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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나무와 친해지는 방법이요? 5분만 시간을 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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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을 화려하게 물든 벚꽃이 지고 난 뒤 돋아나는 잎은 어떤 모습일까. 무더운 여름 벚꽃 나무에는 열매가 열렸었나, 가을에는 이 나무에도 단풍이 들었던가.

대개 사람들은 자연의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식물화가로 활동 중인 한수정 작가(44)는 나무에서 꽃이 피기 전 모습을 시작으로 꽃이 핀 모습, 꽃이 지고 난 이후의 모습까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하루에 아주 잠시라도, 단 5분이라도 시간을 내서 내 주변에 있는 나무와 풀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느새 내 일상까지 달라질 것이라 게 한 작가의 생각이다.

늦여름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던 8월 말, 한 작가와 강원도 춘천의 한 카페에서 만나 자연을 관찰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연과 가까워지기 위해 그림 그리는 작가

'관찰하는 식물화가' 한수정 작가
'관찰하는 식물화가' 한수정 작가ⓒ한수정 작가 제공

식물화가는 식물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대개는 식물의 세세한 모습까지 사실적으로 그리는 일에 중점을 두지만, 한 작가가 식물을 그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녀는 단순히 식물을 '잘' 그리기 위해 식물화가라는 업을 택한 게 아니다. 자연을 관찰하고 더 가까워지기 위해 그림이라는 수단을 택한 것이었다.

"지금 식물 세밀화의 경향은 화려하고 예쁘게 그리는 거죠, 예를 들면 잎에 맺힌 물방울까지 시간을 들여 세세하게 그리는 수준이요. 하지만 전 '왜 식물을 그리느냐'라는 목적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자연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죠."

한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제한을 두지 않길 바랐다. 때로는 책을 집필한 작가로, 때로는 환경운동가로, 때로는 마을 선생님으로 불리길 원했고, 그녀 역시 자신의 길을 계속 찾고 있다.

"저는 '미술가'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지금은 초등학생들에게 나무에 대해 가르쳐 주는 마을 선생님을 하고 있는데요, 아이들에게 식물을 지식으로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오감을 통해 느낄 수 있도록 가르져 주는 거죠. 저는 미술과 자연이 결합한 일이라면 제 역할을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어떻게 자연에 접근할 수 있게 할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방식은 뭐든지 열려 있답니다."

누군가에게는 치유의 공간인 '자연'
"나무를 잘 보기만 해도 우리의 삶이 달라져"

한수정 작가가 제작한 '나뭇잎 스탬프'
한수정 작가가 제작한 '나뭇잎 스탬프'ⓒ한수정 작가 제공

그녀가 자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결혼 후 외국 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물론 유년 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조경사업에 종사해 자연을 접하기 쉬운 환경이기도 했지만, '치유'가 필요할 때 비로소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이때 해외에서 보편적인 취미생활로 널리 알려진 '보태니컬 아트'를 접하게 됐고, 오랜 타지 생활로 인한 우울증을 조금씩 떨쳐낼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고, 외국 생활을 하면서 우울증이 왔어요. 모든 게 황폐해진 느낌이 들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 한국에 돌아오면서 우연히 춘천을 찾게 됐는데 다시 새싹이 돋아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자연을 더 많이 찾게 됐죠. 다시 식물을 보게 되고, 그림도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고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다시 삶의 활력이 생겨나더라고요.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공간이 바로 자연이라는 의미였죠."

한 작가에게 자연은 '치유'의 공간이었다. 탁해진 마음을 정화시키고 싶을 때, 마음 한쪽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을 때 찾는 곳이 바로 자연이었다. 그리고 다시 힘을 주는 곳 역시 자연이었다. 한 작가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나무를 바라보는 건 작은 시작이지만, 우리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건 그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일종의 조언이기도 했다.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된 후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내 주변에 어떤 생명이 있는지를 인식하게 된다면, 반대로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도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전 제 일에만 함몰돼 있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과 시스템 안에 종속돼 살았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을 수 있게 됐어요. 나무가 변해가듯 제 모습도 변해갈 텐데 내가 지금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필요한 것들과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식물화가가 펴낸 도시나무 안내서
도시에 있는 나무들과는 어떻게 친해져야 할까

한수정 작가가 책 '하루 5분의 초록'을 내고 전시회를 준비하는 모습
한수정 작가가 책 '하루 5분의 초록'을 내고 전시회를 준비하는 모습ⓒ한수정 작가

한 작가는 자신이 자연을 관찰하고 배운 내용을 엮어 '하루 5분의 초록'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도시에서 나무를 만나는 방법과 이 나무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일종의 '설명서'와 같다.

