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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호 교육칼럼] 한국 공교육의 내부 모순(상)

현재 우리는 평등과 정의를 향하되 다소 험난한 여정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남긴 그늘인 자사고, 특목고 등의 불평등 요소를 해소하려는 노력과 이에 저항하는 세력의 갈등이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서열화된 고교체제를 다시 고르게 펴서 수용할 일반고 체제 즉 공교육의 수용 능력은 과연 충분한가를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자사고 지정취소 이후를 대비해야 할 것 같다(관련 기사:2019.7.8일자 경향신문). 만일 일반고를 이번 기회에 선진화의 대열로 올려놓지 않으면 진퇴양란에 빠질 것이다.

여기서는 핀란드와 비교하면서 공교육의 교육경쟁력을 살피되 부수적으로 학교중퇴의 원인이 교육력의 부재에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논의하기로 한다. 중퇴를 곁들여 다룬다고 해도 그 심각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일전에 학교 밖 청소년 10중 6명이 고교 중퇴라는 보도에 이어, 해마다 줄잡아 5만 명이 학교를 중퇴하고 있는데 학생 신분이 아니라서 교육지원이 어려운 실정이라는 보도가 있었다(2018.12.27일자 BBS불교방송 뉴스, 2019.3.12일자 YTN).

학생 중퇴자 세계평균을 보면 초:중:고가 9:16:36%다. 동남아시아는 초:중:고 4:9:19%, 남아시아는 6:17:48%, 유럽과 북아메리카(미국, 캐나다)가 4:2:8%,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가 21:37:58%다. 세계적으로 10명 중 거의 4명 가까이 고교생들이 중퇴하고 있으며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고교생 중퇴율이 매우 높다.

Out of school rate by region and age group, 2016
Out of school rate by region and age group, 2016ⓒUNESCO 2018년 2월, Fact Sheet No.48, 8쪽

학교중퇴를 야기하는 교육 내부의 원인도 역시 중등교육의 교육경쟁력 상실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다만 한국의 읽기, 수학, 과학 등의 국제 경시대회 결과는 주로 사교육이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그리 주목할 가치가 높지는 않을 것 같다.

교과에 갇힌 학습환경

잠시 학생이 된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등교를 하여 정해진 책상에 앉아 종일 교과서나 참고서의 간단한 설명을 읽고 문제와 씨름해야 한다. 내 관점에서 풀어갈 수 있는 길이 차단되어 있고 마치 양쪽이 벽인 미로에서 길을 찾듯이 단조롭게 문제 풀이에 전념해야 한다. 이때 학생들은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쳐간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학교가 여전히 산업 노동자를 양성하는 개발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일전에 인용했던 2017.2.15일자 영국 가디언지에서 필자 조지 몬비엇(George Monbiot)은 교과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환경을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마치 한국의 상황을 두고 말하는 듯하다.

“종일 조용히 작업용 의자에 앉아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동일한 상품을 만드는 것만이 칭찬의 대상이다. 표준화된 역할과 상품 제조 기준 등에 못 미치면 처벌대상이다.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는 공장주에게는 격려가 아니라 사기를 꺾어놓는 대상일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교육을 생각하면, 차라리 우리는 학생들에 대해 다축방적기(spinning jenny)를 작동시키도록 (단순하고 단조롭게) 훈련시키는 것이 낫다. 학생들은 불필요하고 비생산적(counter-productive)이며 인본주적이지도 않은 교육제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해당 기사:the Guardian).

명퇴하고 현재 세종시에 거주하는 김광일 교사는 재능기부 형태로 소그룹을 만들어 초등 및 중학생들에게 과학실험을 지도하고 있다. 그가 최근에 말하길 “중학교 학생이 학교에서 실험을 해본 횟수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과학 교과서를 보면 결론을 기술하는 명제적 지식을 열거하는 경향이 짙다. 시험 역시 법칙에 이르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로서의 지식을 묻는 방식이다. 이는 실험정신을 자극하는데 한계가 많다. 예산, 시간, 준비와 정리하는 인력, 공간 등 전반적으로 취약하며 세월이 한 해 두 해 지나다 보면 교사들도 호기심과 실험욕구를 자극하는데 생소해진다”고 한다.

한국과 핀란드 교육을 비교하는 OECD 교육국의 베르나르 위니에
한국과 핀란드 교육을 비교하는 OECD 교육국의 베르나르 위니에ⓒMBC 캡쳐

잠시 핀란드의 대학입학 시험문제 일부를 본다.

◯ 역사과목:“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사회주의 혁명은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이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했으며, 또 그 혁명은 왜 러시아에서 발생했는가?”

◯ 철학과목:“행복, 선한 삶 그리고 복지(웰빙)는 어떤 점에서 윤리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가?”

