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일주일째 대규모 농성 중이다. 대부분이 여성으로 허리·목 디스크와 왼쪽 어깨가 만성적으로 결리는 증상을 앓고 있다. 장애인도 상당수 있다. 평균 연령도 50대에 달한다. 이들은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한국도로공사 서울영업소 주변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영업소 바로 옆 서울톨게이트 요금소 구조물 위에는 40여명의 노동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6일 농성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고스펙으로 입사한 기존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단지 고용안정을 보장해달라는 것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햇볕이 내리쬐는 오전 11시 30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연대노동조합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톨게이트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영업소 앞에서 열린 집회를 막 마치고 각자 텐트나 천막 밑 돗자리로 돌아가 쉬고 있었다. 텐트 주변에는 버너와 냄비, 아이스박스가 놓여있고 나무 사이를 잇는 노끈에는 수건과 티셔츠가 널려있다. 50대 여성들은 살뜰하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서울톨게이트 위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6일 낮 서울의 기온은 36도. 이 기온에서 철판은 40도를 넘어선다.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소진되는 상황이다. 이들은 일주일째 여기서 숙식을 해결하며 여름을 나고 있다.
톨게이트 업무는 겉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그리 만만치가 않다. 마주 오는 차량을 향해 연신 왼쪽 팔을 내밀어야 한다. 화물차는 운전석이 높아 팔을 높이 치켜 올려야한다. 앉은 채로 허리를 왼쪽으로 돌려야해 골반은 비뚤어져버렸다. 오른쪽 하이패스 차선에서는 차량이 내달려 부스가 흔들흔들 거린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 부스를 들이 받는 사고도 있었다. 시설이 노후해 시원찮은 에어컨으로 한여름을 버텨야 한다. 겨울에도 문을 오래 닫고 있을 수 없다. 근무가 끝나면 매연으로 창틀이 시커멓다. 움직임이 격하지 않을 뿐, 노동자들은 건강을 내던져가며 일한다. 그렇게 10년, 20년을 일했다.
이들은 한국도로공사 직원이 아닌 용역업체 소속이다. 1년 또는 6개월 마다 재계약을 한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살얼음 판을 걷는다. 월급은 오르지 않는다. 연차도 쌓이지 않는다. 만년 신입이다. 그래도 해고 불안만 떨쳐내면 다른 욕심은 없다고 얘기한다.
현재 농성 중인 이들은 모두 해고 상태다. 도로공사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로 소속을 이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이들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심과 2심 모두 그렇게 판결이 났고, 대법원 판결을 남겨놓고 있다. 도로공사는 정규직 전환을 이행하겠다며 지난 1일 자회사를 설립했고 노동자들에게 자회사로 입사하라고 했다. 도로공사는 자회사로 소속 이전을 거부하는 노동자를 자르겠다며 온갖 협박과 회유를 했다. 그러나 전국 톨게이트 노동자 6500명 중 1500명은 이전을 거부하고 해고됐다.
자회사는 근로조건도 괜찮고, 지금과 같이 용역업체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 신분으로 고용한다. 그런데 왜 노동자들은 자회사 정규직 전환 권유를 뿌리치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왜 도로공사에서 고용하지 않는가’이다. 굳이 자회사를 만들어서 고용하는 이유가 뭔가. 심지어 도로공사 사장과 자회사의 사장이 동일인물이다. 회사가 다른데 사장이 같다. 하는 일은 도로공사에서 지휘한다. 노동자들은 자회사를 통한 고용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회사 만드는 것보다 직접고용이 돈 덜 들어”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자회사 설립은 고용안정이 아니라 오히려 쉬운 구조조정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화성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박모(55) 씨는 “자회사가 지금은 괜찮은 조건을 내걸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 힘들어질 텐데 어떻게 정년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며 “나중에 경영이 힘들다는 핑계를 대며 인원을 감축할 게 뻔하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자회사의 썩 괜찮은 근로조건을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자회사는 기존 용업업체보다 30% 인상된 임금을 지급하고 정년도 61세로 연장됐으며 이전만 하면 인센티브로 100만원을 준다. 이미 이러한 조건으로 5000명을 고용했다. 인센티브로만 50억원이 소요됐다.
노동자들은 자회사 근로조건을 도로공사 직접고용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한다. 남양주시 덕소삼패톨게이트에서 10년간 일한 주모(53) 씨는 “인센티브 필요 없다. 급여 높여달라는 것도 아니다”라며 “자회사 정규직은 되는데 도로공사 직접고용은 왜 안 되는가. 직접고용하는 게 비용도 더 적게 든다”고 꼬집었다.
그는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도 자회사 이전 인원을 늘리기 위한 회유책”이라고 했다.
