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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19년에 듣는 전태일의 목소리
김오키의 ‘스피릿선발대’
김오키의 ‘스피릿선발대’ⓒ제공 = 김오키

2019년 올해의 문제작이 등장했다. 재즈 색소포니스트 김오키의 ‘스피릿선발대’다. 2013년 정규음반 ‘Cherubim's Wrath(천사의 분노)’를 내며 데뷔한 후, 김오키는 파격적인 행보를 거듭했다. 정규 교육과정을 거쳐 재즈와 색소폰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 원래는 춤을 추었다는 사실만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연주는 유례없이 강렬한 사운드를 마구 내뿜으며 압도했다. 배워서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닌 김오키의 음악은 괴물처럼 출몰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잠시도 쉬거나 멈추지 않았다. ‘스피릿선발대’ 음반이 벌써 아홉 번째 정규 음반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독보적이다. 재즈의 특성상 라이브를 할 때마다 새로운 음반을 낼 수 있겠지만, 김오키의 음반은 모두 정규 음반이다. 2016년부터 김오키는 매년 2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했다. 다른 뮤지션들의 음반에 참여하고, ‘젠트리피케이션’ 컴필레이션 음반에도 참여한 김오키는 다른 장르의 뮤지션들과 함께 줄기차게 클럽 공연을 하고 있다. 그사이 예측할 수 없는 에너지를 분출하던 김오키의 음악은 서정적이고 침잠하는 음악으로 나아갔다. 1집에서 보여준 김오키가 김오키의 전부는 아니었다.

우리시대의 비극을 건조하게 재현한 김옥키의 노래

7월 6일 발표한 ‘스피릿선발대’와 함께 발표한 ‘스피릿선발대 재해석’ 음반 역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김오키의 자유분방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음반 커버에는 현악기를 안은 김오키가 왼발차기를 하면서 신발이 날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왠지 유쾌하고 코믹한 이야기를 담은 음반일 것 같다. 하지만 음반의 첫 곡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부터 우울하다. “사람이 있다”는 백현진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곡은 제목처럼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로 이어지는 우리 시대의 비극을 건조하게 재현한다. “어렵게 어렵게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지만, “계절이 몇 번 바뀐” 동안 “실직을 했”고, “어렵게 치킨집을 열었”지만 “손님이 없”어 망하는 이야기. 이혼을 하고 결국 삶을 포기해버리는 이야기는 신문 사회면에서 끊이질 않는다. 이제는 너무 흔해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자유민주주의공화국 대한민국의 일상을 김오키는 놓치지 않는다.

그는 이 사연을 백현진의 가사와 낭송에 자신과 잔수영, 정수민의 연주 등으로 음악화한다. 김오키의 연주가 빠진 채 낭송과 건반과 베이스의 연주로 이어지던 곡은, 2분 40초 지점 “자살을 한다”라는 멘트와 함께 돌연 멈춘다. 그리고 그제서야 김오키의 색소폰 연주가 들어온다. 생의 마지막 숨을 내쉬듯, 혼이 빠져나가듯 이어지는 색소폰 연주는 비극의 드라마를 결정적으로 완성한다. 백현진의 낭송은 장례식에서 술에 취해, “가로수를 붙잡고 오줌을” 누는 그 사람의 친구 중 한 명의 사연까지 놓치지 않음으로써 이것이 한국 남자의 사연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김오키의 연주는 그를 단숨에 주목하게 했던 1집의 ‘칼날’이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처럼 폭발하거나 분출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낮고 부드럽고 우울한 연주가 막막하게 이어진다.

