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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자라는 아빠] “잠깐만! 우리 한 번 안아보자”

월요일부터 야근에 지친 채 버스정류장 앞에 섰습니다. 버스 행렬이 내뿜는 열기로 인해 8월의 밤공기가 더 뜨겁고 묵직합니다. 전광판에서 다음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며 귀가 시간을 가늠합니다. 9시 40분쯤 집에 도착한다고 말하기 위해 육아 중인 아내에게 전화를 겁니다. 이를테면 아내에게 ‘독박육아 퇴근시간’을 알리는 것입니다. 아내가 감당하는 육아의 고됨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요량으로 ‘예상 가능한 남편’이 되려는 것입니다. 수화기 너머 아내 목소리가 가볍고 경쾌하게 들립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힘들지 않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아내는 제 용건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에게 전화기를 바로 넘겨줍니다.

“수현아,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줘.”
“아빠 나 오늘 매미 잡았다? 매미 먹으라고 통에 복숭아 껍질도 넣어줬다?”

아이는 매미를 잡았다며 한껏 들떠있습니다. 저는 최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연속해서 질문을 이어갑니다.

“우와 그랬어? 언제 잡았어? 어디에서 잡았어? 나무? 만지는데 무섭지는 않았어? 매미한테 꽉 물리지는 않았어? 대단하다~ 네가 잡은 매미 보고 싶다!”

조잘조잘 다섯 살짜리의 대답을 듣고 있자니, 지친 기분이 환기되고 실실 웃음이 납니다. 언제 또 이렇게 말이 늘었는지 자꾸 말을 시키고 싶습니다.

문득 언젠가 들었던 매미의 일생이 떠오릅니다. ‘땅속 굼벵이로 7년, 땅 밖에서 한 달’이라는 독특한 수명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겨우 한 달이라니요. 새와 다람쥐 같은 천적이나 어린이 곤충채집을 무사히 피하더라도 매미 삶의 끝은 너무나 선명해 보입니다. 매미는 자신의 마지막이 눈앞에 보이기 때문에 주어진 한 달을 힘껏 우는 것일까요.

반나절 동안 자유를 빼앗긴 매미
반나절 동안 자유를 빼앗긴 매미ⓒ필자 제공

그 매미가 곤충 채집함에 조금만 더 있다가는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통화를 마치는 인사에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아빠가 금방 집에 갈 테니까 매미 구경시켜줘. 그리고 아빠가 매미 구경한 후에는 다시 나무에 붙여주러 가자.”
“좋아.”

드디어 집입니다. 평소에는 귀가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매미에게 먼저 향했습니다. 아이의 관심사에 동조하는 저 나름의 제스쳐였습니다. 아이가 매미를 소개해줍니다. “매미야 안녕” 인사를 했는데, 매미가 비실비실합니다. 서둘러 풀어줘야겠습니다. 곤충 채집함을 들고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려는데, 센서등이 켜진 현관 앞에서 아이가 말합니다.

“잠깐만! 우리 한번 안아보자. 아까 봤으니까(오랜만에 보니까).”

세상에나! 아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보긴 했군요. 아침에는 자느라 출근하는 저를 못 봤으니까요. 아이는 다가와 빈틈없이 저를 꼭 안았습니다. 제 온몸이 그 작은 몸에 감싸진 듯 포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할 것 없는 삶’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에 머물고 싶었지만, 몇 초 후 아이는 “이제 됐다”고 말하며 제 몸에서 떨어집니다.

시간이 흘러갑니다. 아이는 어리고 저는 젊은 날, 매일 안을 수 있고 매일 같이 잘 수 있는 날, 아이의 새로운 말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게 아깝다’, ‘그만 자랐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본들, 다시는 이런 날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선명한 사실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간직하고 싶어도 붙들 순 없으니, 이런 순간이 자주 찾아오기를 바라봅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매미는 힘껏 울고, 저는 행복한 순간을 힘껏 붙잡으려 합니다. 반나절 만에 자유를 되찾은 매미의 여생도 무사하길 빕니다.

오창열 정신건강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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