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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 희미해지는 ‘일국양제’의 약속
시위대와 경찰이 1일 충돌하면서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실내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캐리 람 행정장관(오른쪽 두번째)가 퉁치화 전 행정장관(오른쪽 세번째) 등과 건배하는 모습. 2019.7.1
시위대와 경찰이 1일 충돌하면서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실내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캐리 람 행정장관(오른쪽 두번째)가 퉁치화 전 행정장관(오른쪽 세번째) 등과 건배하는 모습. 2019.7.1ⓒAP/뉴시스

편집자주/홍콩에서의 대규모 시위는 그것이 발생할 때는 국제적 관심을 끌지만, 시위가 가라앉고 나면 이내 관심에서 벗어난다. 누가 뭐라고 해도 홍콩이 중국의 일부분임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홍콩은 여전히 중국과는 다른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고, 동시에 중국의 일부분이다. 이를 지탱해 온 원칙이 ‘일국양제(One country, two systems)’다.

하지만 1997년의 홍콩 반환 이후 22년이 흐른 지금, 홍콩인들은 중국이 약속했던 ‘일국양제’가 점진적으로 침식되고 있다고 느끼는 듯 하다. 뉴욕타임스는 홍콩 반환 기념일인 7월 1일자에서 중국의 ‘약속’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게재했다. 원문은 On Hong Kong Handover Anniversary, Many Fear Loss of Freedoms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7년, 영국이 100여년의 식민 통치 끝에 홍콩을 중국에게 반환했을 때 그것은 중국에게 엄청난 자부심의 순간이었고 중국 본토보다 훨씬 많은 자유와 번영을 누렸던 홍콩에게는 엄청난 공포의 순간이었다.

공산당이 운영하는 권위주의 국가가 독립적인 법원과 싹트는 민주주의, 그리고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는 장치가 있는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를 이양받게 된 것이다.

당연히 의문이 제기됐다.

중국 정부는 과연 향후 50년간 “일국양제”를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인가?
중국 정부는 홍콩이 홍콩다울 수 있게 내버려둘 것인가?

중국 당국은 신속히 사람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기밀 해제된 영국 정부의 문건에 따르면 당시 중국 주석은 영국 총리에게 “중국은 행동으로 자기 말을 증명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콩이 반환 22주년을 맞이한 7월 1일의 시점에서 볼 때 중국의 최근 몇몇 행동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현재의 홍콩 사람들이 중국 본토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정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사실이다. 결사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있고 독립적인 사법제도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홍콩이 점점 베이징의 그늘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런 자유가 사라지고 있다는 새로운 증거가 거의 매일 나타나고 있다.

최근 몇 주간 홍콩인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이들 중에는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25세의 초등학교 보조교사인 대니 찬은 “중국 본토가 홍콩을 완전히 장악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며 “홍콩 시민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순간이 오는 것을 늦추는 것 뿐이다”고 했다.

아편을 둘러싼 전쟁, 그리고 전리품으로 받은 섬

과거로 돌아가 보자.

무역과 제국주의에 열을 올리던 영국은 17세기 말에 중국에 당도했다. 그런데 영국은 자기 상품의 수출만 좋아하고 서양 물건의 수입에는 훨씬 관심이 덜한 중국 지도자들과 곧 부딪히기 시작했다.

영국은 중국에 들어갈 방법을 아편에서 찾았다. 청 황제들의 뜻을 거스르며 아편을 중국 시장에 강제로 투입한 것이다.

영국은 2번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중국에게 홍콩의 이양을 요구했고, 결국 1997년 7월 1일에 만료되는 ‘99년 임차’의 형식으로 영토의 일부를 차지했다.

1980년대엔 홍콩 반환 협상이 열렸다. 영국은 홍콩을 계속 식민지로 남기려 했으나, 중국은 이를 거절하고 홍콩을 중국의 준자치 지역(semi-autonomous region of China)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당시 중국 총리였던 자오쯔양은 영국 총리 마가렛 대처에게 중국의 신뢰성에 대해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홍콩이 반환된 1997년, 중국은 실제로 느슨한 입장을 취했다.

