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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 허용’ 판결, ‘표현의 자유’로 포장한 성폭력
대법원
대법원ⓒ김슬찬 기자

최근 대법원의 ‘리얼돌’(real doll) 수입 허용으로 후폭풍이 거세다. 여성 신체를 ‘진짜처럼’ 재현한 남성용 자위기구기 때문이다. 길이와 무게는 물론 실리콘으로 제작돼 피부 질감도 사람과 흡사하다. 여성의 가슴·성기 등 신체 부분이 구체적으로 표현됐다. 사용자는 유두·성기 등을 색깔·모양별로 골라 부착할 수 있고, 심지어 지인 또는 연예인의 얼굴로 맞춤 제작할 수 있다.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달라”라는 국민 청원이 6일 기준 25만 명을 넘어섰다. 청원인은 “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했지만 아무 움직임이 없어 성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리얼돌)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실제 여성을 같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극단적 성적 대상화, 즉 여성이 사람이 아니라 성적 도구로 인식되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이에 온라인상에서 여성들은 리얼돌을 ‘강간 인형’이라 부른다.

법원은 이러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듯하다. 판결문은 시종일관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리얼돌 수입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남성’의 성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여성’의 인격권을 외면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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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음란’ 기준 탓에 여성 인격권 쟁점도 못 돼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 6월 13일 “관세청의 리얼돌 수입 보류 처분을 취소한다”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제7행정부(부장판사 김우진)의 논리는 크게 2가지다. ▲리얼돌의 형태가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볼 수 없다” ▲리얼돌은 “성기구”로서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 등이다.

여성 인격권의 침해 여부는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음란성’이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인천세관이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며 리얼돌 수입을 보류하자 수입업체가 수입 보류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풍속을 해치는’은 성 풍속을 해치는 음란성을 뜻한다.

대법원은 음란이란, ▲사회 통념상 일반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으로서 ▲단순히 저속하다거나 문란한 느낌을 준다는 정도를 넘어서서 존중·보호돼야 할 인격을 갖춘 존재인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해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이어야 한다고 정의했다.

법원은 또 “음란이란 개념은 사회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변동하는 상대적이고도 유동적인 것이고, 음란성에 관한 논의는 사회 일반의 성적 도덕 관념이나 윤리 관념 및 문화적 사조와 직결된다”라며 “아울러 개인의 사생활이나 행복추구권 등과도 깊이 연관되는 문제로 국가 형벌권이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에 적절한 분야가 아니다”라는 판례를 제시했다.

다시 말해 법원은 사회적 법익인 건전한 성 풍속을 기준으로 리얼돌 수입 규제 여부를 따졌다. 이에 해당 성기구가 사회 풍속을 해칠 정도로 음란한지에 대한 판단이 우선된 것이다.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법이 (음란성이라는) 논리를 정해놓은 이후에 풍속을 해치는지로 다투고 있으니 정작 논의해야 할 여성의 인격권은 쟁점도 되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리얼돌 주문 시 지인 또는 연예인 얼굴로 주문 제작하거나 점, 모반, 타투 등을 추가할 수 있다.
리얼돌 주문 시 지인 또는 연예인 얼굴로 주문 제작하거나 점, 모반, 타투 등을 추가할 수 있다.ⓒ리얼돌 판매 사이트

법원 “성기구는 필연적으로 사람 닮아”
“남성만 ‘더 리얼한’ 여성 신체 추구해” 반박

항소심은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라고 판단한 1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리얼돌과 여성의 신체의 유사성을 인정하면서도, 유두·성기 등이 비슷하지 않고 음모 등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왜곡했다고 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처분 대상이 완성되지 않은 제품인 점이 한몫했다. 법원의 판단을 받은 리얼돌은 얼굴, 유두, 성기 등이 부착되지 않은 형태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성기구는 필연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거나 묘사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제작되고 사용되는 것”이라며 완성품일지라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성기구가 여성 신체와 똑같다고 해서 여성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가 남성 중심적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성기구가 사람의 신체와 똑같아야 한다는 건 남성에게만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재판부가 남성의 시각에서 ‘사람’이 아닌 ‘여성’의 존엄성과 가치를 판단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사이트에서 판매 중인 아동 리얼돌
한 사이트에서 판매 중인 아동 리얼돌ⓒ온라인 커뮤니티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여성용 성기구의 경우 남성 신체와 유사하지 않다. 초기에는 남성 성기와 비슷한 형태였으나 점차 빛, 색깔, 진동 등 다양한 기능이 더 중시되는 방향으로 발전됐다. 그러나 남성용 성기구는 ‘더 리얼한’, 다시 말해 실제 여성 신체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형됐다”라고 설명했다.

