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났다. 2008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에 뽑혔고, 2009년 77일에 걸친 평택공장 점거 파업을 주도해 3년을 선고받기도 한 한상균 전 위원장은 2015년 민주노총의 첫 직선 위원장으로 뽑혔다.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당선된 뒤 박근혜 정권에 맞서 투쟁에 앞장섰던 그는 민중총궐기 시위 주도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2년 반을 감옥에 있다가 지난해 5월 가석방됐다. 가석방 이후 부지런히 다니며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는 한 위원장은 최근 ‘권유하다’(권리찾기 유니온)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2일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만난 한 위원장은 “절망과 체념 분노를 희망으로 바꾸는 운동장을 만들려고 한다”며 “지금은 노동자 편인가, 아닌가로 갈라져야 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계급적 입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동안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그들의 문제를 대표하기 위해서 투쟁해 왔다. 그 싸움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고 하는 걸 스스로 확인하고, 절망적인 삶을 아무도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해, 직접 나서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과 접선하게 해야 한다”고 ‘권유하다’를 조직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한 위원장은 이어 ‘권유하다’ 참여를 호소하며 쓴 편지에서 ‘계급 없는 노동자들의 계급전쟁에 나서며’라고 호소한 이유를 설명하며 “계급이 없는 게 아니라 빼앗긴 것이다.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한국사회에선 어렵다. 이런 문제들을 정치는 여전히 시스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해결하지 않는다. 영향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2천만 노동자 가운데 계급 없는 노동자가 1,750만 명이다. 사실 우리가 같은 노동자라는 생각으로 움직이면 잘못된 착취구조를 바꿔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이어 “우리는 임금을 조금 더 받고, 덜 받는 문제로 우리 계급을 나눌 수 없다. 그들이 우리의 계급적 단결을 막으려고 우리를 나누는 것이란 걸, 자본은 여전히 우리를 분할하려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우리는 더하기 하려고 하고, 저들은 빼려고 한다. 그것이 지금 충돌하고 있다. 무권리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부터 한다면 같은 마음으로 모일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한 위원장은 진보정당 운동에 있어 조직노동자들과 민주노총의 역할도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노동자 정치를 단순히 역할론으로만 접근하면 힘들다. 민주노총의 주도가 아닌 역할로만 접근하면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힘들 것이다. 어떤 주도냐? 사실 100만 조직이 마음먹으면 못할 게 무엇이냐. 지금 어느 정당이 조직된 100만 대오의 힘을 가진 곳이 있나. 그 힘으로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 파괴력이 크다”며 “그러기 위해선 동지들의 가슴을 뛰게 해야 한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지만, 노동자 정치를 함께 만들기 위해선 함께해야 한다. 자주와 평등, 좌와 우, 왜 우리는 그런 힘들을 엮어 민중을 견인할 동아줄을 꼬아내지 못할까? 계급적 단결과 노동자 집권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분명한 청사진, 노동의 내비게이션을 정립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상균 위원장과 일문일답.
“어떻게 보면 우리가 문재인 정부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태생적 한계에 대해 더이상의 논란은 소모적이다.”
질문 가석방으로 나온 지 1년이 조금 넘게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
답변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조합원 동지들과 시민 종교 사회 단체를 찾아뵙고 고마움을 전하고 고민을 나누면서 보냈다. 제가 민주노총 위원장 임기 3년 중 2년을 감옥에서 보낸지라 부재한 시간 동안의 고마움도 있고, 미안함도 있어서 부지런히 다녔다. 1년이 지났는데도 가야 할 곳도 많고 팔뚝질이라도 보태야 할 곳이 많다. 노동의 위기와 한국사회 불평등의 문제,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꺼내서 나누고자함은 변화의 절박함이 아닐까 싶다. 현장에선 다양한 질문들이 많았다. 옛날엔 거의 질문을 안 했는데, 어느 지역에 가면 질문을 한 시간, 두 시간 하는 데도 있었다. 다양하게 현장의 고민이 쌓여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동안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이 지났는데, 이 시대 민주노조에 대한 고민을 현장에서도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민주노조 운동을 나의 임금과 고용을 잘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많은 동지들이 하고 있었다.