1997년 당시, 자신의 권리가 하룻밤 사이에 없어질 것을 걱정했던 많은 홍콩인들의 우려는 과장된 것으로 판명 났다. 하지만 그때부터 홍콩인들의 자유는 공격받기 시작했다.

피터 청 홍콩대 정치학-행정학 교수는 “1997년과는 달리 오늘날의 불안감의 일부는 불확실성이 아닌 확실성에서 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홍콩에 대한 중국의 통제는 2012년 시진핑이 정권을 장악하고 전국적으로 권력을 강화하려고 나서면서 더 분명해졌다. 반환 이전과 반환 이후 4년 간 홍콩 정부의 제2인자였던 안손 찬은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이 홍콩에 대한 지배를 강화해 왔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향한 전진은 중단됐다

영국 통치 기간에 홍콩 총독은 임명됐다. 1990년대 초반이 돼서야 의회에 직접 선출 의석이 도입됐다.

1997년에 발효돼 홍콩의 헌법에 해당하는 “홍콩기본법”은 행정부 수반과 입법부 전체를 유권자가 선출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2007년, 후진타오 주석이 중국을 이끌 때 드디어 선거 날짜가 잡혔다. 10년 후인 2017년에 행정 수반을 직접 선거로 선출하고 이어 의회 전체를 선출하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7년, 홍콩의 행정 수반은 늘 베이징의 뜻대로 만들어진 위원회(committee)에 의해 또 다시 선출됐다. 그리고 의회의 거의 절반은 일반 유권자가 아닌 전문 분야 몫으로 선출됐다. 내년 선거에서 이런 상황이 변할 조짐은 전혀 없다.

런던 소아스 대학교의 중국연구소 소장인 스티브 생은 “서서히 잊혀진 가장 중요한 약속은 (홍콩이 반환된) 1997년 이후 20년이 지나면 홍콩인들이 행정 수반을 직접 선출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던 부분이다. 그 약속은 분명히 지켜지지 않았다”고 했다.

2017년에 홍콩의 행정 수반인 행정장관이 된 케리 람은 종종 두 나라, 그러니까 베이징과 홍콩에 충성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행정장관을 선출할 때 베이징이 하는 역할을 보면 홍콩에서 누가 실권을 가지고 있는지는 분명해 보인다.

중국이 홍콩의 직선제를 지지한 적이 한 번 있기는 했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달렸다. 2014년, 중국은 홍콩인들이 자신의 지도자를 직접 선출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다만 후보자들은 사전에 친중파로 구성된 후보 추천 위원회에서 승인을 받아야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달리 말해 홍콩이 자기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지만 중국공산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몇몇 후보 중에서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위 우산 운동(Umbrella Movement)이 탄생했다. 직선제에 대한 제한에 반대해 홍콩에서는 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났고 시위대는 “가짜 민주주의”에 항의하기 위해 도시 거리를 거의 3개월 간 점거했다.

일 년 후, 홍콩 의회는 중국의 제안을 거부했다. 민주파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중국의 제안을 거부했다.

일각에서는 이 때 민주파가 제안을 받아들여 점진적인 민주화를 추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점차 강화되는 중국 본토의 영향력

1980년대에 영국과 중국이 반환 이후의 홍콩이 어떤 모습을 띨 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할 때, 협상가들은 어디까지 중국의 권위가 미치고 어디서부터 홍콩의 권위가 시작되는지를 정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외교는? 중국 담당. 국가 안보는? 마찬가지.

그러나 1984년의 중영공동성명(Sino-British Joint Declaration of 1984)에 따라 다른 모든 권한은 홍콩에게 주어졌다.

그렇지만 최근 몇 년간 이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들이 있었다. 특히 사법부에서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중국 본토에 범죄인들을 더 쉽게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송환법 개정안이 홍콩 의회에 제출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우산 운동 이후 볼 수 없었던 대대적인 거리 시위가 벌어졌다. 이미 사법부의 독립성이 적어진다고 우려하고 있던 홍콩인들이 더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당국은 송환법 추진을 연기하게 됐다.

이번엔 송환법이 통과되었다면 중국 정부가 홍콩인을 체포하는 건 쉬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이 법이 없을 때도 본토 당국이 어려움을 겪은 것 같지는 않다.

