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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영국을 브렉시트로 몰고간다’
폴란드를 방문해 폴란드 주둔 영국군과 대화하는 존슨 당시 외교부장관. 2018.6.21
폴란드를 방문해 폴란드 주둔 영국군과 대화하는 존슨 당시 외교부장관. 2018.6.21ⓒAP/뉴시스

편집자주/오는 10월 31일,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난다. 영국의 새 총리 보리스 존슨은 자신의 지론인 ‘노딜 브렉시트’를 위해 의회를 단기간 정회시켰고, 1억 파운드의 정부 예산을 들여 캠페인에 나섰다. 영국의 엘리트층이 대체로 브렉시트에 대해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존슨 총리는 전혀 거침이 없다.

소수건, 다수건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선택하고, 또 EU와의 합의 없는 일방적 탈퇴를 추구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애틀랜틱에 실린 칼럼을 소개한다. 이 칼럼에서는 과거의 ‘대영제국’에 대한 향수와 영국식 ‘예외주의’를 그 이유로 꼽았다. 원문은 The Imperial Myths Driving Brexi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계가 2016년 국민투표 결과에 맞춰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목격한 지 이미 3여 년이 지났다.

영국 국민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이유는 복잡하다. 하지만 제국주의와 그 이후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영국의 브렉시트 과정이 왜 이렇게 엉망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것이다.

그 뿌리는 영국의 ‘예외주의(exceptionalism)’에 대한 믿음에 있는 듯하다. 영국이 다른 제국이나 국가들보다 본질적으로 다르고 우월하다는 생각 말이다.

영국은 총리들은 하나같이 예외주의에 빠져 있었다

마가렛 대처는 1988년 연설을 통해 EU와 관련해 영국이 우대를 받아야 하고 특별한 지위를 누려야 한다고 믿는 영국 예외주의를 천명했고, 지난 3명의 총리들 또한 그런 관점으로 EU를 대했다.

이들 3명은 자기 개인의 예외주의에도 빠져 있었다. (브렉시트를 원하지 않았지만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선택했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자신이 이 투표에서 승리해 (강경한 브렉시트를 주장했던) 우파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당을 지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는 실패했다.

캐머런의 뒤를 이은 테레사 메이 전 총리는 브렉시트가 52% 대 48%라는 근소한 차이로 결정됐기 때문에 영국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고, 동시에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는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제 보리스 존슨이 노딜 브렉시트(영국이 무역 등과 관련해 양측의 향후 관계에 대한 아무런 협정 없이 EU를 탈퇴하는 것)를 둘러싸고 위기를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가 영국과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EU 전체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데도 말이다.

브렉시트와 관련해 영국의 역사와 이에 대한 영국인의 기억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EU를 탈퇴하려는 충동을 ‘부당하게 잃어버린 눈부셨던 대영제국’과 단순하게 연결하는 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에는 어떤 형식으로든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Britain great again)”가 박혀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더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예가 있다.

영국의 집합적 기억에서는 2차 대전에서의 역할이 신화처럼 남아있다. 2차 대전에서 영국은 홀로 아돌프 히틀러에게 맞섰다는 것인데, 지금 다가올 고립과 역경에 맞서야 하는 브렉시트 지지자들의 마음이 그렇다.

한편으로는 대영제국과 2차 세계대전을 둘러싼 신화들이 영국 예외주의를 강화시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둘은 매우 모순적이다. 전자는 영국을 초강대국으로, 후자는 영국을 ‘용감한 약자’로 그리기 때문이다.

이런 불일치가 새로운 것도 아니요, 브렉시트 과정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불일치는 과거에도 국제적인 차원의 참사가 일어나는데 일조했었다.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가 존슨 총리의 얼굴에 ‘히틀러’를 상징하는 콧수염을 덧붙인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시위대는 존슨 총리가 노딜 브렉시트를 위해 의회를 정지시킨 것을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2019.8.28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가 존슨 총리의 얼굴에 ‘히틀러’를 상징하는 콧수염을 덧붙인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시위대는 존슨 총리가 노딜 브렉시트를 위해 의회를 정지시킨 것을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2019.8.28ⓒAP/뉴시스

수에즈 위기(1956)가 남긴 교훈

수에즈 위기를 돌아보자. 영국은 이집트의 반제국주의 지도자 가말 압델 나세르는 1956년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겠다고 나섰다. 영국은 이에 반발해 군대를 파견했지만 결국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지도, 나세르를 축출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미국은 영국의 군사행동을 비난했다)

물론 브렉시트는 영국이 자발적으로 연합에서 탈퇴하는 문제이고, 반면 수에즈는 주권 국가에 대한 은밀한 침공이었다. 둘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도 둘의 유사점은 꽤 많다.