질문 박근혜 정부가 물러나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노동계와 진보진영은 촛불 이후 투쟁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답변 저는 감옥에서 동지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박근혜처럼 노동자를 대놓고 적으로 규정하고 탄압하는 정권과 싸움은 오히려 쉬울 수 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의 문턱만 넘으면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걸어온 투쟁의 역사이자 잠재된 DNA가 있기에 가능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자신을 촛불 정부라 하지만, 그 정부의 성격이 노동자 이름으로 세운 정부, 노동자와 농민 빈민의 삶을 우선하는 정부가 아니기에 오히려 싸우는데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구호로서 여러 가지를 할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결국은 노동자 요구보다는 재벌들과 한편이 되어 그들의 요구를 우선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문재인 정부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태생적 한계에 대해 더이상의 논란은 소모적이다.
노동개악을 민주당 지도부 이름으로 대놓고 입법 예고하고 있다. ‘ILO 협약을 비준한다’는 입장만 반복될 뿐 ILO 핵심 협약 비준과 관련법 개정 폐기에 대한 청사진은 안보이고, 사용자 대항권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개악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동법 개악 문제가 하반기 국회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어야 하지만, 이 문제 있어서는 여야 간 별 차이가 없기에 총선 유불리로만 작동될 거로 생각한다. 통과되고 나면 노동운동은 더욱 급격하게 위축될 게 뻔하다. 그 때문에 더욱 긴장해야 하고 모든 걸 걸고 싸워야만 한다.
“진보정당의 역할을 논하며
국회의원 몇 석인지를 상수로 규정하는 것은
엘리트 대리주의를 노동자 진보정치로
보고 싶어 하는 착시가 낳은 산물이 아닐까?
누구 편인지 명쾌한 입장도 없이
국회 의석이 미미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시대는 지났다.”
질문 진보정당 혹은 진보정치 세력의 역할이 필요하지만, 아직 의석도 부족하고, 힘도 부족하다.
답변 프랑스에선 지금 ‘노란조끼’로 상징되는 노동자. 빈민들의 분노가 직접행동으로 조직되고 있다. 프랑스 사회 절대 약자들의 분노가 지도부 없이도 모이고 폭발함을 보고 있다. 분노가 모이고 그 힘으로 세상과 교섭했고, 테이블 없는 협상은 마크롱 정권이 노동자 민중의 요구에 답해야 하는 명령이었다. 대통령이 최저임금 즉각적 인상을 결정한 것은 나쁜 일자리만 늘어나는 불평등 사회로의 고착화를 해결할 긴급 처방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분노한 민중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지만, 저항은 멈추지 않고 있다. 낡은 질서를 엎어야 희망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보정당의 역할을 논하며 국회의원 몇 석인지를 상수로 규정하는 것은 엘리트 대리주의를 노동자 진보정치로 보고 싶어 하는 착시가 낳은 산물이 아닐까? 누구 편인지 명쾌한 입장도 없이 국회 의석이 미미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시대는 지났다.
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 자유주의 보수 정당들은 약자를 위해 일하지 않고, 노동자 착취를 고착화하는 일에는 찰떡궁합이다. 노동자 정치가 국회에서 집권계획을 가지고 노동자 서민의 목소리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아침에 의석이 늘어나고, 하늘에서 노동자 의석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무엇을 할 건지 분명한 전망이 있어야 하는데 현장에선 여전히 가슴이 뛰지 않고 있다.
“ILO 협약을 비준해 결사의 자유, 단결권을
보장하는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입장을 내야만 한다.
야당 핑계 대면서 지금의 착취구조를 유지하려 한다면
조직되지 못한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의 분노가
분출될 날을 앞당기게 할 것이다.
박근혜 이명박처럼 노동자들을 대놓고 탄압하진 않지만
결국 노동자들의 권리를 옥죈다면
문재인 정부도 반노동자 정부다.”
