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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자라는 아빠] 행복의 의미
자기는 안 자려고 하면서 인형은 열심히 재운다.
자기는 안 자려고 하면서 인형은 열심히 재운다.ⓒ필자 제공

오늘밤은 드디어 혼자입니다! 마치 휴가 복귀가 임박한 군인처럼, 지금 제게 주어진 두어 시간이 일생일대의 귀중한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오랜만에 일찍 귀가한 아내에게 아이 재우는 것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육아에서 벗어났기에 그동안 못했던 것을 떠올려봅니다. 엉망인 책상을 정리하거나, 독서를 할까 하지만 그런 적극적인 활동을 할 체력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무척 피곤함에도 맥주를 마시며 영화라도 한 편 보기로 합니다.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만큼 영화 선택이 무척 신중해집니다. 고민 끝에 겨우 고른 영화를 틉니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는 순간 온몸에서 쨍한 해방감을 느낍니다. "아~ 좋다"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제 방의 문고리를 아이가 덜컥덜컥 어설프게 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탄식이 반사적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방문을 연 아이는 스탠드 불빛에 눈을 찌푸리며 말을 합니다.

"아빠 잠이 안 와"
"엄마 옆에 누워있다 보면 잠이 들 거야."
"그런데… 엄마가 있으면 아빠가 안 재워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사실 그런 게 맞습니다. 아내가 일찍 귀가하는 날엔 소파 위에 기절하듯 엎어지며 아내에게 육아 바통을 넘겼습니다. 아내도 지금껏 일을 하고 왔으며, 당연히 쉬고 싶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때때로, 기어이 모른 척하고야 맙니다. 아무튼 아이는 저의 육아 교대 패턴을 눈치를 챘군요. 왜 모르겠어요.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가 잠이 안 온다고 할 때면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업어줄까?"

아이가 제 등에 업히기 전 40분간의 시간은 다른 날과 비슷했을 겁니다. 예상해보면 이런 상황이었을 겁니다.

일을 하느라 녹초가 된 아내는 자기 싫어하는 아이를 겨우 달래어 눕히고 불을 끕니다. 아이는 책을 읽어주면 자겠다고 떼를 씁니다. 조명을 켜 책을 읽어준 후 다시 눕습니다. 아이는 잠이 안 온다며 아내에게 베개를 바꾸자고 합니다. 아이는 한참 뒤척이다가 아내에게 이야기해달라고 합니다. 아내는 슬슬 올라오는 화를 참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줍니다. 이젠 진짜 자는구나 싶지만, 아이는 마실 물을 달라고 합니다. 아이는 잠시 누워 있다가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합니다.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다른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겠다고 합니다. 물을 또 달라고 합니다. 물을 마시다가 옷에 흘립니다. 급기야 아내의 인내심이 폭발하여 소리를 지릅니다. "안 잘 거야?! 잠 좀 자자!"

밤 11시. 졸리지만 잠들기 싫은 아이를 등에 업고 어두운 거실을 천천히 걷습니다. 창밖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 들어옵니다. 가로등 따뜻한 불빛에 생긴 우리의 그림자 한 덩이도 아른아른 움직입니다.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당장이라도 재워야 할 아이에게 괜히 말을 걸어봅니다. "수현아 행복해?" 아이는 "응"이라고 대답합니다.

"근데 행복이 뭔지 알아?"
"몰라."
"궁금해?"
"아니."

'어부바!'
'어부바!'ⓒ필자 제공

무엇이든지 "왜?" 혹은 "그게 뭐야?"라고 되묻는 아이가 지금은 행복이 뭔지 궁금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도 괜히 말을 이어가고 싶어,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습니다.

"행복은 '아 좋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순간을 말해. 아빠는 빨랫감이 없을 때 기분이 좋고, 엄마랑 커피 마실 때도 기분이 좋아. 회사 안 가고 너랑 집에 있는 날 아침에도 기분이 좋아. 넌 언제 기분이 좋아?"
"난 아빠랑 잘 때 좋아."
"아빠는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지네."

흐트러진 어부바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 몸에 힘을 주어 한 번 들썩입니다. 아이는 제 몸에 빈틈없이 붙으며 등에 얼굴을 파묻습니다. 아이가 잠이 들어 숨소리가 커질 때를 기다리며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잠든 아이를 조용히 눕힙니다. 아이를 눕히며 침대 위로 몸을 기울였을 때,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제 몸의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잠깐 누워볼까'하는 유혹과 '지금 누우면 영화건 맥주건 이 하루가 끝난다'는 절박함이 충돌합니다. 일단 잠깐 누워봅니다. 등이 바닥에 닿는 순간 온 몸이 녹아내리며 "아 좋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었음을 느낍니다. 다시 일어나지지도, 그럴 의지도 들지 않습니다. 몸이 퍼지는 것에서 묘한 행복감을 느낍니다. 비로소 육아 퇴근입니다. 영화와 맥주의 시간은 또 다음에 기회가 오겠지요. 아이의 다리가 제 배 위에 턱 올라오는데 슬쩍 웃음이 납니다.

스르륵 눈이 감기는데 문득 '아내는 오늘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까?' 궁금해졌지만, 이만 잠들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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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열 정신건강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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