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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들어 해외 이민 폭증” 논란, 악마는 어떻게 통계를 왜곡하나?

“거짓말에는 그냥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학이 있다.”

19세기 영국 수상을 지낸 벤자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의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50년 전의 이야기지만, 디즈레일리의 일갈은 마치 요즘 한국 보수 언론과 자유한국당의 모습을 빗댄 듯하다.

“현 정부 들어와서 이민자가 폭증했느냐?”는 논란이 주 초반을 뜨겁게 달궜다. 사건의 발단은 일요일(7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한국을 떠나는 국민이 급증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해외이주 신고자수가 문재인 정권 2년 만에 약 5배나 늘어나 금융위기 후 최대라고 합니다”라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황 대표가 인용한 언론보도는 토요일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한국 떠나는 국민, 금융위기 후 최다’ 기사였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외교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해외 이주 신고자 수는 2200명. 이는 2년 전이었던 2016년 455명에 비해 다섯 배에 이른다는 게 《조선일보》 주장이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경제가 회복될 것 같지 않고, 가진 사람을 적대시하는 현 정권이 교체될 것 같지도 않다”는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 이민 폭증이 현 정부 탓임을 암시했다.

숫자를 악의적으로 왜곡하다

그렇다면 2년 전에 비해 작년 해외이주 신고자가 다섯 배로 늘어났다는 통계는 사실일까? 사실이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통계는 외교부 공식 자료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실일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미 여러 언론이 팩트체크를 했듯이, 2017년 12월에 해외이주법이 개정됐다. 법 개정 전까지는 해외에 살던 동포들 중 일부에게는 거주여권이라는 것을 줬다. 그래서 동포들이 그 나라 영주권을 받아도 한국 정부는 이들을 정식으로 해외 이주민으로 보지 않았다. 여권을 가지고 잠시 외국에 나간 사람으로 취급을 한 것이다.

2018년 해외 이주자가 2년 전에 비해 다섯 배나 늘었다고 주장하는 조선일보 기사.
2018년 해외 이주자가 2년 전에 비해 다섯 배나 늘었다고 주장하는 조선일보 기사.ⓒ조선닷컴 화면 캡처

하지만 이것이 부당하기 때문에 법이 개정됐다. 거주여권을 폐지하고, 영주권 받은 사람들은 정식으로 해외 이주민으로 신고를 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각국 대사관들은 2017년 12월 이를 집중적으로 동포들에게 홍보했다.

“해외이주법 개정에 따라 2017년 12월 21일부터 해외이주자에 대한 거주여권(PR) 제도를 폐지합니다. 따라서 현지이주자(외국에서 체류 중 영주권을 취득하는 사람)들은 새롭게 해외이주신고 대상에 포함됩니다. 기존 거주여권 보유자들은 지금부터 정식으로 해외이주 신고를 재외공관에서 마친 뒤 ‘해외이주신고 확인서’를 발급받아야 합니다”는 것이 그 홍보 내용이었다.

2018년 갑자기 해외이주자 신고가 늘어난 것은 그 해에 이주자가 증가했기 때문이 아니라 법이 바뀌는 바람에 오래 전부터 해외에 살던 동포들이 새로 신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통계는 숫자만 놓고 보면 사실이지만, 그들의 주장은 결국 멍멍이 소리라는 이야기다.

통계의 의미 왜곡, 그 전형적인 수법

사실 이는 보수 언론들이 사용했던 통계 조작의 전형적 수법이다. 자기들 입맛에 맞는 숫자가 어디선가 하나라도 나오면, 그들은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 숫자를 대문짝만하게 확대해 사람들의 시선을 끈 뒤 케이스 몇 개를 붙여 뚝딱뚝딱 기사를 완성한다.

