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김영욱의 노동경제] 한일경제전쟁, 정부는 총구를 내부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일본의 경제전쟁 선포 이후 문재인 정부는 정면대응을 제시하고 소재·부품기업에 대한 지원 등을 포함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포함 업종의 경우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국산화를 통해 자립역량을 강화하겠다고 한 것이다. 나아가 남북경제협력을 통해 난국을 풀어가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한국이 원한 바는 아니지만, 자국의 경제난과 축소되는 동북아에서의 위상, 아베정권의 신군국주의 망상으로 일본이 선제 도발한 경제전쟁이 시작됐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일이다.

재량근로제 가이드라인, 52시간제 노동 무력화

그런데 정부당국은 말로는 경제체질을 바꾸는 일을 하겠다면서 당장의 기업특혜로 이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를 ‘사회적 재난’으로 보고 관련 사업장에 ‘인가연장근로’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7월 31일 고용노동부는 ‘재량간주근로시간제(이하 재량근로제) 운영 안내서’를 발표했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이 31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부 브리핑실에서 '재량간주근로시간제 운영 가이드 발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재량근로제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업무수행 방법을 근로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는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이다. 2019.7.31.
권기섭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이 31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부 브리핑실에서 '재량간주근로시간제 운영 가이드 발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재량근로제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업무수행 방법을 근로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는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이다. 2019.7.31.ⓒ뉴스1

‘재량근로제’라고 표현되는 이 제도는 법정 연장근로 한도에 구애받지 않고 실제 얼마를 더 일하든지 노사가 서면합의한 시간만 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대상 업무도 우리가 흔히 애널리스트라고 부르는 ‘금융투자분석’ 및 ‘투자자산운용’을 새로 포함해 확대했다. 이를 시행하는 조건에는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라는 조항을 붙여 놓아 마치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노동시간 연장에 동의할 때만 가능한 듯이 적어놓았다. 노조가 있는 곳은 노조와, 없는 곳은 노동자의 동의를 얻은 대표와 서면합의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노조가 있는 곳은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총의를 얻어 판단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러나 노조가 없는 곳은 사실상 사측이 정한 ‘근로자 대표’의 서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연장근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재량근로제는 노동시간을 아예 측정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어서 추가 임금 청구도 어렵다. 고용노동부 안내서에는 아래와 같이 명시하고 있다.

○ 적법하게 도입‧운영되는 재량근로시간제 하에서는 서면합의에 명시된 간주근로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봄
○ 따라서, ①근로자가 더 많이 근로했다거나 ②사용자가 더 적게 일했다고 반증을 제시해도 간주된 근로시간이 바뀌지 않음

당연히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정부가 그동안 주 52시간 적용 처벌유예기간을 줘서 사실상 52시간 노동시행을 늦춰놓은 마당에 또 다른 방식으로 노동시간단축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강력히 성토하고 있다.

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고 있는 이원욱 의원이 내년으로 예정된 50~299인 사업장의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적용을 유예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당 최운열 의원은 고소득 전문직에 주 52시간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과 관련해 정부·여당이 기업에 ‘재량근로제’를 허용하기로 한 데 이어 노동시간단축에 역행하는 정책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여당의 행태는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일본과의 ‘경제전쟁’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것이 단기전도 아니고 우발적인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이른바 국제분업이라는 미명하에서 핵심부품소재를 일본에서 들여오고 한국은 값싼 노동력을 중심으로 생산·수출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성이 극대화하고, 세계 최고수준의 반노동국가가 됐다. 최장의 노동시간과 산재왕국 오명은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과 1997년 노동법개악저지투쟁과 2017년 촛불항쟁을 통해 조금씩 개선됐다. 그런데 이제 다시 과거의 노동집약적 경제, 살인적 노동조건으로 돌아가자고 한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AP/뉴시스

1965년 한일협정식 반노동 관념으로는 경제난을 극복할 수 없다

오히려 해법은 대기업 중심 재벌체제의 근본적 변화에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는 재벌중심체제를 유지하며 해외 소재와 부품에 기대어 자체의 기술개발을 등한시 해왔다. 대기업들은 그동안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헐값으로 도적질하거나 단가를 후려쳐서 고사시켰다. 경제적 측면에서 대기업은 이번에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정부는 자구노력을 하는 기업을 지원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절대 총구를 내부로 향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저하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강제징용을 부인하는 것에서 출발한 일본의 신군국주의화 열차는 이제 막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라는 길목을 돌아섰을 뿐이다.

큰 경제적 파고가 중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기업의 체질을 개선해 새로운 경제체제를 수립해야 한다. 지금 호들갑을 떨며 노동자에게 고통전가라는 카드를 내미는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다시 국제분업이란 미명하에 저임금 노동력착취의 경제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1965년 한일협정 실행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저임금 장시간노동을 문재인 정부와 특히 여당 의원이 들고나온다면 한일경제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백기를 드는 꼴이다. 재량근로제 폐지와 주52시간 노동제 즉각 시행,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지원 및 보장,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약탈하는 수익 체질의 개선으로 한국경제의 새 판을 짜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

김영욱 미래노동교육원 원장, ‘8일에 끝내는 노동조합특강’ 저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