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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바꾼 풍경] ‘마트 아줌마’가 정규직? 홈플러스엔 비정규직 없다

노동조합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결사체지만 이기적이고 불온한 듯 비칠 때가 많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청계시장에서 몸에 불을 붙였지만 오랫동안 우리나라 전역은 노조의 동토지대였다.

노조가 널리(?) 확산된 것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직후부터다. 이전부터 일부 열성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이 있긴 했지만, 군사독재를 정치적으로 패퇴시킨 6월항쟁의 에너지가 ‘이제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열망으로 분출됐다. 그해 여름 구로공단부터 울산과 거제까지 노조 깃발이 휘날렸다. 헌법에서 잠들어있던 노동3권이 부활했다.

그로부터 3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노조 조직률 즉, 전체 노동자 중 노조에 가입한 이들의 비율은 10% 남짓이다.(2017년 말 현재 10.7%) 이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모두 합친 숫자다. 최근 늘어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자가 맞는지, 사용자가 누군지 등이 사회적으로 정립되지 않아 법의 사각지대에 몰려있다.

파업한다고 비난받고 밥그릇 지키기라고 욕을 먹어도 노조는 꾸준히 성장했다. 비정규직이 대거 노조를 결성했고 정규직과 함께 노조를 구성해 힘을 키우거나 아예 정규직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지켜지지 않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해, 살인적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노동조건을 줄였다. 라이더라 불리는 배달노동자들도 노조를 결성하고 노동조건 개선에 나서 작지만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의사나 IT업종 같은 그간 불모지였던 고임금 또는 신산업 업종에도 새로운 유형의 노조가 들어서기도 했다. 여성, 비정규직 등 이전에 상대적으로 노동의 주변부였던 이들도 빠르게 단결을 확장하며 노동운동의 중심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노조의 확산은 노동자의 권리의식을 높이고 직장문화도 바꿨다. 최근 직장 내 ‘갑질’이 단지 ‘꼰대’라 불리는 상사나 선배의 일탈이 아니라 노동자 권리 침해, 나아가 위법행위라는 인식이 분명해진 것도 변화의 증거다. 노조는 현장의 노동환경을 바꾸고 산업계의 체질도 변화시켰다. 이에 따라 법규도 바뀌고, 사회전반의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노조가 바꾼 풍경’에서 이를 짚어본다.

*이 기획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가 개최한 2019 제1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에서 가작을 수상했습니다.

홈플러스는 7월1일부로 기존 무기계약직 직원 1만428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2019.07.01.
홈플러스는 7월1일부로 기존 무기계약직 직원 1만428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2019.07.01.ⓒ사진 제공 = 홈플러스

대형마트에 들어가 보자. 손님이 아닌 ‘생선’으로. 물류 차를 타고 도착한 마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스톡(Stock·재고관리) 팀 박혁선(가명) 씨다. 상자를 뜯자마자 와르르 쏟아진 상품에 박 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방금까지 2L 물 6개 묶음을 옮겼던 허리를 일으켜 후방으로 상품을 옮겼다. ‘까대기’(창고 상자에서 물건을 뜯어 진열하는 업무를 일컫는 유통업계 용어)하러 온 수산 팀 이연주(가명) 씨는 뒤죽박죽 섞인 상품들 틈에서 생선 상자를 낚아챘다. 생선 손질을 하던 이 씨는 연신 칼을 쥔 손을 주물렀다.

“갈치 행사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마트 안에 노동자가 있었다. 손님으로 만날 땐 웃고 있던 이들이다. 얼음 매대 위에 깔끔하게 진열된 생선들, 푸른 바다가 그려진 벽면과 새하얀 진열대, 냉기까지 불어오는 수산코너는 신선하고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 그 탓에 여성 비정규직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겪은 차별과 설움마저 예쁘게 포장됐다.

영화 ‘카트’(2014)는 마트 노동 현장을 고발했다. 배경은 한국 까르푸를 인수한 이랜드의 홈에버에서 2007년 발생한 대량해고 사태다. 진열, 계산 업무 등을 하는 여성 비정규직들은 ‘여사님’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무급 연장 근무는 기본이고, 모욕은 덤이었다. ‘반찬값’이 아니라 생계가 달린 까닭에 억울함을 꾹꾹 눌러야 했다. 그 결과가 해고로 돌아오자 이들은 510일간 투쟁을 했다.

