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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문재인 정부의 장기투쟁사업장 ‘도로공사 톨게이트’
경기 성남시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지붕(캐노피)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고공농성중인 동료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경기 성남시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지붕(캐노피)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고공농성중인 동료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뉴스1

태풍이 불더니 세찬 가을비다. 잘 계시는지 걱정인 곳이 많지만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지붕(캐노피) 위 노동자들이 가슴에 박힌다. 하루 수만대의 차량이 내뿜는 매연과 소음, 따가운 햇볕과 속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두 달을 넘기더니 추석 명절을 맞게 생겼다. 한발 삐끗하면 왕복 20차선 도로인데 그 위에서 사람이 어찌 24시간을 지내나. 일주일에 대여섯번 버스 안에서 천막과 플랜카드를 올려본다.

노동운동에서는 장기투쟁사업장을 ‘장투’라 부른다. 악질 사업주가 노동자를 해고하고, 노조 만들었다고 탄압하고 위장 폐업하고, 진짜 사장이 일 시키곤 바지 사장 내세워 임금 떼먹을 때 장투가 생긴다. 작업장 위험요소로 목숨을 잃었는데 노동부도, 요즘 드라마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 근로감독관도 모른척하고 노동자에 책임 떠밀고, 법원에서 해고 부당하다고 또는 원청이 직접고용하라고 판결을 해도 안 들을 때 장투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된다.

사측은 저항하는 노동자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한쪽으로는 온갖 소송을 날리고 감당할 수 없는 가압류를 건다. 가족들을 불안하게 하기도 한다. 다른 한쪽으로는 굴복하는 이들에겐 당근을 내민다.

공공기관인 한국도로공사가 지금 이 꼴로 가고 있다.

서울톨게이트 지붕과 청와대 앞과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 이명박근혜 시절 사안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적폐인사의 농간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3선의 전직 국회의원 이강래씨가 사장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교섭단체 대표로 국회에서 멋진 연설을 하기도 했다.

“국정 운영의 초점은 재벌과 부자가 아니라 ‘사람’에 두어야 합니다. 사람 중심의 시장경제를 지향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서는 ‘사람’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재벌과 부자와 기득권 계층만 보호되고 있습니다.”
(*출처: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이강래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 연설)

대법원이 톨게이트 수납원 근로자 지위소송에 대해 판결을 내린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승소한 톨게이트 노조들이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08.29.
대법원이 톨게이트 수납원 근로자 지위소송에 대해 판결을 내린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승소한 톨게이트 노조들이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08.29.ⓒ뉴시스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낸 소송에서 ‘불법파견이며 도로공사가 직접고용 해야 한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애초 이들은 IMF 이전까지 도로공사 소속이었고, 이후에도 업무지휘를 받는 등 도로공사가 실질적인 사용자임이 명백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에도 도로공사는 소송을 건 368명의 일일 뿐이며, 이들 역시 도로공사에서 톨게이트가 아닌 다른 업무를 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 공공기관이 불법파견을 해 법원으로부터 시정하라는 판결을 받은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전형적인 악질 사기업의 시간 끌기 수법을 쓰고 있다.

노동자들의 반발에도 톨게이트 수납업무를 7월 1일자로 도로공사가 설립한 별도의 자회사로 업무를 넘긴 것도 이강래 사장이다. 노동자들이 곧 나올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보자고 호소했으나 쫓기듯 서두르더니 이제는 어쩔 수 없다니. 별도 설립됐다는 자회사의 사장도 이강래씨이니 이걸 코미디라고 해야 하나 사기극이라고 해야 하나. 이게 이강래 사장이 외치던 ‘사람 중심 시장경제’인가?

이미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자회사 정규직’이라는 변종 방식으로 상당히 이행한 상황이라 부담스러울 수 있다. 공공기관인 도로공사의 경영부담이 우려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 사람 대신 돈만 좇는 전형적인 낡은 시대의 인식 아닌가. 포용경제와 공정사회라는 이 정부의 국정철학은 왜 톨게이트 노동자들에게는 가닿지 않는 것인가.

반대로 대법원의 직접고용 판결을 변화를 위한 좋은 명분과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정규직 되고 싶으면 다 소송하라고 강짜를 부릴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자회사 설립 취소를 포함해 원점에서 협의를 해야 한다.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회피하는 한국도로공사 본사(경북 김천)에서 9일 오후부터 점거농성하고 있다. 경찰이 투입돼 대치중이다. 2019.9.10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회피하는 한국도로공사 본사(경북 김천)에서 9일 오후부터 점거농성하고 있다. 경찰이 투입돼 대치중이다. 2019.9.10ⓒ민주일반연맹

한 달 간의 소동 끝에 결국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됐다. 원칙과 정의와 공정이라는 말이 여야를 초월해 난무한다. 그러나 원칙과 정의와 공정은, 여의도나 서초동에서 보느냐 톨게이트 지붕이나 길거리 농성장 바닥에서 보느냐에 따라 너무 다르고 낯설다. 저들이 토하는 원칙과 정의와 공정이 언제쯤 여기에 닿을지 아득하다. 농성만 70여일이면 충분히 길었으니 정부는 해결책을 내야 한다.

(*덧:톨게이트 노동자들이 10일 경북 김천의 도로공사 본사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서럽고 외롭지 않은 명절이 되시기를 기원한다)

고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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