책에서는 나무를 '제대로' 관찰하는 방법이 나온다. 가령, 잠시 멈춰서 나무를 바라보고, 나무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고, 잎을 하나씩 만져봐야 한다는 식이다. 집 앞에서 혹은 출·퇴근길에서, 산책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의 특징과 계절마다 변해가는 잎의 모습을 삽화와 함께 그렸다.

"제가 나무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책에서는 잠시라도 매일 보고, 일년동안 꾸준히 보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그렇게 우리 주변의 나무들이 하나의 장식물이 아니라 변하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면 나무가 생명이라는 사실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답니다."

누군가는 이런 방법까지 알아야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바쁜 도시 생활 중 나무를 즐길 여유가 어딨느냐며 한가한 얘기라고 깎아내릴 수도 있다. 한 작가는 이 같은 회의적인 시각에 대해 "사실 자연을 볼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자연을 볼 시각 자체를 잃어버린 것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첫 책의 소재를 도시에 있는 나무로 한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일과 생각에 얽매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내 주변의 나무는 그저 경치를 화사하게 만들어 주는 장식품 정도로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우리 주변에도, 삭막한 도시에도 많은 식물이 함께 살고 있죠. 저는 책을 통해 이러한 도시 생활과 자연의 연결끈을 만들고 싶어요."

자연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 시작한 시골 생활
그곳에서 마주한 미세먼지, 폭염
앞으로의 계획은 "정원을 만들고 싶어요"

한수정 작가가 아이들과 함께 나뭇잎을 모으는 모습
한수정 작가가 아이들과 함께 나뭇잎을 모으는 모습ⓒ한수정 작가 제공

아이러니하게도 한 작가는 책을 쓴 후에 더 큰 고민을 하게 됐다고 한다. 고민의 시작은 '시골 생활'이었다.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던 한 작가는 2년 전 한적한 시골 주택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미세먼지, 폭염 등 환경 문제였다.

"자연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시골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미 자연은 훼손된 지 오래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나무에 핀 꽃과 열매들이 아름답다고 그림을 그린들 무슨 소용이 있나 생각이 들었죠. 한동안 가슴 아파하다가 일단 나부터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쓰레기도 줄이게 되고, 소비 경향도 바꾸기 위해 노력했어요. 굉장히 힘들었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소비하면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자연을 훼손해가는지 점점 알아가게 됐습니다."

이 경험은 한 작가에게 일종의 전환점이 됐다. 그동안 해왔던 작업의 방향이 바뀐 건 아니었다. 다만,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 환경의 변화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은 나무가 죽어가도 모를 때가 많거든요. 그건 참 무서운 일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이런 관찰력도 사라졌어요. 내 주변이 변해가고 있는 건 잘 못 느끼죠. 어쩌면 사람들은 자연이 변하고, 지구가 변해가는 과정을 모른 채 죽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이 더 절실해진 것 같네요."

앞으로 한 작가는 유년층과 노년층을 대상으로 자연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들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10년 뒤 혹은 20년 뒤에는 사람들이 편히 오고갈 수 있는 정원을 가꾸는 게 꿈이라고 한다.

"어린이나 노인층을 위한 일들을 해보고 싶어요. 이 두 계층은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고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분들이기도 하거든요. 자연적인 감성이 충만하게 채워진 아이일수록 나중에 다시 자연을 찾을 수 있게 되고요, 노인들도 자연과 함께하면 그나마 노년 시절이 위로되고 풍요로워질 거예요. 장기적으로는 제가 원하는 정원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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