질문 문재인 정부 들어 노사정위 참여 등 사회적 대화와 관련해서도 이견이 있었고, 지금도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평가한다면.
답변 대한민국은 노동기본권이 국제기준에 비춰 턱없이 미비한 노동 후진국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ILO 핵심협약으로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의 보호에 관한 협약’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대한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인 87호와 98호를 우리나라가 비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협약을 조약 하지 않은 나라는 OECD 국가 중 미국과 우리나라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6월에 ILO 100주년 기념행사가 스위스 제네바서 열렸다. 이때 문재인 대통령은 북유럽을 순방하고 있었다. 당연히 문 대통령이 가서 지금까지 노동기본권을 제약해왔던 악법들을 청산하고, 최소한 노동자들에게 보장돼야 할 기본권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비준하겠다는 입장을 낼 거로 기대하고 있었다. 대선 공약이기도 했기에 당연히 기대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문 대통령이 방문한 국가의 지도자들은 스위스에 가서 축사하고 왔는데, 문 대통령은 스위스 부근 나라까지 갔지만 100주년 행사는 외면하고 왔다.
노동기본권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560만 노동자가 최소한의 법인 근로기준법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힘 있는 노동자들보다 그들을 우선해서 법적으로 보호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의 권리를 빼앗아 버렸다. 한국사회는 이런 야만의 현실을 당연히 여긴다. 야만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국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해 갈 수는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촛불 정부인 문재인 정부에서도 바뀌지 않는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ILO 협약을 비준해 결사의 자유, 단결권을 보장하는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입장을 내야만 한다. 야당 핑계 대면서 지금의 착취구조를 유지하려 한다면 조직되지 못한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의 분노가 분출될 날을 앞당기게 할 것이다. 박근혜 이명박처럼 노동자들을 대놓고 탄압하진 않지만 결국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옥죈다면 문재인 정부도 반노동자 정부다.
질문 아울러 문재인 정부에 맞서 투쟁하는 민주노총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서도 평가를 해달라. 아직은 문재인 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것에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있다.
답변 조합원들 다수가 문재인 정부를 자기 손으로 찍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의 바람처럼 되고 있진 않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비판을 하고, 노동자의 적으로 규정해 싸울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선 머뭇거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사회가 한 번도 노동자 편이냐 아닌 편으로 갈라져 본 적이 없다. 현대사는 분단 체제를 상수로 두는 정치에 모든 것이 블랙홀처럼 빨려간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합원들도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인데, 여기에 맞서 투쟁하는 게 맞는지 안 맞는지 자기 갈등 속에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확히 해야 한다. 당장은 내년 총선, 이후 대선을 앞두고 쉽지는 않겠지만,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앞으로 정치는 노동자의 편인지 아닌지로 구분되고 평가돼야 한다. 시대의 요구를 노동자가 명령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물론 노동계급의 단결을 기치로 출발했던 여러 나라가 실패를 경험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우리는 그들의 성공과 실패조차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더 아픈 시간을 맞고 있다. 지금이라도 노동자가 노동의 내비게이션을 제대로 작동시켜서 한발씩 전진해 나가야 한다.
“‘권리찾기 유니온’은 사전적 의미의 노조는 아니지만,
노동조합 이상의 상상을 할 수 있는 조직으로 기획했다.
자기 권리를 빼앗긴 이들을 모으는 작업은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난 1987년에도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전국적으로 조직될 것이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린 1,700만 촛불도
들불처럼 타오를 줄 몰랐었다.
지금은 노동자 편인가, 아닌가로
갈라져야 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질문 현재 ‘권유하다’라는 조직을 만들어 노조를 설립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을 모으는 사업을 구상 실행 중인 것으로 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임이고, 어떻게 꾸려나갈 계획인가?
