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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호 교육칼럼] 교사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라!

지금 우리의 교육문제 이슈는 단연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딸 관련 입시문제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뉴스와 논평 기사들이 방송과 신문 그리고 인터넷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혹자는 말하길, 최순실의 딸은 노골적이고 불법적으로 입시비리를 저질렀지만, 조국 후보자의 딸은 법망에 걸리지 않고도 입시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면서 합격했다고 한다. 논문의 제 1저자로 등재된 것, 장학금 지급 등 입시 및 교육과 관련하여 전문적 판단의 영역에서 엄밀해야 할 윤리적 기준이 와해되어 있었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현재 검찰의 전방위적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법 위반 여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행 입시제도가 사회불평등과 계급격차를 극복하는데 여전히 취약할 뿐만 아니라 관점에 따라서는 더욱 용이하게 계층 고착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말미암아 상위계층으로의 상승욕망을 꿈꿀 수 없는 상당수의 젊은이들은 다시금 박탈감을 곱씹으며 탄식하고 있다.

교육 외부의 영역들

대통령이 한마디 해야 움직인다는 한계가 다시 확인되고 있지만, 늦으나마 대통령이 이를 인식하고 입시개혁을 주문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번에 입시제도는 정시확대가 아니라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을 제고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하니 고무적이다. 하지만 개정된 제도의 혜택 역시 상위계층 자녀에게 돌아갈 개연성을 우려하지 않을 없다(참고기사:2019.9.1일자 한겨레).

그간 교육당국은 문제의 근원과 외연을 살피기보다는 당면한 제도 자체 내에서만 해법을 찾는 가운데 이른바 땜질식 처방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추정컨대 그것은 교육의 외연, 나아가 입시제도의 외연을 풍요롭게 만들지 못한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전반적으로 교육외부를 ‘사회적 불평등 상황’으로 전제하고 그에 대한 대응전략의 일환으로 ‘교사의 노동권 확보’의 중요성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한마디로 밭을 기름지게 가는 작업을 생략하고 씨앗만 바꿔서는 제대로 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력서 작성하는 청년 구직자들
이력서 작성하는 청년 구직자들ⓒ뉴시스

먼저 교육의 외연을 보면, OECD 교육정책 분석가인 핀란드의 파시 샬버그 교수가 정리한 핀란드 교육의 외부요인을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민 대다수가 교육개혁의 가치와 철학을 흔쾌히 공유하면서 교사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 공공부문 간의 협조도 원활했다.

둘째, 사회의 고용전망이 확보되어 학생들의 배움이 직업으로 연결되는 정도가 좋았다는 것이다 (Finnish Lesson 2.0, 185~197쪽 참조). 물론 고교졸업후의 취업전망이 밝았던 것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핀란드 교육의 외부가 풍요로왔다는 것이 교육자체의 성공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국내의 남기곤 교수(한밭대)는 이렇게 진단한다. “한국의 과도한 대학입학 경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시장의 불평등에서 찾아질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재벌중심의 성장으로 인한 산업구조의 이중구조화(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 미약한 노동운동으로 인한 노동자 세력의 열세, 기업친화적인 여론 등 여러 정치-사회-경제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한국 교육의 문제는 단순히 교육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한국사회 전체 구조와 관련된 문제이다.”(교육 불평등의 현실과 정책대안, 2017 사회정책연합학술대회 IMF 경제위기 20년. 한국사회의 격차해소 전략과 정책, 354쪽).

한국사회는 공평성에 의해 조절되어야 할 ‘자유’가 ‘방임’과 혼동되어 불평등이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도는 미비하고 법은 강자(强者) 편이다. 따라서 ‘방임’이 활개치기 쉬운 나라가 한국이다. 이 대목에서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1872년 1월 16일 교육관련 강의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교육의 두 가지 경향으로서 ‘대중화된 교육’과 ‘전문성을 위한 교육’의 폐단을 동시에 지적하는데 그중에서 대중화된 교육 즉 ‘넓히는 교육’에 대해 “모두를 위한 교육은 결국 소수의 세속적 행복을 챙기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했다(F. Nietzsche, On the Future of our Educational Institutions, J.M. Kennedy 번역의 영역본).

