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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암 투병 아내 병문안 왔던 후배가 국정원 프락치라니”
국정원 로고. 2018.10.31.
국정원 로고. 2018.10.31.ⓒ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국가정보원이 공안조작사건을 기획하며 프락치로 포섭한 A씨는 암 투병중인 대학시절 절친했던 선배의 병문안을 가 몰래 녹음기를 켰다. 그 선배는 국정원이 사찰을 지시한 인물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암 투병 중인 선배가 제 와이프고, 선배의 남편이 접니다. 2018년 7월 1일, 일요일.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1일 <민중의소리>는 A씨가 사찰대상으로 삼았던 K씨와 그의 아내 C씨를 인터뷰했다. K씨는 국정원 경기지부 공안2팀이 A씨에게 접근할 때 근황을 물었던 선배 중 한 명으로 2002년 대학 졸업 이후 노동운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노동조합 간부를 하고 있다.

K씨는 지난달 26일 언론에 보도된 국정원으로부터 ‘김 대표’로 불리며 민간인 사찰을 벌여왔다는 A씨가 누군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지난해 아내의 암 진단 소식을 전해 들었다며 병문안을 왔던 아내의 후배였다.

‘병문안이 사찰 목적이었던 걸까.’ 의심하던 그는 며칠 뒤 국정원이 암 투병 중인 선배를 통한 사찰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긴 A씨의 인터뷰 기사를 접했다.

“설마설마 했는데 정확히 확인이 된 거죠. 원래 국정원이 하는 일이 지저분하니까 그럴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랬다고 하니까….” K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아내의 병문안을 명분으로 사찰에 나선 국정원의 비도덕성에 충격에 빠졌다. K씨는 “국정원은 (아내의 암 투병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 했겠죠”라며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정말 인간이 아니다”라고 분개했다.

이어 “지난 몇 년 사이에 이런 식으로 갑자기 저나 아내에게 과거의 친분이나 인연을 이유로 연락 온 사람들을 떠올리게 됐다. 수상한 일은 없었나, 사람인 이상 돌아볼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슬프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1일. K씨와 아내 C씨는 십수년 만에 연락 온 대학 후배 A씨를 반갑게 맞이했다. K씨에게도 오랜만의 반가운 얼굴이었지만, 같은 단과대 소속으로 학생회 활동도 함께 한 절친한 사이였던 C씨의 반가움은 특별했다. 더욱이 당시 생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던 그였기에 각별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C씨는 “지금은 수술을 다 하고 호전 치료도 끝났다. 다 지나온 지금은 살았구나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 치료를 다 마칠 수나 있을까 불확실한 시기였다”며 “그때 참 옛날 친구들이 많이 생각났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후배가 ‘누나, 이야기 들었어’라며 전화가 와서 병문안을 온다고 하니 너무 기뻤다”고 회상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프락치 A씨에게 접근하며 선배 몇 명의 근황을 물었다. K씨는 그 중 한 명이었고, 사찰대상이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프락치 A씨에게 접근하며 선배 몇 명의 근황을 물었다. K씨는 그 중 한 명이었고, 사찰대상이었다.ⓒ자료사진

십수년만에 찾아온 후배 반가이 맞은 C씨,
“밤에 잠이 안 와요...제 마음에 병이 들었어요”

당시 C씨는 같은 해 4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병세가 깊어 바로 수술을 하지 못하고 항암치료부터 진행하던 중이었다. A씨가 찾아온 날은 4차 항암치료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C씨는 아침부터 본인은 먹지도 못하는 묵은지 감자탕을 포장해와 후배를 맞았다고 한다.

이날 오후 12시께 A씨가 다른 후배 2명과 함께 K씨 부부의 집에 방문했다. 일정이 있던 K씨는 1시간 가량 A씨의 근황을 주로 듣다가 집을 나섰고, 아내 C씨는 후배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무런 의심도 없던 C씨는 “딱히 묻지 않아도 다 말해줬다”고 한다. 본인과 남편 K씨의 전반적인 근황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줬다. K씨의 노동운동 활동과 관련한 모든 정보가 A씨에게 전해졌다.

이 일 이후 C씨는 “밤에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사실 후배가 저에게 얻어간 정보가 특별하지는 않다. 남편 직함이나 공식 노조행사 일정이나 홈페이지에도 있는 정보다. 그런데 제 마음이 병이 들었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오면 반갑기보다 의심을 해야 하는가.”

또한 남편이 국정원 사찰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C씨는 올해 5살, 8살인 아이들 걱정에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이들이 엄마아빠 없이 자라게 될까봐 두렵다. 저는 아프고, 신랑은 국정원이 어떻게든 엮으면 잡혀갈 수도 있지 않느냐. 제 후배를 포섭했던 팀이 이석기 전 의원을 잡아간 그 팀이다. 그 때와 똑같이 사람들을 엮어서 구속시키고 감옥에 가둘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우리 아이들은…”이라며 울먹였다.

그러나 C씨는 후배 A씨를 “하나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 기사로 전해진 ‘선배의 병문안에 녹음기를 들고 가며 울었다’라는 A씨의 말을 믿는다고도 했다. “후배에게 꼭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원망하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고. 그 친구를 지옥에서 살게 한 악인들이 나쁜 것이다. 그 친구는 (프락치로 활동한) 5년 동안 계속 번민과 지옥 속에서 살았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안타깝다.”

A씨를 프락치로 활용한 국정원 조직은 국정원 경기지부 공안2팀으로 과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을 기획한 팀으로 알려졌다. 이 팀은 ‘주체사상의 뿌리를 가진 학생조직’이 서울대와 고려대에 있고 이들이 사회에 진출해 활동한다는 가정을 세우고 A씨를 통해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찰의 대상이 된 K씨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아니냐”며 “그때도 이런 식으로 했겠구나, 이런 식으로 당했겠구나. 합리적 의심이 든다. 이들은 이런 사건을 또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이다. 그런데 이렇게 허술하기도 한 말도 안 되는 사찰을 진행하고, 이것들을 어떻게 짜깁기하고 뻥튀기하려고 했는지. 화가 나지만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사찰이 노동조합 활동을 향했음을 지적하면서 “제 활동의 중심인 노조에 대해 감시했다는 측면에서 분노했다”며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노조에 대해 도대체 뭘 감시하고 사찰했는지 묻고 싶다. 노조에 대한 도전이다”라고 말했다.

K씨는 최근 국정원이 A씨의 폭로에 ‘정당한 내사 활동이었다’는 입장만을 전한 것을 두고 “무슨 이유로 무슨 의혹을 가지고 이런 짓을 벌였는지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며 “국정원장이 보고 받았는지, 국정원은 대통령에 직접 보고도 하는데 청와대도 알고 있었는지도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A씨와 같이 프락치 활동을 한 인물이 더 있을 것이라며 “양심선언 해야 한다. 숨어있지 말고 부끄럽게 살지 말고. 지금이라도 과거 한순간의 실수를 인정하고 이 친구처럼 양심선언을 해야 하지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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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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