답변 절망과 체념, 분노를 희망으로 바꾸는 운동장을 만들려고 한다. 조끼를 입고 머리띠를 메는 것조차 불가능한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은 체념하고 있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경쟁에 뒤처져서 그렇다고 여긴다. 헌법이 당연히 보장해야 하는 권리를 빼앗겼음에도, 나에겐 원래 없는 권리라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함께 하자는 것이다. 누가 대신해줄 수 없기에, 스스로 나설 수 있는 길을 늦었지만 찾아야 하는 생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권리찾기’의 ‘권’과, ‘유니온’의 ‘유’에서 따온 이름이다. ‘권리찾기 유니온’은 사전적 의미의 노조는 아니지만, 노동조합 이상의 상상을 할 수 있는 조직으로 기획했다. 자기 권리를 빼앗긴 이들을 모으는 작업은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난 경험을 돌이켜보면 지난 1987년에도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전국적으로 조직될 것이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린 1,700만 촛불도 들불처럼 타오를 줄 몰랐었다. 지금은 노동자 편인가, 아닌가로 갈라져야 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계급적 입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동안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그들의 문제를 대표하기 위해서 투쟁해 왔다. 그 싸움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고 하는 걸 스스로 확인하고, 절망적인 삶을 아무도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해, 직접 나서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과 접선하게 해야 한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마음을 모으고 돈 모으는 소중한 연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세상과 교섭할 수 있도록 함께 하자는 것이 ‘권유하다’의 일차적 역할이다.
10월 9일 용산전자랜드 신관 랜드홀에서 창립발기인대회를 연다. 발기인대회에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확정할 거다.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적용하고, 노동조합을 할 수 없는 모든 노동자가 권리를 보장받는데 자격이 필요치 않은 세상을 만들어 갈 첫발을 땐다. 더는 약자들의 희생을 한국경제의 디딤돌로 삼는 시대는 종지부를 찍는 직접행동, 집단행동, 세상과 교섭, 무권리 노동자의 준엄한 명령으로 이어질 희망을 조직해 나갈 것이다.
질문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것은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에 있어 최대의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때문에, 그동안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동안의 시도와 이번 ‘권유하다’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답변 선배 활동가들의 역할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 결과가 당장 외형상으로 안 나왔을 뿐, 그들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그 힘들이 민주노총 100만 조직화로 발전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 동지들이 해온 시도를 저도 이어가고자 할 뿐이다. 제가 가는 길은 바로 조직화하고 눈에 보이는 노조의 깃발을 세우는 길이 아니라, 신변이 보장되는 온라인에 분노를 모아가는 1차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노동조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노동자, 사용자와 교섭을 통해 자신의 삶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세상과 교섭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특히 청년들이 제대로 노동에 대해 배우지 못한 채 사회에 나오는데, 이들에게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쉽게 설명하는 기획도 준비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할 수 있는 여러 콘텐츠를 발굴하고 있다. 차분하게 하나씩 해나갈 생각이다. 제도를 바꾸고, 법을 바꾸고, 업종 차원의 불합리한 부분의 해법도 발굴해 가려 한다. 라이더 배달 노동자들의 보험 문제가 심각하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지금 54만 명인데, 앞으로 2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란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다양한 방식들이 필요한데, 그동안의 노동운동 상식으론 길을 찾기 어렵다. 계속 업종은 진화되고 있다. 이른바 노동의 사각지대는 점점 더 커져서 조직노동자보다 훨씬 넓어진 상황이다. 이걸 헤쳐나가는 것은 그동안의 시각만으로는 어렵다. 전통적 방식의 민주노조 운동과 조직 노동자들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새로운 변화에 맞서기 위해선 조직노동 밖의 민주노조 운동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질문 ‘권유하다’ 참여를 호소하며 쓴 편지에서 ‘계급 없는 노동자들의 계급전쟁에 나서며’라고 말씀하셨다. 계급이 없다는 말은 전통적인 계급 구분에 포함되기 힘든 노동자 혹은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이들과 계급전쟁에 나선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답변 계급이 없는 게 아니라 빼앗긴 것이다.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한국사회에선 어렵다. 이런 문제들을 정치는 여전히 시스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해결하지 않는다. 영향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2천만 노동자 가운데 계급 없는 노동자가 1,750만 명이다. 사실 우리가 같은 노동자라는 생각으로 움직이면 잘못된 착취구조를 바꿔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계급 없는 노동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에게 노동조합이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노동자라고 말할 수 있겠나. 이런 상황을 바꾸는 게 시급하다. 조직 노동자들이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단순한 연대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라 생각한다.