그 후 마트는 달라졌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변화는 홈에버 후신인 홈플러스에서 시작됐다. 지난 2월 홈플러스 비정규직 1만 5천여 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로써 홈플러스 내 비정규직은 1%도 남지 않게 됐다. 공공부문처럼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꼼수’도 없었다. 업계 2위, 연 매출 10조를 능가하는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실현됐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 홈플러스 지부의 6년간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3년 단체교섭을 앞두고 모인 홈플러스 노조 조합원들
2013년 단체교섭을 앞두고 모인 홈플러스 노조 조합원들ⓒ홈플러스 지부

홈플러스 지부는 2013년 3월 탄생했다. 회사 설립 14년 만이다. 현재는 본사·물류센터·점포 등 전체 임직원 2만 명 중 4분의 1이 가입했다. 조합원 대다수가 일하는 마트 현장 조직률은 50% 가까이 된다. 전체 108개 매장 중 지회가 있는 곳은 82개다. 홈플러스가 홈에버를 인수했지만, 홈플러스 지부가 홈에버 투쟁 역사와 함께 하는 건 아니다. 홈에버에서 홈플러스로 바뀐 매장들은 자회사 홈플러스스토어즈가 별도로 관리한다. 일반노조도 따로 있다.

정규직 전환 전까지 조합원 95%가량은 여성 무기계약직이었다. 노조 초창기에 힘을 모아준 것도 이들이다. 그 배경엔 비정규직 80%가 있었다. 재계약 걱정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아르바이트로 입사해 6개월씩 4번 계약을 지속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정규직들은 퇴근 시간 없이 일하면서도 노조 가입을 망설였다. 점장 추천 승진제 때문이다. 관리자 말 한마디에 해고되는 시식·청소·경비 등 협력업체 직원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공짜 노동’ 남발하는 ‘쩜오 계약’
군대 같은 사내 문화…대답은 오로지 ‘네’
“반찬값 벌러 나왔다면 진작 그만뒀지”

일이 고돼서 노조를 만든 게 아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가장 악명높았던 건 ‘쩜오 계약’이다. 2013년까지만 해도 홈플러스는 비정규직과 0.5시간(30분) 단위로 시간제 계약을 맺었다. 7.5시간, 6.5시간 식이다. ‘영국의 과학적, 선진적 제도’라는 게 사측 설명이었다(당시 영국 다국적 유통기업 테스코가 최대 주주였다). 그러나 실상은 대기 시간을 최대한 줄여 그만큼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속셈이었다.

이에 ‘공짜 노동’이 만연했다. 최소 30분씩 연장 근무는 기본이었다. 노조 설립 후 첫 번째 설문에서 7.5시간 계약직은 평균 8시간 12분, 6.5시간 계약직은 평균 7시간 3분 머무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장 근무 수당은 받을 수 없었다. 1일 8시간, 주 40시간 미만이라 근로기준법상 수당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분 단위 계약까지 나왔다. 계산 업무 직원들은 현금 서랍을 반납하는 업무 하나가 줄었다는 이유로 7.5 시간에서 7.1 시간으로 계약을 변경해야 했다.

2013년 단체교섭을 앞두고 ‘쩜오 계약’ 폐지를 요구하며 부분 파업한 조합원들
2013년 단체교섭을 앞두고 ‘쩜오 계약’ 폐지를 요구하며 부분 파업한 조합원들ⓒ홈플러스 지부

아파도 참고 일해야 했다. 당시엔 병가의 존재도 몰랐다는 이들이다. ‘아야’ 소리 한번 못 냈다. 깁스하고, 붕대 감고 일하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연차를 사용했다. 연차를 모두 소진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다음 해 연차를 당겨주는 관리자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산재는 꿈도 못 꿨다. 잘릴 각오 하고 산재 신청해야 했다. 그마저도 ‘부주의’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다수였다.

사내 문화는 군대에 가까웠다. 주로 2~30대 남성이었던 정규직 관리자들은 위압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대답은 무조건 “네”. “아니요”는 없는 세상이었다. 언어폭력은 일상이었다. “아줌마, 여기 왜 왔어? 경로당에서 놀지”, “빨리 일하지 밥은 왜 이렇게 많이 먹어?” 때론 욕설도 섞였다. 출근해서 종일 눈치만 살폈다. 조금만 잘못해도 백번 머리 숙여야 했다. 비참하고 초라해지는 순간들이었다. 관리자에게 잘 보이려고 동료 간 분열도 생겼다.

‘갑질’ 고객까지 떠맡았다. 감정노동은 온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했다. 매장 최고 책임자인 점장은 기둥 뒤에 숨어서 진상 고객을 지켜보기 일쑤였다. 나만 아니면 돼, 그야말로 복불복이었다.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는 고객을 만나면 심장이 벌렁벌렁했지만, 자리 이탈은 불가능했다. 고객센터 직원들 서랍엔 두통약이 항시 대기 중이었다.