2015년, 중국의 정치에 관한 가십성 책들을 팔던 홍콩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주주와 직원 5명이 실종됐다. 한 사람은 홍콩 길거리에서, 또 다른 사람은 태국에 있는 자택에서 납치됐고 나머지 3명은 중국 본토에서 체포됐다. 5명 모두 중국 본토에 구금됐고 한 사람은 여전히 감금돼 있다.

암암리에 벌어진 이런 일들이 아무리 법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여도, 역설적으로 이런 일들은 공공연하게 강압적으로 벌어지는 일들보다는 홍콩의 자율성에 덜 위협이 된다. 암암리에 벌어지는 일들은 법원 몰래 일어나지만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들은 판사들에게 법 해석을 달리 할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홍콩인들은 새로운 송환법이 본토 당국자들로 하여금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인도를 직접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할까봐 우려한다. 인권 관련 보호 장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송환법이 의회에 제출된 이후 앞서 구금된 바 있던 서점 직원 중 하나인 람 윙기는 대만으로 몸을 피했다. 그는 “서점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중국 정부는 홍콩에서 의사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려고 하고 있다. 요즘 상황이 더 나빠졌다. 그들은 송환법을 통해 그런 납치를 합법화하고 홍콩에 중국의 법을 들여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1일 시위대가 입법회의 중앙 연단을 점거하자 취재진이 사진을 찍고 있다. 2019.07.02
홍콩에서 1일 시위대가 입법회의 중앙 연단을 점거하자 취재진이 사진을 찍고 있다. 2019.07.02ⓒAP/뉴시스

공격받는 언론의 자유

1984년의 중영공동성명에는 언론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많은 언론사들은 중국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언론에 대한 압력은 여러 방법으로 가해진다.

가장 큰 민주파 신문사인 애플데일리(Apple Daily)의 임원들은 중국 정부의 대외 협력 담당 부서가 대기업들에게 광고를 빼라고 강요했다고 전했다.

홍콩은 작년에 홍콩의 중국 탈퇴를 주장하는 활동가의 강연을 열었던 파이낸셜 타임즈 편집자를 추방했다. 강력한 서방 언론사의 대표를 추방하겠다는 결정은 많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오랫동안 예측돼 왔던 “홍콩의 죽음(death of Hong Kong)”이 드디어 도래했다고 말하기 시작하는 언론인들도 있었다.

독립적이었던 출판업계도 큰 타격을 입었다. 코즈웨이베이 서점 관련자들의 구금으로 많은 출판업계 사람들 충격을 받았다. 몇몇 업체들은 문을 닫기도 했다.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업체들은 홍콩에서 정치나 역사 관련 서적을 출판하고 판매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고 한다. 중국 본토의 압력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인수한 연합출판집단(Sino United Publishing)이 이제 홍콩 서적 출판 및 판매 시장의 거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서점에는 중국 본토 금지서들을 찾아볼 수 없다.

존경받던 사법부, 위협을 받다

독립성을 자랑하는 홍콩의 사법부는 현지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기관 중 하나다. 영국에서 교육받은 경우가 많은 판사들은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이 모든 것을 보호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조금씩 깎아내리고 있다.

2014년, 중국 중앙 정부는 홍콩 법원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백서를 통해 “행정가”인 판사들에게 애국자가 될 것을 요구하고 “애국”을 판사의 기본적인 정치적 자격요건으로 본다고 선언한 것이다.

홍콩 민주당의 창당 멤버로 홍콩기본법의 초안작성위원회에 있었던 마틴 리는 “홍콩 사람들은 권력의 분립에 익숙하다”며 “이는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홍콩의 법원이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취약점이 있다. 중국이 대법원 역할을 하면서 홍콩 법이 어떻게 해석돼야 할지를 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중국은 의회에서 취임선서를 하면서 시위를 벌인 민주파 의원들을 상대로 그 권력을 휘둘렀다. 중국 정부가 선서는 “진실되고 엄숙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뒤 그 의원들은 어떻게 됐는가? 그들은 축출됐다.

결국 서면 상으로 보면 홍콩의 자율성은 향후 28년간 더 보장돼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면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덜 확실하다.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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