같아 싸워야 한다. ‘우리가 너희 것을 해결해 줄게’가 아니라 같이 싸우고 함께 해야 한다. 함께하자는 진정성을 무권리 노동자들이 받아들이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 해도 그것을 최우선 과제로 하고 움직이면 언젠가는 마음이 움직이는 날이 올 거라고 본다. 그날을 더디지만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꾸준하게 밀고 가면, 전체 노동운동이, 전체 노동자들이 하나의 노동자 계급으로 단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그런 꿈을 한시도 포기하거나, 잊은 적이 없다.
그러기 위해선 실천이 필요하다. 아직도 현장은 자기 공장 담장을 넘는 것을 힘들어한다. 이건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이기도 하다. 당연히 노동조합은 자기 권리를 찾는 것이 중심이다. 그걸 넓게 하는 것이 연대고,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 당위성인데 그걸 강제할 수만은 없다. 그런 한계를 넘기 위해선 노동자 정치와 노동자 직접 정치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현장은 지금 그렇지 못하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우리는 임금을 조금 더 받고 덜 받는 문제로 우리 계급을 나눌 수 없다. 그들이 우리의 계급적 단결을 막으려고 우리를 나누는 것이란 걸, 자본은 여전히 우리를 분할하려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우리는 더하기 하려고 하고, 저들은 빼려고 한다. 그것이 지금 충돌하고 있다. 무권리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부터 한다면 같은 마음으로 모여질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
“계급적 단결과 노동자 집권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분명한 청사진,
노동의 내비게이션을 정립할 때다.
전략적으로 자주와 평등이 계급적 단결이라는
분명한 목표로 동아줄을 만들어야 한다.”
질문 총선이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치 세력이 총선 준비에 나서고 있지만, 진보세력은 논의가 미진하다.
답변 일단은 조직 노동자 스스로 내가 노동자 후보를, 진보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 가슴이 뛰어야 뭐가 된다. 그런데 뛰지 않다 보니깐, 본인은 물론 가족, 이웃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저들은 노동자보다는 늘 재벌들의 요구에 충실한 정치를 한다. 문재인이 됐든 박근혜가 됐든 다 그런 거 아닌가, 그걸 바꾸기 위해선 노동자 편에서 노동자 정치를 펼칠 사람이 필요한데, 우리가 만들자’고 노동자 스스로 이야기해야 한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할 계기가 없다. 현장에선 민주노총의 역할론을 주문하기도 한다. 조합원의 마음을 뛰게 할 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협상을 통해 조합원들의 선택을 아주 편하게 할 수 있는 방안, 그리고, 가슴을 뛰게 할 수 있는 안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는 잘 보이지 않는다.
각각의 자기 노선이 다를 수 있다. 자기 개성이 뚜렷한 게 진보다. 많이 갈라진 거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우리가 가야 할 궁극의 목표는 무엇이고, 어떤 사회인지. 그런 길을 가기 위해선 실천 단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구체적 경로가 없다. 진보정치 세력들이 그런 노력을 해봤으면 한다. 제가 울산에 가서도 공동행동을 제안한 바 있다. 노선은 달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실천이 있을 거다. 하지만 이걸 제안하는 이도 없고, 제안해도 못 받을 거라는 고민만 넘쳐났다.
