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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조선 최초 단발여성이자 시대를 앞서 나간 강향란이야기, 음악극 ‘낭랑긔생’
음악극 ‘낭랑긔생’
음악극 ‘낭랑긔생’ⓒ정동극장 제공

이런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지 싶다. 오며 가며 지하철에서나 커피숍에서 읽을 작은 문고판 책을 찾고 있었다. 다른 책들은 크기가 크고 무거워서 가지고 다닐 엄두가 안 나서였다. 그러던 차에 큰 아이의 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이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었다. 오래전 읽은 희미한 기억이 있고 무엇보다 작고 가벼워서 얼른 가방에 챙겨넣었다.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면서 읽자니 여자에게 일정한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 울프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왜 여자들은 일 년 내내 일을 해도 가난하며, 그녀들의 엄마들은 어째서 한 푼의 돈도 소유할 수 없으며, 왜 여성들을 맘놓고 공부도 할 수가 없는 지를 쉼없이 쏟아냈던 구절들이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무대에서 조선 최초 단발여성 강향란을 만나고 나니 아이의 방에서 우연처럼 찾아낸 버지니아 울프가 우연은 아니었지 싶다. 1922년 6월 22일자 동아일보에 단발머리에 모자를 쓴 세련된 모습의 한 여성의 사진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서대문 정측강습소에 머리를 자르고 남장을 한 젊은 여자가 남자들과 함께 공부하겠다면서 나타난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한남권번의 기생 강향란이었다. 낯선 이 사건은 매우 흥미롭고 신선했고 놀라웠다. 그렇게 음악극 ‘낭랑긔생’은 뜻밖의 파문을 일으키며 관객들의 지지를 받아냈다.

시장에서 노래를 부르며 삯바느질 일을 하던 ‘간난’이는 아버지의 노름빚으로 ‘한동권번’에 기생으로 팔려오게 된다. 권번장 차순화는 간난에게 ‘향란’이란 기명을 준다. 권번에서 노래와 춤, 그리고 글을 배우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요릿집 연흥관 사장 시봉은 5남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정숙에게 수상한 일거리를 제안한다. 향란은 친구를 위해 시봉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려 애를 쓰지만 여자 주제에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향란은 그렇다면 남자가 되어 불의에 맞서겠다며 머리를 자르고 남장을 한 채 나타난다.

음악극 ‘낭랑긔생’
음악극 ‘낭랑긔생’ⓒ정동극장 제공

머리를 자르는 것이 단순히 근대문물의 상징을 넘어 전통과 단절이고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 반기를 드는 행위였으니 조선 최초로 ‘단발랑’(단발여성)이 된 강향란의 삶이 순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17세에 이미 이름을 알린 기생이자 자유연애 당사자였고, 애인의 도움으로 교육을 받았고, 일본과 상해로 유학,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고 두번의 자살 시도를 하기까지 강향란의 삶은 드라마틱했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불꽃같았던 그녀의 삶이 오히려 무대에서는 기생 강향랑의 삶에 더 많은 집중을 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음악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웠고 배우들의 결고운 목소리와 경성의 분위기가 한껏 녹아든 무대는 볼만했다. ‘침묵하지 않겠다’는 강향란의 다부진 외침은 음악극 '낭랑긔생'을 끌고가는 가장 큰 힘이다. 여전히 아쉬운 것은 독립운동가에도 이름을 올린 강향림의 존재를 극의 마지막 영상 속에서 찾아볼 뿐이었던 점이라고 하겠다.

음악극 ‘낭랑긔생’

공연날짜:2019년 7월 26일-8월
공연장소:정동극장
공연시간:100분
제작진:작 조은/연출 강유미/작곡 음악감독 류찬/무대디자인 신승렬/안무 류정아/조명디자인 박준범/음향디자인 이용석/영상디자인 문혜진
출연진:김주연, 홍륜희, 이예지, 박찬양, 이지해, 노희찬, 윤성원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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