도로공사는 회유뿐 아니라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자회사로 이전하지 않으면 기존 노동자들이 하던 수납업무 대신 도로정비나 풀깎기 등 보조업무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도로공사는 자회사로 수납업무를 모두 넘겼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톨게이트 노동자에게 보조업무를 하라는 건 일을 그만두라는 것과 같다. 톨게이트 노동자 평균 연령은 50대 초중반으로 대부분이 여성이다. 천안에서 일하는 정모(57·남) 씨는 “아줌마들에게 도로정비를 하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남성인 정 씨에게도 보조업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원래 공사 현장 소장으로 있다가 사고로 다리를 다쳐 2006년 도로공사에 입사했다. 톨게이트 업무 중 하나인 과적 업무를 맡고 있는데 부스에서 대기하다가 과적 센서가 울리면 재진입을 안내하는 일을 한다. 정 씨는 “나는 다리가 구부려지지도 않아. 풀 뽑는 일은 못해”라며 바지 깃을 올려 왼쪽 다리 무릎의 수술자국을 내보였다. 그는 “여기 있는 남자들 유심히 봐봐. 다리를 다 절어”라고 말했다.
톨게이트 노동자 중 상당수가 장애인이다. 장애인을 뽑으면 장애인고용촉진법 상 보조금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보조금을 받아 좋고 장애인은 다른 업무보다 비교적 수월한 업무를 찾아 톨게이트를 찾는 것이다. 도로공사가 유사업무랍시고 보조업무를 들이대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도로공사 자회사로 기존 노동자 77%가 옮겨갔다. 그러나 남은 노동자들은 떠난 노동자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심모(57) 씨는 “2심 판결까지 받았는데 노동자들이 왜 자회사로 갔겠는가. 안가면 해고되기 때문이다”라며 “도로공사가 횡포를 부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도 경제적 부담이 있다. 한집의 가장인데 월급이 안 나온다”며 “두려움, 도로공사가 이걸 이용한 것”이라고 했다.
기모 씨(54)는 “자회사 간 사람도 남은 사람들을 응원한다”며 “그 사람들도 자회사를 가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해고를 당하면 당장 생활을 못하니까 간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노동자들은 자신이 택한 길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자신들은 자회사가 아닌 도로공사 직원이 되는 게 옳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도로공사에게 업무 지시관리를 받았기 때문이다.
주 씨는 “도로공사 직원이 업무를 지시하고 결재한다”며 “도로공사는 우리를 모니터링도 한다. 지사에서 보낸 사람이 일반 시민처럼 하고 톨게이트를 지나며 감시한다”고 설명했다.
1·2심 재판부도 이러한 점을 근거로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노사합의? 탄핵 위원장 데려와 날치기 처리”
그럼에도 도로공사는 노사합의를 했다면서 직접고용을 거부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노사합의는 없었으며 도로공사가 합의문을 날치기로 처리했다고 지적했다. 조합원이 탄핵한 전임 위원장(한국노총)을 노조 측 합의 주체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자회사 설립을 끝까지 반대했던 위원장(민주노총)을 배제하고 합의문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한국노총 톨게이트 노조 소속 남모(50) 씨는 “자회사 설립을 반대하던 전임 위원장이 작년 8월부터 변절 조짐을 보여 조합원들이 탄핵했다”며 “작년 9월 자회사 전환협의회가 열릴 때 조합원들이 그 위원장 출입을 막으려 했으나 도로공사 비호하에 이미 회의장에 들어가 있더라. 도로공사가 부랴부랴 사인을 받아 통과시켜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노총 쪽 위원장은 끝까지 반대했는데 그냥 배제한 채 처리해버렸다”며 “서명한 나머지 노조는 도로공사가 자회사 설립을 위해 급하게 만든 어용노조”라고 덧붙였다.
하이패스가 늘어나고 있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스마트톨링이 도입되면 요금수납원은 갈수록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이 상황도 이해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하이패스 확대와 스마트톨링 도입을 무작정 반대하는 게 아니라는 입장도 밝혔다. 톨게이트 노동자 연령이 높기 때문에 수납원 자연감소 속도와 자동화 속도가 비슷할 것이기 때문에 도로공사가 직접고용해도 무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심 씨는 “자동화라는 시대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라며 “자동화 속도를 조금만 조절하면 노동자 자연감소와 속도를 맞출 수 있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도로공사는 무리하게 자회사 설립을 강행하면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이 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허모(52) 씨는 “끝까지 간다. 갈 곳이 없다. 물러설 수가 없다”며 “대법원 판결나고 정규직 전환될 때까지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심 씨는 “한국이 진짜 민주주의 국가이고 정의로운 나라라면 이건 반드시 이긴다”며 “이 싸움에서 지면 우리가 선택을 잘못된 게 아니라 한국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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