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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호 교육칼럼] 고교 서열화 타파, 그 다음 대학 서열화는?

현 문재인 정부가 교육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정한 것은 시대적 요청을 잘 읽어낸 결과로서 당위성이 인정된다. 왜냐하면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성, 자유경쟁과 협동기제가 심하게 균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바로잡고 있는 고교 서열화 문제에 관련된 사안을 편의상 3가지로 나눠 살펴보기로 한다.

서열화 극복 관련 고교 학점제 및 입시개혁

첫째, 고교 서열화 극복 즉 일반고 살리기에 있어서 보다 긴밀히 연관된 제도가 고교학점제다. 학점제는 잘만 실현하면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매우 효율적인 방식이 될 것이다. 핵심은 학력과 적성에 따라 다양한 학급개설과 동시에 학력격차를 줄이려는 양면적인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급당 학생수는 15~20명 사이로 줄이고, 정서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우열반을 만들지 말고 혼성학급으로 하되 개성과 능력에 따라 달리 이동수업을 보장한다. 수학, 역사, 과학 등에서 기량이 뛰어난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보충지도가 어려울 만큼 학습지체가 있는 학생들 공히 외부 전문 연구원 및 대학에도 위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김정연 교사(경기 시흥 조남초등학교)가 묘사하는 아래와 같은 교실상황에서 마치 대장장이가 녹슨 쇠에 망치질하듯이 교사 혹은 보조교사가 다가가 학습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보듬지 않으면 안 된다.

“통제된 환경(1:1)에서는 확실히 결과도 금방 나오고 학습량에도 속도가 붙는다. 그래서 나는 늘 부모의 보살핌이 부족한 환경에 처해있거나 가정의 경제력과 문화가 빈약한 환경에 놓인 학생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옆에서 학습 조력을 꾸준히 해주면서 가르치면 학업 성취도가 올라갈 아이들, 게다가 이대로만 가면 특정 교과나 분야에 새로운 눈을 뜰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이 교실에 많다. 그 아이들이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 구조 속에서 나는 한없이 미안함을 느끼며 산다.”

“반면 중산층 이상 가정의 상당수 아이들은 선행학습이 되어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내용을 이미 알고 앉아 있다. 대학입시, 특목고 입시체제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부모의 1차적 교육과 통제로 6학년쯤 되면 이미 교육과정 대부분을 학습하고 왔기 때문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단위 차시 내 과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 떠들고 장난을 하며 여유를 부리기까지 한다.”

“어쨌든 수업시간은 공부하는 시간이지 떠들고 장난을 치는 시간이 아니기에, 특히 과제 해결 속도가 늦는 친구에게 방해가 되므로 혼이 나기도 한다. 학습하는데 기다려주지 못하는 조급함, 인내심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은 사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다. 교실에 있는 구성원 모두가 다 같이 조급해지는 것이다”(2019.7.24 에듀인뉴스).

대학 서열화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학교.
대학 서열화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학교.ⓒ뉴시스

둘째, 정부는, 지금과 같은 교육불평등 극복의 여정에서 갈등이 촉발되었을 때 고교 학점제와 연동된 대학입시 로드맵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일반고 전환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교육과정은 교육평가 및 입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약 1조 4000억을 증액함으로써 국가의 책임을 다하는 등 교육정책에서 일부 성과도 없지 않으나 전반적으로 유보로 일관함으로써 정책역량의 부족을 드러내고 있다.

전직 윤만식 교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운영위원)가 이 점을 힘주어 강조하면서 입시개혁의 골자는 ‘입시는 쉽게 하고 대학공부를 어렵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입시제도의 혁신을 위한 방향을 아래와 같이 짚어볼 수 있다. 포스텍(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송호근 교수가 말한다.

“입시교육을 탈피하려면 우선 대학과 대적해야 한다. 대학의 ‘입시 갑질’에 공교육은 꼼짝을 못하는데 ‘성적에 구애 안 받고 꿈을 실현하는 교육’이라. 진보 대안의 이 멋진 꿈이 실현되려면 ‘꿈과 앎을 정밀 측정하는’ 명문대학이 탄생하면 된다. 스펙도 못마땅해 즉석 문제풀이를 시키는 명문대는 이런 폭탄선언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사고, 특목고, 외고 등을) 모조리 내치기 전에, (서울시) 조희연 교육감이 할 일이 있다. 스카이대 총장들과 담판해서 ‘꿈의 순도’(純度)를 측정하는 획기적 입시안을 만들라. 이건 만리장정 감이다. 그러니, 자사고, 혁신학교 간 공존 경쟁이 최적이다. 선택지를 뺏으면 탈출행렬이 장사진을 이룬다”(2019.7.22일자 중앙일보).

송 교수가 언급하는 ‘꿈’은 전인교육과 적성을 꽃피우는 교육이다. 동시에 대학에서 이 ‘꿈’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입시제도의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사실 언제까지 초중고 교육이 서열화된 대학의 정점을 향한 맹목적 입시문화에 저당잡혀 있어야 하겠는가? 그의 논조는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나 ‘꿈’ 즉 ‘끼’와 ‘적성’을 포기할 수 없다는 교육자로서의 고민이 읽혀진다. 아울러 진보의 가치가 대지에 발을 디디지 않고 무한 상상으로 갈 수도 있다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렇다면 혁신학교는 지금보다 더 치밀해져야 할 것 같다.

