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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 쫓아내기? 폭력 남편 두둔하는 정부 기관의 황당 변론

지난 10일 이혼한 결혼이주여성의 결혼이민(F-6) 체류자격을 다투는 재판이 열렸다. 쟁점은 이주여성과 한국인 남편 중 이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였다. 남편의 책임이 인정될 경우 이주여성은 결혼이민 체류자격을 얻을 수 있다.

이주여성 측은 가정폭력을 일삼은 남편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개XX”, “XXXX” 법정에서 고함과 함께 욕설을 퍼붓는 남편의 목소리가 음성 파일로 울려 펴졌다. 피고인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이하 서울출입국) 측은 “경상도 사투리”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서울출입국이 이혼한 결혼이주여성을 쫓아내기 위해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가정폭력 남편의 책임을 부정하는 등 무리한 주장을 펼쳤다는 비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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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가정폭력 명백한데…“남편 귀책사유 불명확”

이날 오후 5시 서울행정법원 행정11단독 이성율 판사는 베트남 여성 부티와인(40) 씨가 서울출입국을 상대로 제기한 체류 기간 연장 등 불허가 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했다.

부 씨는 한국인 남성 백 모(61) 씨와 2013년 5월 결혼해 2018년 3월 조정을 통해 이혼했다. 그는 남편이 결혼 생활 내내 욕설을 퍼붓는 등 폭언은 물론 신체적 폭행 등 정서적·물리적 학대 행위가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부티와인 씨는 “남편이 수시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했어요. 옷을 다 벗기고 밖으로 쫓아내기도 했어요. 화가 나면 머리채를 끌어 대문 밖으로 밀쳐버리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왜 그러는지 무슨 말인지 몰라 무섭기만 했어요”라고 호소했다.

백 씨는 가정폭력뿐 아니라 아동학대도 일삼았다. 백 씨는 부티와인 씨가 베트남에서 전 남편 사이에 낳은 딸 A(10) 양을 입양한 후 사소한 일에도 혼을 내고 욕설을 하는 등 정서적 학대를 했다. 이날 법정에서 공개된 음성 파일도 백 씨의 폭언을 견디다 못한 A 양이 녹취한 것이다.

부티와인 씨는 남편의 가정폭력을 피해 3차례나 피해자 보호시설인 쉼터로 도망가야 했다. 그러나 백 씨는 오히려 부티와인 씨의 잦은 가출을 이유로 2016년 7월 이혼소장을 제출했다. 그는 백 씨가 이혼소송을 제기한 사실도 알지 못했다.

부티와인 씨는 백 씨의 결혼 전력도 모른 채 결혼했다. 백 씨는 부티와인 씨와 결혼하기 전 총 4번의 결혼 경험이 있었다. 첫 번째 부인을 제외하면 중국, 베트남 등 외국인이었다. 4번의 결혼 모두 백 씨의 이혼소송으로 끝이 났다.

이혼 이후 부티와인 씨는 결혼이민 체류 기간 연장을 신청했으나, 지난해 6월 “혼인의 진정성 결여 및 남편의 귀책사유 불명확 등” 사유로 거부당했다. 그러나 그는 이대로 베트남에 돌아갈 수 없었다. 한국 국적을 가진 딸이 혼자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욕설이 사투리라고? 가정폭력 축소하는 출입국

이날 재판에 피고 측 증인으로 출석한 백 씨는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백 씨는 “부 씨가 가정은 뒷전이고 오로지 돈과 본인의 이익만을 위해 거짓말을 했다”라고 이혼 사유를 밝히며 가정폭력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신의 욕설 녹취 파일이 흘러나오자 백 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오죽했으면 내가 이랬겠냐”라며 모르쇠로 일관하던 태도를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바꾸기도 했다.

서울출입국 측은 백 씨의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울러 백 씨에게 “억양이 강하거나 말을 심하게 해 (부 씨가) 힘들어했냐?”라고 묻는 등 가정폭력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이에 부 씨 측 최정규 변호사는 “출입국은 결혼이주민의 비자 연장을 해 주지 않은 자신들의 위법한 처분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전 남편을 사실상 비호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출입국, 이주민을 범죄 집단처럼”

이처럼 서울출입국 측이 가정폭력 남편을 무리하게 두둔하는 이유는 백 씨의 귀책사유를 축소해 부 씨에게 결혼이민 체류자격을 부여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등에 따르면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해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은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결혼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 결혼이민(F-6) 체류 자격 중 혼인 단절(F-6-3)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한국인 배우자에게 귀책사유가 전적으로 있을 때만 인정되는 등 그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 최근 대법원에서 한국인 배우자의 주된 책임이 인정되면 이주여성에게 결혼이민 자격으로 체류할 수 있다는 판례가 나왔어도 부티와인 씨의 상황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최 변호사는 “부티와인 씨처럼 조정을 통해 이혼한 경우 한국인 남편의 책임을 증명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한국인 배우자의 책임이 인정됐을 경우만 결혼이민 체류자격이 부여되는 현실이다. 게다가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하루빨리 벗어나고자 조정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판결문을 통해 한국인 남편의 책임이 인정돼도 출입국 측에서 재조사를 벌이는 사례가 있다고 최 변호사는 전했다. 그는 “재조사는 결국 남편에게 가정폭력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것 뿐”이라며 “이주민들을 범죄 집단처럼 여기는 게 출입국의 기본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최 변호사는 지난 7일 베트남 출신 아내를 무차별 폭행한 한국인 남성 사건을 언급하며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이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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