◯ 윤리과목:“고교생들이 종종 학교 점심 메뉴로 특정 식단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흔히 인간의 이성은 의학적, 종교적, 윤리 도덕적으로 다양하게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의 요구와 그 이유를 쓰고 학교에서 특정 식단을 준비하는 것의 정당성을 논하시오!”

(Pasi Sahlberg, Finnish Lesson 2.0, Columbia University, 2015, p.40~41. 이후 이 책의 인용은 FL, 페이지만 표기하기로 함. 이 책의 주제가 더 잘 담긴 것으로 판단되는 1,2장을 중심으로 인용하기로 함. 파시 살버그:OECD 정책분석가 및 미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객원교수. 한국어 번역본:이은진,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

이런 유형의 시험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를 연상케 한다. 이런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수업이 교과서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교사들이 수업방식 및 평가에서 변화를 주고 있다는 것이며, 행정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민주시민교육도 이렇게 생각하는 수업 및 평가, 그리고 실천 속에서 터득될 때 지속성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은가? 우선 한국의 초중고에서 학생회장을 학교운영위 공식구성원으로 참여시켜 말문을 터줄 필요가 있다.

한국의 교과 및 교과서 위주의 수업방식은 학생 자신과 타인, 나아가 자연과 역사에 대한 이해력의 성장을 방해한다. 그러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이는 다시 학교중퇴의 가능성을 높인다. 심지어 자연과 인간, 역사에 대한 이해력 부족은 역사유적지 등 관광지에 가서 ‘인증샷’만 찍고 발길을 재촉하는 한국인들의 여행관습으로도 이어진다.

또 한국에서 철창 속에 개를 가두고 강아지 공장을 운영하는 것과 애완동물 유기의 비율이 높은 것도 자연과 동물에 대한 포괄적 이해력이 키워지지 않은 것에서 비롯되며 또 이는 학교 교육의 부실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직 윤만식 수학교사(미국에서 석사과정 마치고 귀국,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함께하는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운영위원)는 최근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 교육을 생각하면 일단 두 가지 모순이 생각난다. 첫째, 국영수 과목은 단위수가 4~5단위이며 예체능 과목은 1~2단위다. 이렇게 과목 간 차등을 두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왜냐하면 학생들의 적성과 흥미, 배움의 기쁨과 성취 욕망은 국영수 과목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소중한 가치와 잠재력을 갖는 것인데, 이를 제도적으로 차별하면 학생들의 문화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성장이 방해받기 때문이다. 둘째, 학생들이 자연 및 사회와 교감없이 고립된 상태로 교과공부만 하고 있어 흥미와 배움의 깊이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체험했듯이 물과 흙을 가까이하며 놀았던 유년기가 있었기에 물리, 화학에 더한 흥미를 가질 수 있지 않았던가?” 앎과 삶(자연)이 각기 고립된 배움은 따분할 수밖에 없다.

평등의 가치를 교육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곧 학생들 각자에게 고유한 배움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다양한 경로를 배열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상이한 능력과 성향을 가진 학생들을 한데 모아 놓는 것과 능력별로 개설된 과목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두 가지 방식을 유연하게 적용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교육이 이때 필요하다. 우리는 보충교육(보충수업)의 전형을 바로 핀란드의 진화된 특수교육(special education. 의미는 보충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초중등 학교에서 학습곤란(학습장애)의 정도에 따라 일반학급, 심화학급, 특별학급으로 분류하여 개별, 소그룹으로 지도한다. 이때 특수교육 담당교사가 공동티칭에 참여한다. 학습결손이 더 심하면 풀타임으로 외부 교육기관에 위탁을 보낸다(FL, 66).

핀란드의 학령 초기인 종합학교(Peruskoulu. 초등 및 중학교 과정)에서 더 공을 들이는데 이는 이후의 교육불평등이 사회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핀란드가 교육에서 미국의 ‘헤드스타트(head start)’ 운동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유급제를 복원시키지 않고 보충수업을 진정으로 ‘보충교육’답게 하려면 보조교사에 이어 보조원까지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교사의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자유, 행정업무로부터의 완전한 자유와 이를 가능케 하는 정치 및 제도상의 교사권리 등도 분리해서 볼 것이 아니라 모두 연관시켜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조건에 대한 포괄적 개선을 고민하지 않고 단편적인 정책 하나만 시달했기 때문에 과거의 ‘열린교육’, ‘수준별 이동수업’ 등이 대부분 수포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교과와 교과서로부터의 탈출’도 과단성 있고 민주적인 교육개혁의 연장선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삶의 현장에서 멀어진 채 단편적인 교과지식만을 암기한 후에 성취했다고 얘기되는 판검사, 기업인, 정치인들의 횡포를 충분히 겪고 있다. 이들을 제어하는 길을 법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법 이전에 교육에 의지하는 것이 훨씬 지혜롭지 않을까?

(하편에서 계속)

신남호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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