흔히 치밀하고 강력한 통제장치가 없는 한 제도는 소수의 욕망에 봉사할 수 있다. 그것은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이들, 심지어 훌륭한 교육제도를 만들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이들도 이 소수들이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서 기득권층의 카르텔(연합)이 가능했던 것은 공정, 형평의 가치보다는 제어력을 상실한 자유 즉 방임의 가치에 맞닿아 있는 데에서 연유한다. 물론 입시관련 치밀한 검증장치가 미비했던 것도 교묘한 대입합격의 루트를 용인하는 데 일조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정치는 강력하고도 포괄적으로 정의의 위협요인을 제거할 수 있어야

마르텡 뱅 헴쉐르크 작, 1556년. 칼, 저울 그리고 맹인이 각기 권력, 자유와 평등, 공평성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마르텡 뱅 헴쉐르크 작, 1556년. 칼, 저울 그리고 맹인이 각기 권력, 자유와 평등, 공평성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위키백과 영문판. 검색어 : Justice

플라톤의 주요 저작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가 ‘정의(正義)란 무엇인가?’하고 질문한다. 이에 대해 소피스트 중의 한 사람인 트라시마쿠스가 ‘정의는 강자(强者)의 이익입니다’라고 답한다. 트라시마코스가 현실에서는 권력 및 부의 강자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정의가 되기 쉽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이들이 활동했던 때가 지금부터 2500년경 전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은가?

지금도 우리에게 관건이 되는 것은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이때 그림에서 보이듯이 권력(칼)이 눈을 가리는 맹인의 상태로 기능을 다할 때 가장 공평해진다고 할 수 있다.

해외에서 교사의 노동권은 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한 최종 수단

다음으로 편의상 입시제도의 외연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교사의 노동권 즉 단결권 및 단체행동권을 들 수 있다고 가정해 본다.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적 품성은 주로 학생들을 만나는 수업과 상담에서 교사 개인이 보여야할 성향으로서 중요하지만 교육정책을 논의하고 제안하는 근거로서의 공적 역할에는 취약하다. 이때 노동자로서의 교사관이 필요하다.

2019.2.19일자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주 교사들이 50개 카운티의 한 곳만 제외하고 전면 단체행동 즉 파업에 들어갔다. 물론 이들의 요구는 관철된다.

‘교사들의 파업(스트라이크)은 (대개 그렇듯이) 교육투자를 늘리고 교사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것이 그 이유다. 학급당 학생수 축소와 같은 것 이외에, 공사립 이원분리의 교육체제가 갖는 문제로서 세금이 차터스쿨 및 사립학교 바우처에 투입되는 문제, 고부담 시험에 의한 책무성 요구 때문에 공립학교가 슬럼화되어 학생들이 교육적 실패에 직면해 있다는 것 등이 주요문제다’(기사제목:West Virginia Teachers Walk Out (Again) and Score a Win in Hours).

한국에서는 교사들에게 노동 2권만 허용되다가 지금은 아예 법적 지위를 상실한 상태다. 곧 노조가 식물인간이 된 셈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교육문제가 곪아 터져야 비로소 당국이 그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다. 교사들에게 노동권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미묘한 교육문제가 사전에 감지되기도 어렵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기도 그만큼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9-1-23일자 LA타임즈는 ‘LA 교사들은 어떻게 파업을 통해 정치적 승리를 이뤄냈는가?’의 제목하에 이렇게 보도한다.

‘공립학교의 투자가 미비하여 학급규모가 줄지 않고, 공립에서 사립 차터스쿨로 학생이 빠져나가고 있으며, 중하층 그중에서 특히 아프리카 이민자 가정의 자녀들이 배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교사들의 처우도 열악하여 6일째 LA 다운타운 그랜드파크에서 수천 명의 교사들이 파업하고 집회를 가졌다. 역시 공교육의 불평등에 저항한 것이다. 이들의 요청은 정치적으로 해결되어 일정한 성과를 냈다’(기사제목:How L.A. teachers scored a decisive political victory with strike).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제19대 위원장 선거 당선 기자회견에서 교사의 노동3권 및 정치활동 자유 전면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제19대 위원장 선거 당선 기자회견에서 교사의 노동3권 및 정치활동 자유 전면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1997년경 인천의 한 중학교에 근무 중인 캐나다의 젊은 남자 교환교사가 전교조 집회에 참여해서 이런 말을 했다. “캐나다에서는 교사라고 하면 모두가 노조원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까 노조원 아닌 교사가 더 많아요. 이해할 수 없어요!” 했다. 정부가 노조를 멀리하는 것과 교사들 스스로가 노조를 멀리하는 것이 무관하지 않다.

결국 정치권에서 교사들의 참다운 노동권을 박탈 혹은 은연중 이질감을 유지해 온 결과 우리는 교육 및 사회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한 또 하나의 비판적 대안세력이면서 개혁의 동반자를 잃고 있는 셈이다. 이제 교사들의 파업은 파괴가 아니라 창조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가 교사들에게 온전한 노동3권을 보장하면 교사들이 연일 파업으로 날을 지새울 것이라는 무한 상상은 이제 그쳐야 한다. 이러한 염려는 다분히 옹색한 기우일 뿐이다. 교육의 외연으로서 사회불평등을, 입시의 외연으로서 교사들의 노동권을 도외시하면 그만큼 근본개혁에 이르기 어려워진다. 이제 우리는 또 한번 입시개혁의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 이에 정치권이 교사에 대한 막연한 편견 하나를 내려놓을 때다. (하편에서 계속)

신남호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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