두 경우 모두 영국의 야망은 원대했지만 전략적으로 너무 성급하고 망상에 사로잡혀 상대에게 발목이 잡혔고, 둘 다 선택할 수 있는 모든 혹은 대부분의 옵션이 영국에게 해가 된다는 것이 명백해짐에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추진됐으며, 둘 다 많은 사람들이 끝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길을 고집하는 지도자들에 의해 추진됐다.

일반적으로 영국은 수에즈 위기를 대체로 의도도 좋고 유능하게 정책을 추진해왔던 대영제국의 ‘실수’였다고 기억한다. 이 사건은 영국 예외주의를 종식시키기는 커녕 외려 강화시켰다. 수에즈 사태를 어쩌다가 일어난 특별한 일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미국의 갑작스런 배신과 정식적, 육체적으로 지친 안소니 이든 총리라는 한 개인의 어리석은 행동 탓으로 돌린다면 말이다. (물론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렇게 정리하면 내각의 의사결정이나 외교정책, 내각이 받은 군사적 조언, 혹은 전반적인 정치문화, 그리고 영국의 자신에 대한 이해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역사학자 킴 A. 와그너는 1919년의 암리차르(Amritsar) 학살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윈스틴 처칠은 (영국군이 인도 민간인을 폐쇄된 공간에 가두고 이들에게 발포해 수백 명을 죽인) 이 학살을 “대영제국 근대사에서 전례도 없고 비슷한 일도 없었던” 사건이라며 “영국이 일을 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일이라며 비난한 바 있다.

대영제국의 신봉자였던 처칠이 갑자기 대영제국을 비판한 걸까? 그렇지 않다. 와그너가 그의 저서 ‘암리차르 1919:공포의 제국과 학살의 근원(Amritsar1919:An Empire of Fear and the Making of a Massacre)’에서 지적하듯, 처칠의 연설은 “오히려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논리였고 대영제국의 도덕적 정통성을 다시 주장하기 위한 충실한 시도”였다.

실제로 이 연설을 한 지 불과 몇 달 후, 처칠은 내각의 일원으로서 민간인들에 대한 폭력으로 악명을 떨친 특수부대인 ‘블랙 앤드 탠스(the Black and Tans)’를 아일랜드에 파견했다.

인도의 분열은 어떤가

영국의 예외주의는 수에즈나 암리차르보다 훨씬 더 끔찍한 재앙이었던 경우에서도 또 고개를 들었다.

바로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이 그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으로 100만에서 200만 명의 사망자와 1000만에서 20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오늘날까지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양국 간의 적대적인 관계가 형성됐다.

당시 영국의 마지막 인도 총독은 마운트배턴 경이었다. 영국인들은 그가 대영제국의 인도 포기 시점을 앞당겼다고 비난했지만, 바로 그 덕분에 인도와 파키스탄의 충돌은 영국이 물러난 다음에 이뤄졌다. (사실 이 두 나라의 갈등은 영국의 식민지배 당시 펼쳐졌던 분리 전술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단되고 이내 수많은 사망자와 엄청난 파괴에 대한 충격적인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영국 예외주의는 전혀 상처 입지 않았고, 영국 국민은 그 끔찍한 결과에 슬픈 한숨을 내쉬며 “나 죽은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après nous, le déluge)”이라고 중얼거릴 수 있었다.

작가 판카지 미슈라는 마운트배튼과 EU 탈퇴주의자들이 “악의적인 무능”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 바 있다.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영국에 대한 비판이 몇몇 개인에게 국한돼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다시 영국 체제를 봐주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와 사회, 그리고 문화가 그런 인물을 양성하고 승진시키며 그들에게 보상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국 체제에서 유사한 결과가 수없이 나오는데 이를 이례적인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느 선이 넘고 말면 그것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영국의 지도자들은 지난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다.

(만약 진지한 지도자라면) 수에즈 사태로부터는 환상보다는 현실을, 그리고 오만과 자만보다는 타협과 화해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으로부터는 어려운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기 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그리고 급박한 마감일을 정하기 전에 계획을 세우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두 사건 모두로부터는 ‘전문가의 자문을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실수로부터 뭔가를 배우려면 먼저 실수를 직면해야 한다. 그런데 예외주의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성공은 영국의 위대함의 증거이지만 실패는 본질적으로 영국스럽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잔류파 역시 예외주의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예외주의가 브렉시트 지지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게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역사학자 로버트 사운더스가 지적했듯 “영국이 EU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2016년에 잔류파가 자주했던 주장이다)은 EU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 만큼이나 제국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영국이 EU의 다른 27개 회원국과 같은 지위를 받아들인다면 그 순간부터 영국이 예외적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 정치체제와 정치적 문화의 결함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예외주의가 오랫동안 꼭 필요한 비판과 개혁으로부터 영국 체제를 차단시킨 것이다.

브렉시트 찬성파든 반대파든 영국이 유능하고 믿을 수 있으며, 안정적이고 합리적이었던 황금기를 상상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사를 들여다봤을 때 그런 모습은 찾기 어렵다.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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