 죽을 뻔했는데 하루 쉬고 출근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따졌다. 그러자 한다는 말이 통화해보니까 목소리도 나오고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단다.

간호사는 기계가 아니다. 전원을 켜보니까 작동하길래 써도 되는 줄 알았다는 식의 저런 답변은 정말 피해간호사의 고통에는 1도 공감하지 못 하는 발상이다. 그런 끔찍한 일이 발생한 후에 수간호사가 한 일은 원내 게시판인 ‘제안톡톡’에 직원 명찰 목걸이를 세게 당기면 끊어지는 줄로 바꾸자고 제안하는 것이었다.

제안톡톡은 가벼워 보이는 그 이름 그대로, 나 같은 일개 간호사들을 포함한 직원들이 일하면서 보이는 병원 곳곳의 사소한 문제점들에 대해 개선해달라고 제안하는 게시판이다. 이것저것 제안해서 채택되면 5,000원 포인트를 받는 그런 게시판.

쏟아지는 일감에 미쳐버릴 것 같던 간호사가 열 받아서 환자의 목을 저렇게 벌겋게 될 때까지, 줄이 끊어질 때까지 졸랐으면 어떻게 됐을까?

줄이 끊어질 때까지 사람의 목을 조른 이 심각한 사건에 대해 종합대책 마련을 회의안건으로 올려도 모자랄 판에 그딴 게시판에 목걸이 바꾸자고 올려놓고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수간호사의 안일한 태도도 너무 화가 나고, 그 내용에도 화가 났다. 목걸이로 목이 졸렸으니 쉽게 끊어지는 목걸이를 바꾸자고?

일진들이 자꾸 빵셔틀을 시킨다고 매점에서 빵을 없애면 학교폭력이 없어지나?

그래,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명찰 목걸이라도 바꾸는 게 낫겠지. 적어도 명찰 목걸이에 목졸려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지나기도 전에 “X신 같은 년”이란 폭언을 들었던 피해 사건에 대해서도 병원의 부적절한 대응은 한결같았다. 피해간호사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응급실 복도 한복판에 세워놓고 이것저것 취조하듯이 사건 당시 행동거지에 대해 캐묻고 보고서를 쓰게끔 했다. 게다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공감하며 그 보호자가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했다.

만약 내가 피해간호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나쳐서 그 수간호사에게 찾아가 똑같이 욕설을 내뱉더라도 내 입장에 공감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오죽하면 그런 욕을 했겠냐고.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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