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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사람과 현장] 최저임금 말고는 아무것도 없지만

안산 반월공단의 작은 사업장에 들어가 일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엊그제 첫 월급을 받았는데, 더하고 뺄 것도 없이 딱 ‘최저시급x일한 날 수+주휴수당’이다 보니 근로기준법 공부하며 익힌 임금계산법도 필요치 않다. 초과근로와 각종 수당들이 없으니 통상임금 계산하느라 골치 아프지 않아도 되더라.

최저임금 투쟁을 하면서 신문지면이나 노조 소식지를 통해 보던 숫자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알량하고 단순한 숫자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허무하기도 하고 화도 난다. 이 돈으로 어떻게 살지? 절로 “이 돈으로 살아봐, 니가 한 번 살아봐~” 하는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누가 만들었는지 가사 한 번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감탄을 했다. 대한민국에 왜 아직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경기도 안산의 반월공단
경기도 안산의 반월공단ⓒ뉴시스

면접을 보았던 상무는 지난해 최저임금이 너무 많이 올라서 그나마 있던 상여금 100%를 없앴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을 뽑는 이유는 ‘임금 부담이 커서 잔업비용을 줄이려고’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근무한 지 한 달 동안 갑자기 물량이 나가야 해서 퇴근시간 5분 전에 급하게 1시간 잔업을 하게 된 일 말고는 초과근무는 없었다.

근로계약서를 쓰던 날 상무가 사람들에게 정규직이지만 계약서상 계약기간이 한 달로 돼 있는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성명해주었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참.

몇 달 전 수습기간(3개월) 중에 사람을 하나 잘랐나 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노동부에 부당해고로 신고를 한 거지. 그래서 회사가 생각해낸 게 수습기간 중엔 사람을 해고해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계약기간을 한 달로 만들어 놓은 거였다. 물론 갱신기대권이라는 게 있어서 다툼의 소지가 있겠지만, 노동법이나 제도에 접근이 어려운 노동자들은 그냥 눈 뜨고 당할 공산이 크다. 거기다 스스로 서명한 근로계약서가 있으니.

그런데 사실 그런 꼼수까지도 별반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하다. 며칠 전 근속이 1년 쯤 되는 노동자 한 명을 불러다 “나가라”고 했단다. 그걸 회사도, 노동자들도 다들 ‘권고사직’이라고 불렀다. 한 번에 동의를 하지 않으면 동의할 때까지 몇 번이고 불러서 괴롭히고 결국 스스로 사직서에 서명을 하게 만들고, 회사는 그걸 수리하고. 서류만 보면 사직이긴 하니까.

현장 인원이 100명쯤 되니 주변을 기준으로 볼 때 그렇게 영세한 사업장은 아닌 것 같은데도 이 지경이다. 노사협의회는커녕 현장에 취업규칙이 비치되어있지도 않다. 아직도 그런 사업장이 있냐고들 묻는데, 노조가 없으면 다 그렇다고 보면 된다. 나는 반월공단의 보통 노동환경을 가진 사업장에 들어와 있다.

출근하는 노동자들(자료사진)
출근하는 노동자들(자료사진)ⓒ뉴시스

노동자들도 다 안다.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것, 임금이 낮다는 것, 때론 법도 교묘히 어긴다는 걸. 하지만 더 힘든 사업장도 있다고, 더 나쁜 사장들도 많다고, 여기는 임금은 제때 꼬박꼬박 주지 않냐고 말하며 꾸역꾸역 일을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4~50대 여성들은 절실하다. 온갖 취업박람회, 구인공고 사이트를 전전해도 0명을 뽑는데 구직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00명 이상이다. 최저임금, 제조업 사업장들이 그렇다. 다들 조금 더 나은 곳이 있으면 바로 옮길 마음을 갖고 있지만, 노동부 인력개발센터에 등록을 해놓고 기다려 봐도 딩동딩동 오는 문자는 하나같이 영양가가 없다. 어차피 같은 조건인데, 괜히 발품만 팔기 아까워서 한 달, 두 달 일하다 보면 의미 없는 근속만 늘어난다.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이다.

외부자의 시선으로만 보던 무노조 중소기업에 들어와 내부를 보니 조직화가 왜 어려운지도 보이고, 민주노총에서 하는 미조직 사업들의 한계도 보인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기. 언젠가 노동운동의 재산이 되길 바라며 몇 차례 걸쳐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엄미야 금속노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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