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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남미의 체 게바라부터 아프리카의 소년병까지 … 혁명과 반란의 무기 ‘AK47’
책 ‘AK47- 매혹적이면서도 가장 잔혹한 도구의 세계사’
책 ‘AK47- 매혹적이면서도 가장 잔혹한 도구의 세계사’ⓒ이데아

독일과 소련이 전쟁을 벌인 1941년 소련군 탱크부대 하사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심한 부상을 당했다. 병원에 입원한 그는 자동화기를 구상했다. 소련은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을 받기 전까지 4년간 벌어진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4년간 이어진 소련과 독일과 전쟁에서 사망한 소련의 희생자는 29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쟁 상대방이었던 독일이 570만 명, 다른 연합국인 프랑스 60만 명, 영국 50만 명, 미국 40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당시 소련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병상에서 자동화기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독일과 전쟁으로 인해 입은 피해와 연관이 있다. 그는 소련군이 엄청난 희생을 당한 건 독일군에 비해 열악했던 자동화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노력은 마침내 1947년 ‘AK47’이란 자동화기 생산으로 결실을 거뒀다. ‘AK47’은 ‘칼라시니코프가 1947년 개발 자동소총’이란 뜻이다.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칼라시니코프의 절실한 마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AK47’은 내구성, 저렴한 가격, 조작 편리성, 살상력 등에서 다른 어떤 총도 범접하지 못할 위력을 자랑했다. 아프리카 등지에선 한 자루 가격이 닭 한 마리 가격에 불과해 ‘치킨 건’이라 불리며 전세계에 약 1억 정, 인구 77명 당 1개 꼴로 보급됐다. 쿠바와 볼리비아에서 혁명을 위해 싸운 체 게바라의 손에도, 베트남전에서 M16 소총으로 무장한 미군에 맞선 베트콩들의 손에도, 알카에다의 지도자 빈 라덴의 손에도, 아직도 전투가 계속되는 아프리카 여러 내전 국가의 소년병들의 손에도 어김없이 ‘AK47’이 들려있다. 세계사를 바꿔 놓은 무기 ‘AK47’의 일생을 다룬 매혹적인 전기 ‘AK47- 매혹적이면서도 가장 잔혹한 도구의 세계사’가 출간됐다.

“미군이 우주 시대의 무기와 기술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는데도 AK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무기로 남아 있다. 바나나처럼 휘어진 탄창 때문에 생겨난 익숙한 실루엣은 제3세계 반란과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1947년에 이 소총이 처음 발명된 이래 제조되어 유통된 8000만~1억 정의 AK는 점점 더 위험한 위협을 제기한다. 전 세계에 깔려 있는 골칫거리인 지뢰와 달리 운송과 수리가 쉽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공격자 집단이 사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AK 덕분에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중동에서 테러 공격이 벌어졌으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은행 강도가 빈발했다. AK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고, 그 독특한 모양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치명적인 소총의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

AK-47 소총 개발자인 러시아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1997년 10월 이제프스크 자택에서 AK-47를 들고 있는 모습. 그는 지난 2013년 12월 23일 9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AK-47 소총 개발자인 러시아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1997년 10월 이제프스크 자택에서 AK-47를 들고 있는 모습. 그는 지난 2013년 12월 23일 9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AP/뉴시스

1949년 소련군이 처음 보병 기본 화기로 공식 채택한 순간부터 AK47은 작동이 간단하고 튼튼하며,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믿음직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값도 싼 총기로 명성을 떨쳤다. 총기의 기본인 신뢰성과 살상력에 가장 충실한 ‘명품’이었다. 하지만 AK47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무기”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데는 이런 기술적 장점 외에도 정치적 요인이 작용했다. 미국과 대결하는 냉전 상황에서 소련은 사회주의권 나라들뿐만 아니라 제3세계 비동맹국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AK47의 특허를 주장하지 않았고, 설계도면까지 무상으로 배포했다. 불가리아, 중국 등에서 생산된 저렴한 가격의 정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한편, 세계 각지에서 복제품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책은 냉전 시대 현대사의 매우 모순적인 상황을 AK를 통해 생생히, 그리고 우리가 미처 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AK에게 아군과 적군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1979년 소련은 군사력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아프가니스탄의 전사들(무자헤딘)은 소련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미국에 이 총기를 달라고 요청했으며 미국은 이를 승인했다.

“CIA의 하트는 마침내 태도를 바꿔서 수십만 정의 AK를 주문했다. 당시 이 소련제 총기를 대규모로 생산하던 중국이 주요 공급처였다. 중국과 소련은 1960년대에 이데올로기 대결을 벌인 바 있는데, 중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소련군이 소련제 무기에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CIA는 성능과 싼 가격, 손쉬운 입수 경로 때문에 소련제 무기를 선호했다. 게다가 무자헤딘이 소련제 무기를 사용하면 미국이 공급한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CIA가 지원 의혹을 부인할 수 있었다.”

미국의 지원으로 AK로 무장한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은 소련을 물리칠 수 있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했고, 이 AK들은 무자헤딘에서 알카에다의 손으로 옮겨갔다. 알다시피 911테러 이후 이 AK들은 소련이 아닌, 즉 미국을 겨냥하게 된다.

이 책은 “매년 2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진정한 대량 살상 무기”인 AK47을 둘러싼 역사적·전술적·정치적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리고 냉전의 가장 파괴적인 유산으로서 AK47이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의 군사, 정치, 사회, 그리고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까지 돌아본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중동의 ‘작은 전쟁’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의 국내 범죄에 이르기까지, “국제적 반군과 테러리스트부터 국내의 마약상과 거리 갱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비정규 전투부대”가 AK47을 휘둘렀다.

불과 반세기 동안 그토록 많은 목숨을 앗아간 무기는 역사상 없었다. AK47은 초강대국 냉전의 대리전에서 가장 위력을 떨쳤다. 인류가 발명한 가장 강력한 무기인 핵폭탄이 절멸의 위협 때문에 초강대국 간의 전쟁을 억제했다면, 대리전의 주력 무기였던 AK47은 그 치명적인 살상력으로 전쟁의 면모를 바꾸었다. 아니, 소수의 선진국을 제외한 세계 전체의 현대사를 변모시켰다. 한때 해방과 혁명, 자유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정작 AK가 그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한 것은 독재와 내전, 분쟁과 범죄에서였고, 군인보다 더 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비극은 주로 아프라카와 중남미 같은 제3세계 국가에서 벌어졌으며, 남녀노소 가릴 것이 없었다. 외신에는 종종 소년병들이 AK를 들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소개되곤 했다.

이 총을 발명한 칼라시니코프는 2002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만든 발명품이 자랑스럽지만 테러리스트들이 그 총을 사용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계, 농부의 작업을 돕는 기계, 예컨대 잔디 깎는 기계를 발명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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