윤김 교수는 “만약 성욕이 자연스러운 욕구라면 왜 성기구의 변화가 성별화되는가”라며 “극사실주의일수록 성적 쾌락이 올라간다는 자체가 남성형 자위기구를 표준으로 뒀기 때문이다. 성욕의 주체는 남성이며, 남성의 쾌락을 만족시키는 것이 성기구의 목적이라고 공언한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김홍미리 연구활동가는 “여성은 남성의 성기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몸과 쾌락에 집중한다. 그러나 남성은 여성의 신체 없이는 자신의 쾌락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리얼돌로 증명됐다. 리얼돌은 (남성용 성기구가) 여성 혐오적 방식으로 퇴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성기구가 성 기능 장애를 가진 경우나 성행위 상대가 없는 경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는 재판부의 판단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남성 중증 장애인의 성욕 해소를 위해 리얼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김홍 연구활동가는 “(남성 중증 장애인의 성욕 해소를 위해) 꼭 여성 신체가 필요한 건 아니다. 남성에게 성적 욕구가 있다고 해서 여성에게 (남성의 욕구를) 풀어줘야 할 의무는 없다”라며 “남성은 시각적 동물이라서 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때, 그 앞에 등장해야 할 여성들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리얼돌 후기
리얼돌 후기ⓒ유튜브

리얼돌이 사생활?
“남성의 폭력 방출 권리를 표현의 자유 이름으로 보장”

재판부는 또한 성기구인 리얼돌은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성기구는 사용자의 성적 욕구 충족에 은밀하게 이용되는 도구에 불과하고,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라며 “개인 활동에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 것이 개별적 인격체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기구를 대외적으로 표현되는 음란물과 구분했다. 재판부는 “공중에게 성적 혐오감을 줄 만한 성기구가 공공연하게 전시·판매됨으로써 그러한 행위를 제재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이 아니라면 성기구를 음란물로 취급해 수입 자체를 금지하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리얼돌은 다른 성기구처럼 사생활 문제에 국한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여성과 똑같은 모습을 한 성기구는 여성의 신체 또는 성 관념 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이 사생활 문제로 축소해 남성들에게 여성의 인격권을 침해할 권리를 보장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윤김 교수는 “대다수 사람이 포르노를 통해 성행위를 학습하고, 실제 성행위에서 그대로 적용한다. 포르노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하는 자위 영역이라고 하지만, 현실 관계에 반영된다”라며 “남성들은 리얼돌과 했던 행위들을 여성들에게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리얼돌은 (남성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리얼돌을 상대로 남성들은) 모든 행동이 가능하다”라며 “자위 도구로서 여성 신체가 필요하고, 남성은 성욕을 무조건 방출할 수 있으며 여성은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리얼돌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리얼돌ⓒ쿠팡

윤김 교수는 남성들에게 여성을 상대로 ‘마음대로 해도 된다’라는 권력 욕구를 보장했다고 꼬집었다. 여성들이 성범죄 위협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성의 거부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오히려 ‘리얼돌은 했는데, 너는 왜 안 하냐’라는 식의 적반하장 태도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법원이 폭력을 방출할 권리를 성적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장했다”라고 꼬집었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만연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리얼돌은 사생활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김 교수는 “리얼돌에서 ‘돌(doll·인형)’은 자위기구로서의 인형을 넘어서 사회 안에서 여성의 위치성까지 함축하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예쁨받을 수 있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언제든 폭력에 짓이겨질 수 있고 소비될 수 있고 대체될 수 있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성들이 단체 대화방에서 아는 여성들을 성적으로 품평하고, 강간을 예고하는 사례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들은 이미 남성 중심적 포르노 문화 안에서 학습한 성욕을 발산하고 있다”라며 “남성들에게 성욕 해소 방식은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포르노나 성기구로 방안에서 혼자 자위를 할 때뿐 아니라, 상대 여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상대 여성을 고통·쾌락 등을 느끼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성욕을 풀어줘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라고 말했다.

그는 “리얼돌을 개인의 성적 자유로 본다고 할 때, 성적 자유는 남성형으로만 존재할 뿐 여성형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위 도구로서 살아있는 여성과 똑같은 리얼돌이 있어야 한다는 건 여성의 인격권 훼손이 남성 쾌락의 근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꼬집었다.

김홍미리 연구활동가는 “주어가 누구냐를 따져야 한다”라며 “누구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고, 누구에 대한 성적 침해냐를 분명히 해야 하는데, (재판부는) 애매하게 인간으로 뭉뚱그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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