꾸준히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주목
본능같은 감각으로 포착하고 터트리는 김오키의 노래

음반의 두 번째 곡 ‘코다르 증후군’ 역시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 ‘코다르 증후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곡은 슬로우 템포로 이어지며, 김오키가 뛰어난 멜로디 메이커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음반의 수록곡 제목들과 몇몇 노래의 서사는 어떤 비판적인 노래보다 적나라하다. 타이틀곡인 ‘코다르 증후군’은 자신이 죽었다고 믿는 정신질환이며, 송경동의 시를 낭송한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는 동남아시아로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노동탄압과 그로 인한 죽음을 고발한다. 식민지 시대 제국주의 국가의 행태와 다르지 않은 반인권적 노동착취를 일상적으로 행하는 한국 기업들의 현실을 숨 가쁘게 재현하는 곡에서도 김오키의 연주를 비롯한 음악은 낮고 느리다. 그동안 노동자들의 현실을 노래한 음악들 가운데 김호철 등의 노래처럼 단순명쾌하게 선동적이지 않고, 최창남 등의 노래처럼 소박하지 않으며, 노래모임 새벽의 노래처럼 웅장하지 않은 김오키의 음악은 김오키의 방식으로도 노동자의 삶과 현실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모든 예술 작품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거나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던지는 작품은 없다. 모든 작품은 현실의 기록이거나 반영이며 대응이고 개입이다. 1집에서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모티브로 한 곡들을 발표하며 문제의식을 드러낸 김오키는 자신의 모든 음반에서 유사한 문제의식을 이어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주목했고, 이번 음반에서는 곡들뿐만 아니라 제목의 메타포로 오늘을 살아가는 이의 두려움과 불안을 드러낸다. 김오키는 다른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예술작품들처럼 인문사회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본능 같은 감각으로 오늘의 공기를 포착하고 터트린다.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기다려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우리 사회는 아직도 행복하지 않다. 많은 이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이겨내”야만 한다. 그러나 “가본 적 없는 곳에/아름다운 저 도시엔/내가 가야 할 길이 없”다. 슬프고 불안하고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음반 전체를 아우르는 김오키의 쓸쓸한 연주는 바로 그 현실과 현실에 대한 태도의 반영이며 재현이다. 김오키는 낭송뿐만 아니라 우원재의 랩과 히피는 집시였다의 노래를 동원하고, 아이패드로 만든 일렉트로닉 사운드 등으로 음반의 사운드를 확장해 음악의 장르와 사운드를 부풀린다.

김오키의 ‘스피릿선발대’
김오키의 ‘스피릿선발대’ⓒ제공 = 김오키

전태일의 목소리를 절절하게 복원한 음악
“이 음반은 좋은 음반이다. 우리가 취할 태도는 듣는 일이고, 생각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음반의 정서를 주도하는 소리의 속도와 질감은 슬픔과 우울함에 가깝다. 어떻게든 잘 될 거라고 막연한 희망을 품는 시대, 그러나 많은 이들은 별다른 기대를 품지 않게 되어버린 오늘의 무의식을 김오키는 이렇게 아름다운 슬픔과 우울로 기록하고 재현한다. 그리고 전태일의 글을 낭송하고 음악화한 ‘불타는 거리의 작별인사’에서 전태일의 목소리를 절절하고 농염하게 되살린다. 지금 읽으면 여성노동자를 대상화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전태일의 간절한 투지를 이렇게 영롱하고 생동감 있게 복원한 음악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면 김오키 음악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형식과 내용, 아니 내용과 내용이 함께 빚어낸 음악의 깊이는 지금 삶과 사회를 고민하는 노래들 곁에서 함께 반짝인다. ‘그게 그러니까’, ‘내 기억 속에 공포가’, ‘You've Got To Have A Flower On Your Mind’로 이어지는 후반부의 곡들도 음반의 정서를 이으며 음악의 매력을 완성한다. 좋은 곡, 좋은 연주, 의미 있는 메시지가 만났을 때 우리는 좋은 음반이라고 한다. 이 음반은 좋은 음반이다. 좋은 음반 앞에서 우리가 취할 태도는 듣는 일이고, 생각하는 일이고, 함께 듣는 일이다. 음악이 삶을 비추고 삶을 더 들여다보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과 유리되지 않는다. 이제 김오키가 보여준 진실을 향해 걸어가야 할 때다.

필자의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수요뮤직'이 하루 늦어졌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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