이게 얼마나 철 지난 전형적 수법이냐면, 언론의 통계 왜곡에 대해 연구를 한 학자가 있을 정도다. 독일 막스플랑크협회 인간개발연구소 소장인 게르트 기거렌처(Gerd Gigerenzer)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저서 『통계의 함정:조작된 통계, 불량통계의 위험과 부작용』을 통해 《조선일보》류의 통계 왜곡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기거렌처 박사가 든 예를 살펴보자. 2010년 독일의 뉴스포털인 《포쿠스 온라인》이 내보낸 기사 제목은 ‘상어 공격:2010년에 비해 2배나 증가’였다. 당연히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내려던 독일인들이 큰 충격에 빠졌다.

그렇다면 이 통계는 사실일까?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2011년에 상어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 숫자는 분명히 2010년에 비해 갑절로 늘었다.

그런데 독일 국민들이 느꼈던 공포는 진실일까? 전~혀 진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2010년 전 세계에서 상어에게 공격을 당해 목숨을 잃은 사망자는 고작 6명, 갑절로 늘었다는 2011년 사망자는 12명이었기 때문이다.

드넓은 지구에는 무려 70억 명이 살고 있다. 그런데 그들 중 상어 공격으로 죽은 사람이 6명이었다가 12명으로 증가한 사실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나? 당연히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만 독일의 《포쿠스 온라인》은 ‘상어 공격 갑절 증가’라는 제목으로 숫자의 의미를 왜곡해 사람들을 공포로 내몰았다. 숫자는 틀리지 않았는데, 그들이 전달하려는 의미는 사기에 가깝다.

2008년 미국 공중파 NBC 5시 뉴스의 앵커 앨리슨 로저티(Allison Rosati)는 “요즘이 살기 힘든 시절이라는 새 통계가 나왔는데요. 시카고 범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해 전체적으로 절도와 강도, 주택침입이 17%나 증가했습니다”라는 뉴스를 전했다. 시청자들은 범죄가 무려 17%나 증가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렇다면 이 통계는 사실일까? 사실이다. 그런데 전달된 의미는 진실일까?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 통계는 절도와 강도, 주택침입이 평균 17% 늘어난 게 아니라 절도는 3%, 강도는 9%, 주택침입은 5% 각각 늘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셋을 합치면 17%라는 것이니 로저티 앵커가 말한 숫자가 틀리지는 않았는데, 전달하려는 의미는 사기가 돼버렸다. 전년에 비해 수확량이 쌀 5%, 보리 5%, 옥수수 6%, 밀 4%가 늘었다고 “올해 풍년이 들어 쌀, 보리, 옥수수, 밀의 수확량이 작년에 비해 모두 20%나 증가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명사수의 오류

그래서 언론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을 미리 정하고, 숫자를 끼워 맞추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기거렌처 박사는 이를 ‘명사수의 오류’라고 비꼰다. 백발백중을 자랑하는 소문난 명사수의 집 벽에는 늘 과녁의 중심에 총알이 박혀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웬일! 이 명사수는 과녁에 총알을 명중시킨 것이 아니라, 총을 미리 쏜 뒤 총알이 박힌 곳으로 달려가 과녁을 나중에 그린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무조건 백발백중이다. 《조선일보》가 하는 짓이 바로 이런 거다. 이들은 통계를 보고 기사를 작성하지 않는다. 어떤 기사를 쓸지 미리 정한 뒤 그에 맞는 통계를 찾아낼 뿐이다. 그러니 통계가 틀리지는 않는데, 그 기사는 진실과 영원히 결별한다.

“아무리 정부가 미워도 숫자 가지고 장난치지는 말자”는 호소가 이들에게 먹힐 리가 없다. 이들은 이미 언론의 상도덕을 땅바닥에 내던진 지 오래다. 그런데 《조선일보》야 워낙 삐리리한 신문이니 그렇다 치고, 그걸 떡 하니 페이스북에 올린 제1야당 대표는 뭐 하는 사람인가?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자들이야 말로 디즈레일리의 일갈처럼 통계를 이용한 세 번째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악마들이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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