얼마 전 국제노총 등의 초청으로 유럽과 남미 등을 다녀왔다. 유럽, 남미, 미국,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의 노총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정치와 노동을 따로 보지 않았다. 또 우리는 ILO 협약을 비준하면서 우리 정부는 단결권과 파업권이 따로 있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단결권에 그 모두가 들어있다. 우리는 그걸 3권으로 나눠놨는데, 다른 국가들은 이해조차 못 한다. 과연 교섭권과 파업권을 나누는 것이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노동자 정치도, 당연히 노조가 가장 정치적인 조직이고, 진보정치의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우리는 힘든 과정을 거치며 이런 꿈조차 잊고 살아왔기에 그들이 부러웠고 나 자신은 한없이 부끄러웠다.
질문 진보정당 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보나.
답변 노동자 정치를 단순히 역할론으로만 접근하면 힘들다. 민주노총의 주도가 아닌 역할로만 접근하면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힘들 것이다. 어떤 주도냐? 사실 100만 조직이 마음먹으면 못할 게 무엇이냐. 지금 어느 정당이 조직된 100만 대오의 힘을 가진 곳이 있나. 그 힘으로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 파괴력이 크다 그러기 위해선 동지들의 가슴을 뛰게 해야 한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지만, 노동자 정치를 함께 만들기 위해선 함께해야 한다. 자주와 평등, 좌와 우, 왜 우리는 그런 힘들을 엮어 민중을 견인할 동아줄을 꼬아내지 못할까? 계급적 단결과 노동자 집권으로 가기 위한 우리의 분명한 청사진, 노동의 내비게이션을 정립할 때다. 전략적으로 자주와 평등이 계급적 단결이라는 분명한 목표로 동아줄을 만들어야 한다. 기득권 정당의 대리 정치를 끝내야 한다.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세워지고 있다. 평화가 온 다음에는 독점 재벌의 체제에서 노동자로 살아도 경제 대국답게 노동자들의 목표를 제시하고, 다른 색깔의 주장들을 담아 든든한 동아줄을 꼬는 시기가 됐다. 이번 총선은 어렵더라도 앞으로는 이런 흐름이 강해질 것이라는 바람 섞인 전망을 해본다.
“이번 8.15에도 이석기 전 의원과
양심수 사면 얘기가 없다.
진작 풀어줘야 온당한데 정권은 양심에 침묵하고 있다.
창살 사이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마음이 아프다.”
질문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에서 진보진영에서조차도 선뜻 나서서 함께 대응에 나서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이런 과정에서 상처도 남았고, 이석기 전 의원은 아직 감옥에 갇힌 상황이다.
답변 이석기 의원 구속과 통진당 해산이 수구세력에 의해 저질러진 반헌법적 사건이란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배후에 양승태가 저지른 초유의 사법 거래가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예전의 상처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것은 현장에서 자주 보고 있다. 과거에는 같은 정파가 아니어도 탄압을 받으면 한달음에 달려가 연대했지만, 지금은 안가는 경우가 많다. 운동의 대의가 흐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서로 자기 색깔에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 상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의 시각으로만 굳어지고 있다. 반드시 정리돼야 하는 우리 안의 적폐다. 아울러 이번 8.15 에도 이석기 전 의원과 양심수 사면 얘기가 없다. 진작 풀어줘야 온당한데 정권은 양심에 침묵하고 있다. 창살 사이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마음이 아프다.
“긴 시간 아픔을 뒤로하고
공장으로 돌아가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마음을 모아주시고, 죽지 말고 싸우라고,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면서
손을 잡아줬던 노동형제 시민들의 마음을
평생 잊을 수 없다. 이런 고마움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겠다.”
질문 내년 1월이면 쌍용차 나머지 해고자들이 복직한다. 이로써 정리해고 복직 투쟁은 10년여 만에 마무리된다. 수많은 이들이 갇혔고, 죽어간 길고도 잔인했던 투쟁이었다. 그간의 과정을 돌아본다면.
