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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엄마의 그림일기] 여름방학의 발견 : 사춘기 소녀가 새벽에 일어난 이유

여름방학이 휘몰아쳐 지나갔다. 여기저기 SNS에서 개학을 하니 얼마나 기쁜지 감격에 겨워하는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올라온다. 나는 주로 집에서 일을 하는 관계로 20여일 에어컨도 없이 뜨거운 집안에서 끊임없이 핸드폰과 유튜브, 컴퓨터 게임을 시도하려는 아이들과 ‘조금만’, ‘그만해’ 하며 실랑이를 벌일 일이 꿈만 같았다. 그래서 방학을 시작하기 전에 일찌감치 각종 방학캠프와 복지관에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탐색한 다음 이번 여름방학엔 아이 둘을 따로따로 2박 3일 캠프에, 같이 4일간 낮에 하는 캠프에 신청했다.

강원도에 오면 여름방학엔 양양 바다에서 서핑 정도는 하고 살 줄 알았는데, 개뿔. 휴가도 없이 바쁜 나날이다. 이 동네 아이들도 엄마 아빠는 일을 하러 가고 아이들만 집을 지키는 집이 태반이다. 우리 아이들 캠프를 알아보면서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들을 묶어 보았다. 4일 동안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해야 하는데 어차피 오고 가는 길이니까.

너랑 나랑 중심을 잡으며 나아가 보자!
너랑 나랑 중심을 잡으며 나아가 보자!ⓒ박지선

‘더불어숲’ 캠프는 춘천교대 학생회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이었다. 첫날 다녀온 아이들은 온 얼굴에 화색을 띠고 돌아왔다. 사춘기를 맞아 웬만하면 좋을 것도 없고 잘 웃지도 않는 까칠한 5학년 딸애가 특히나 얼굴이 반짝반짝한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마지막 날 장기자랑을 하기로 했다며 돌아와서 거의 다섯 시간을 땀 흘리며 춤 연습을 한다. 억지로 시키면 중노동일 텐데 말이다.

다음날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빨리 캠프에 가고 싶다고 씻고 옷을 갈아입고 부산을 떤다. 덕분에 온 가족이 잠을 설쳤으나 아이가 좋다고 하니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을까, 아이를 새벽에 저절로 눈을 뜨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궁금하며 덩달아 나도 싱글싱글 설레고 좋다. 고학년을 맡은 대학생 선생님들은 6명 정도였는데 눈높이도 잘 맞고 춤도 같이 추고 이야기도 잘 통했나 보다. 비결은 역시 젊음인가. 담임 선생님은 그냥 그렇고 교생 선생님은 완전 좋은 그런 느낌? 이튿날 다녀와서는 춤이 그사이 다른 곡으로 바뀌었다고 또 다섯 시간 춤 연습을 한다. 온몸에 땀이 주륵주륵 흐른다. 셋째 날은 내일이면 헤어질 대학생 선생님들께 드릴 선물을 사서 포장하고 편지 쓰느라 밤늦도록 잠을 못 잤다. 선생님들과 헤어지는 마지막 넷째 날은 아침에 일찍 가서 칠판에 잘 가시라는 메시지를 가득 채워야 한다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빨리 데려다달라고 보챈다. 결국 마지막 날 헤어지며 더불어숲 캠프 고학년 교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4일 동안 딸아이의 모습은 12년간 키우면서도 저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만큼 경이로웠다.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감정과 행동이 어떤 위력적인 힘을 지니는가를 알게 된 신비한 경험이었다고나 할까. 나도 아이의 자발성에 불을 지피는 그런 엄마이자 어른이고 싶었는데 한동안 잊고 살았다. 교대 선생님들이 애들 캠프 하러 오셔서 나까지 크게 가르치고 가신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 없다는 속담이 사춘기 돌입한 아이를 키우면서 날이 갈수록 뼈에 새겨진다.

여름방학의 추억, 신나게 놀았으니 또 힘차게!
여름방학의 추억, 신나게 놀았으니 또 힘차게!ⓒ박지선

더불어숲 캠프가 끝나고 아이들은 각각 시차를 두고 2박 3일씩 캠프를 떠났다. 만나면 개와 고양이처럼 티격태격 으르렁 대던 아이들은 떨어져 있으니 허전하고 심심해 죽을 맛이다. 엄마 아빠의 관심이 온통 한 명한테만 가니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면서도 지나친 관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기도 한다. 한 놈이 없는 사이 다른 한 놈을 더 바라볼 상대적 여유, 이 녀석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해 볼 틈새가 왜 이리 감사하고 소중한지. 채 그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금세 만나서 얼크러지고 지지고 볶다가 드디어 대망의 개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 청소를 싹 해놓은 다음, 창가를 바라보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가 최고다.

박지선 마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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