미국의 고교 서열화 상황

여기서 잠시 미국의 고교 서열화 양상을 살피고 넘어간다. 미국 뉴욕의 공립 특목고에서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러 왔는데, 시험과목은 수학, 영어가 주를 이루며 시험시간은 보통 3시간 정도 걸린다. 예컨대 삼각법, 지문해석 등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연방에서 주의력 결핍장애와 같은 정신장애와 신체적으로 부상이 있는 학생들에 대해 504로 분류하여 기회균등 차원에서 배려하고 있다.

시험에서 이 학생들에게는 일반 학생들에 비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시간을 주면서 배려한다. 2016~2018년 이렇게 응시한 중학생들의 비율이 아시안계, 흑인, 히스패닉이 각기 7%, 19%, 20%인데 비해, 백인학생들의 비율이 42%로 압도적으로 많다. 백인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당연히 가난한 흑인 및 히스패닉 계열 가정의 자녀들이 배제됨으로써 인종적 불균형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일반 학생들이 응시하는 비율은 아시안계, 백인이 각기 49%, 48%로 가장 많고 흑인, 히스패닉은 약 13%, 18%로다(2019.6.17일자 뉴욕타임즈).

심지어 뉴욕에서 8개의 특목고 중 최고로 여겨지는 ‘스튜이베전트(Stuyvesant)’ 고교에서는 2019년 895명의 정원 중 흑인학생이 단 7명뿐으로 거의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2018년 10명, 2017년 13명에서 계속 줄어든 것이다. 이 학교의 아시아계 학생들이 무려 74%이니까 확실히 아시아계 미국인 자녀들의 교과실력이 압도적으로 앞서는 것이 확인된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특목고도 유사하다.

이에 대해 당국이 고교 입학시험을 폐지하고 중학교 내신성적으로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더니 특목고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계 시민들이 역차별이라고 하면서 반발했다. 아시안계 미국인들은 시험이 문제가 아니고 흑인과 히스패닉에 대한 이전의 교육과정이 부실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뉴욕 퀸즈의 주 상원의원이면서 시 교육위원회 의장은, 중요한 것은 아시아계 미국학생들을 전면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공동체 전체를 아우르면서 인종격차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엘리트 고교를 인종적으로 통합시키는 문제가 교육불평등과 차별을 극복함에 있어서 쉽지 않다고 한다. 뉴욕 전체 특목고생 중 흑인과 히스패닉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0%다(2019.3.18일자 뉴욕타임즈. 한글 소개 기사:2019.4.9일자 오피니언 뉴스).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볼 때 중학생들이 특목고에 가려고 수 개월 혹은 해를 넘겨 준비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라면 이는 교육선진국으로서는 좀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문제는 미국에서도 인종과 사회경제력에 의해 사회 및 교육불평등이 심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미국의 고교 및 대학이 서열화 국면을 보일지라도 한국에 비해 한층 다양한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에게 배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보다는 덜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전교조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대학서열화 등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전교조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대학서열화 등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대학 서열화의 병폐와 대안

셋째, 한국에서 ‘고교 서열화’의 연장선에서 있는 ‘대학 서열화’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서열이 거의 고착된 상황에서 대학간판이 기업과 공공기관의 취업 여부를 결정하는 우리의 모습은 고착된 신분사회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처럼 퇴행적이다. 신은종 교수(단국대)는 “학벌주의는 ‘배움’을 기준으로 신분을 나누었던 한국 특유의 유교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2018.3.7일 세계일보).

대학서열화의 논의는 주로 ‘대학통합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이중 공영형 사립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56번째 국정과제였다. 일단 한국은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사립대학 비중이 86.5%로 그 구조가 기형적이다.

대학서열화는 과열 입시경쟁과 고교 서열화, 학벌주의, 부의 불평등과 함께 연쇄고리를 형성하여 한국사회를 저개발의 상태로 묶어놓고 있는 중대한 병폐다. 그리고 사립대학의 공영화의 취지는 사립대학에 국가의 재정을 투입하고 운영진은 지역사회, 정부, 재단이 이사회를 구성함으로써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이것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김명환 교수(서울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같은 주제로 두 번 칼럼을 쓴 사실로도 확인된다(해당 기사:2018.8.30일자2019.7.11일자 경향신문).

한편 김종영 교수(경희대)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는 지위권력과 공간권력을 민주화시키기 위한 관심과 전략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듯하다. (지위권력은 서열화 구조의 정점에서 생기는 대학의 지배력이고, 공간권력은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에 의한 지배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김상곤 전 부총리가 특목고 폐지를 내세우면서 사교육비 절감을 추진한 바 있지만 이는 지위권력을 민주화시키기 위한 궁극적인 처방이 못 된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대학이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대학통합네트워크의 당위성, 2019.5.8일 교육혁신근본문제 해결 프로젝트 국회토론회 자료).