답변 10년 반 만에 복직한다. 민간부문에서의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총 대리전 성격을 갖는 노동의 최전선이었다. 지금도 재벌, 사용자들이 쉬운 해고를 요구하는 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 동지들의 죽음으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경종을 울리려는 모습을 그동안 10년 넘게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변화는 없다. 국가 폭력이라고 국가가 사과하고, 경찰청도 사과했지만, 아직 손배가압류를 풀지 않고 있다. 쌍용차 사건도 양승태 재판거래의 주요 사건이다. 바로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투항하지 않고, 포기 않고, 너희는 우리를 쓰다가 버리는 일회용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다는 분노로 싸웠다. 긴 시간 아픔을 뒤로하고 공장으로 돌아가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마음을 모아주시고, 죽지 말고 싸우라고,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면서 손을 잡아줬던 노동형제 시민들의 마음을 평생 잊을 수 없다. 이런 고마움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겠다.
내일(13일) 공공부문에서 정리해고 문제로 싸우고 있는 도로공사 수납업무 노동자들의 농성현장에 우리 쌍용차 노동자들이 밥 한 끼 준비해서 찾아가 연대의 마음을 나누기로 했다. 부족하지만, 연대의 마음을 갚으면서, 쌍용차 노동자들도 한국사회의 책임 있는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다. 가슴에서 우러난 연대를 하면서.
질문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떻게 전망하나?
답변 직접 고용은 정부가 한 약속이다. 그들이 도공에서 일해 왔는데, 비용의 문제도 아니고, 도공 평균임금 달라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모범을 안 보이면 민간에서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쉽게 해고하고, 착취하는 구조에 맞서 정부가 모범을 보여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다 50대 여성 노동자들이다. 지금까지 잊어온 노동자의 이름을 다시 찾은 것 같다고들 한다. 다시 태어난 것 같다면서 각오를 키우고 있다. 반드시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
“노동자 편에 서는 정치가
힘을 발하는 세상도 꿈꿔 본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면
우리의 가슴 속 문턱을 넘고
더 진하게 발효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에
가장 힘든 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
그 길을 찾고자 한다.”
질문 그간 꾸준히 역량을 늘려온 비정규직 운동이 최근 폭발적으로 도약하는 분위기다. 7월 3일 사상 첫 비정규직 총파업에 6만여 명 광화문광장을 채웠다. 소수가 하던 운동 이미지를 바꿨고 민주노총 주류가 교체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답변 제가 감옥에 있을 때 비정규직 총파업을 처음 시작했다. 7.3 총파업에는 비정규직 차별의 한이 광화문을 가득 메웠다. 우리 스스로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고 말겠다는 힘들이 확인됐다. 이걸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도 좋았다. 광주의 특성화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급식을 책임자는 급식 노동자 투쟁 정당하다, 불편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도 이미 이 노동의 중요성을 알고, 대부분의 여론도 좋았다. OECD 국가 가운데서도 가장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나라.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다. 국가의 역할이 더없이 중요한 때다. 태풍과 폭염 속에서도 여전히 푹푹 찌는 아스팔트 위와 고공에는 많은 동지가 투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과연 노동존중 정부인가? 아니다. 이런 성황을 방치한다면, 비정규직 분노가 7.3 이상으로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살기 위해 싸울 것이다.
질문 끝으로 앞으로 활동 계획을 포함해 각오를 부탁드린다.
답변 권유하다 준비하고 있고, 무권리 노동자 문제가 최소한 민주노총 조합원 가족에서부터 가능성으로 모였으면 하는 바람을 알리고 있다. 발기인 대회 이후 더 많은 사업을 해나갈 것이다. 그동안 분에 넘치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아 나가는 길이기에 기쁘게 해나갈 것이다. 수많은 무권리 노동자가 노동자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상상으로 힘든 길도 열어갈 것이다. 노동자 편에 서는 정치가 힘을 발하는 세상도 꿈꿔 본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면 우리의 가슴 속 문턱을 넘고 더 진하게 발효시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에 가장 힘든 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 그 길을 찾고자 한다. 수많은 청년을 만나 청년들도 만날 것이다. 이게 나라냐는 분노를 우리가 나라다 선언하고 바꿔낼 주역들에게 작은 보탬이라도 되어 보려 한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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