이어서 오호영 선임연구원(한국직업능력개발원, 경제학 박사)에 따르면 대학서열화는 “우선, 고등학교에서 대학진학 단계의 진로 선택을 재능이나 적성보다는 명문대학 진학경쟁으로 변질시켜 치열한 입시과열, 재수생 양산 등의 문제를 낳는다. 우리 청소년의 공부시간은 49.4시간으로 OECD 선진국에 비해 주당 15시간 많으나, 대학생들의 공부시간은 약 21시간으로 미국 27시간, 독일의 35시간 등에 비해 짧다.”(김기헌 외 2011; NEKNews, 2007)

“다음으로, 수도권 대학들은 경쟁에서 프리미엄을 누리는 반면 지방대는 입지적 불리함이라는 핸디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의 질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대학 간 경쟁 그리고 이를 통한 특성화가 필수적인데,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대학서열화는 경쟁의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명문대 입시경쟁이 과열됨으로써 가계는 높은 사교육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또한 대학에서 학생들의 역량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이들을 선발한 기업에 그대로 비용으로 전가된다. 기업은 대졸 신입직원을 뽑아서 재교육시키는데 신입사원 1인당 평균 5,960만원을 부담한다(한국경영자총연합회, 2013). 기업 내에 학벌이 형성되면, 인사관리를 어렵게 하고 조직의 단결과 화합을 저해할 수 있다”(대학서열화와 대학교육에 관한 연구, 2015).

이에 대해 김종영 교수의 대안은 사립대를 배제하지 않는 ‘대학통합네트워크’다. 간추리면 이렇다. ‘흔히 엘리트 대학을 없애면 대학이 하향 평준화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은 연구중심 대학으로 한 상향 평준화를 목표로 한다. 연구중심으로 가야 풍부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연구와 교육이 동시에 가능하며, 이때 비로소 “새로운 산업을 추동하여 창조와 경제의 엔진으로 작동”(Lane and Johnstone, 2012)하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의 UC 시스템 즉 ‘캘리포니아대학 체제’서 일례로 UC 버클리가 전자공학과 컴퓨터 공학에서 실리콘 밸리의 정보산업을 견인하는 것이 그것이다.’

‘엘리트 교육의 대표사례로서 흔히 프랑스의 그랑제꼴을 꼽는데, 그랑제꼴은 행정 등 현장에서 활동하는 인재를 양성하지만 실제로 연구역량이 취약하다. 그랑제꼴은 파리에 68개, 프랑스 북부 24개, 프랑스 중서부 30개 등 전국의 여러 도시에 설립되어 엘리트 교육기관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대학통합네트워크와 더 가깝다. 연구역량을 중심으로 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상하이 자이퉁 대학 글로벌 랭킹’에서 한국의 랭킹은 열악하다. 세계 15,000~17,000개 대학 중에서 100위 안에 미국대학이 50개인데 비해 놀랍게도 한국은 없다. 일본은 4개, 중국이 2개, 싱기폴이 1개인데 중국과 싱가폴의 글로벌 부상은 한국대학의 정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대학통합네트워크에 서울대를 포함시켜야 한다. 그러면 서울대가 상향평준화 과정에서 톱으로서의 지위권력은 잃지만 대신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선도적 역할이 계속될 것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특정 대학의 지위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대학이 연구 및 교육역량을 세계적으로 높이는 것이 아닌가? 일례로 충남대의 사회학과 교수 6명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충북대 같은 학과 5명을 통합하여 11명을 만들면 학과의 규모가 커지면서 연구역량이 강화된다. 하지만 이렇게 합쳐도 미국 연구중심대학의 숫자보다는 절대적으로 미약하다.’ 대학서열화 타파 즉 대학의 구조조정도 시급한 시점이다.

2019.8.2일은 일본이 백색리스트 명단에서 한국을 공식적으로 제외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가한 날이다. 일본 아베정권과 그 지지세력은 지금도 식민지배의 기억 곧 과거 속에 갇혀 있다고 보여진다. 이런 행태의 이면에 이들이 보유한 광범위한 첨단기술력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이에 교육개혁이 응답해야 한다. 1957년 옛소련이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 위성을 쏘아 올려 충격을 주었을 때와 같이 역사는 우리에게 위기때 교육에 눈을 돌렸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한국은 위기 때 조금 변하는 나라!’라는 말이 있다. 위의 오호영 연구원도 1997년 외환위기의 대환란을 겪고도 대학의 서열구조는 깨지지 않았다고 탄식한다.

이제는 서열화 및 교육불평등의 폐단을 얘기하는 이런 글이 반복적으로 쓰여지는 일이 없어야 할 것 같다. 대신 정부는 전향적으로 현장 및 전문가들과 소통하며 교육개혁의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찾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혁신을 위해서는 먼저, 주변 선배 정치인 등의 인(人)의 장막에 구애받지 말고, 명분이나 관행의 친숙함과도 결별할 수 있어야 한다.

신남호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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