반찬값 벌러 나왔다면 진작 그만뒀을 일이다. 여성 비정규직 다수가 생계 부양자였다. 하지만 여성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은 최고임금이었다. 10년을 일했지만, 월급은 100만 원도 안 됐다. 잘게 쪼개진 부서별 임금 체계도 문제였다. 축산은 칼을 만진다고 100원 더 받았고, 조리는 일이 편하다며 200원가량 덜 받았다. 시급제인 탓에 월급제와 같은 돈을 받으면서도 휴무는 적었다. 상여금은 정규직의 70%뿐이었다.

2013년 단체교섭을 앞두고 홈플러스 규탄 기자회견에 나온 조합원들
2013년 단체교섭을 앞두고 홈플러스 규탄 기자회견에 나온 조합원들ⓒ홈플러스 지부

노조 만들자 휴게실서 ‘만세’ 환호성
‘청심환’ 먹고 파업 나가기도
2주 만에 승리한 이유…“80점이라도 바꾸자”

영등포점 사총사는 ‘007작전’을 펼쳐가며 노조를 계획했다. 현재 김기완 마트노조 위원장, 정미화 마트노조 서울본부장 등이 그 주역이다. “만세!” 노조가 생겼다는 소식에 휴게실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노조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고 주재현 홈플러스 지부장은 회상했다. “한편으론 잘리면 어쩌나, 걱정도 있었죠. 하지만 노조를 만들다가 엎어지면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노조를) 지키려고 모두가 애썼죠”

회사와의 교섭은 순탄치 않았다. 회사는 ‘배 째라. 돈 없다’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2013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첫 쟁의로 의지를 보였다. “쩜오 계약 폐지하라” 전체 108개 중 16개 매장에서 천여 명이 일제히 ‘등 벽보’를 달았다. 처음으로 조합원들이 공개된 순간이었다. “이때 회사도 깜짝 놀랐을 것”이라고 주 지부장은 말했다.

“(사측에서) ‘아줌마들이 뭘 할 수 있겠어’라는 편견도 있었던 것 같아요. 태어날 때부터 싸움 좋아하는 사람 어딨겠어요. 그래도 한번 싸울 땐 단호하게 싸웠죠. 떨리는 마음에 ‘청심환’ 한 알씩 먹고 서로 등 벽보를 달아줬어요. 쟁의는 대성공이었어요. 장 보러 온 사람들이 ‘쩜오 계약’에 관해 물어보더라고요. 사업장 현황에 맞는 투쟁방식이었죠. 등 벽보를 뗄 때도 (해냈다는 마음에)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어요”

첫 번째 교섭은 2주 만에 이뤄졌다. 이듬해 1월 9일 총파업 상경 당일 새벽 극적으로 단체 협약이 타결됐다. 이로써 ‘쩜오 계약’이 폐지됐다. 30분 유급 휴게 시간을 확보하고, 병가제도를 명시했다. 감정노동자 보호 조항도 개설했다. 주 지부장은 협상 결과가 100점이 아니어도 꾸준히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금 0.5% 인상으로 싸우지 않았어요. 차별 철폐가 목적이었으니까요. 80점이라도 좀 바뀌었잖아요. (투쟁) 1년만 할 거 아니니까요”

2015년 최대 주주인 MBK 파트너스에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 중인 조합원들
2015년 최대 주주인 MBK 파트너스에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 중인 조합원들ⓒ홈플러스 지부

정규직 전환 ‘한 판 뒤집기’ 아냐
6년간 하나하나 차별 없애온 결과
“정규직 되고 희망 생겼어요”

정규직 전환은 노조 설립의 목표였다. 똑같이 일하면 똑같이 대우받자, 간단한 이유였다. 이에 정규직 99%는 ‘한 판 뒤집기’로 결정되지 않았다. 홈플러스 지부는 2013년부터 6년간 7차례 교섭을 통해 하나씩 바꿔나갔다. 정규직 전환 전에도 이들은 처우 면에서 사실상 정규직과 같은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정규직을 요구한 이유는 뭘까. “비정규직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어요” 주 지부장은 되물었다. 정규직이 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처음 회사는 거부 반응을 보였다. 주 지부장은 두 가지 선입견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마트 아줌마’가 무슨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면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제도와 급여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회사가 받아들인 이유도 재원 부담이 없어서였을 겁니다. 기업 이미지 제고도 한몫했겠죠. 물론 하루도 쉬지 않고 피켓팅과 부분 파업을 진행한 조합원들의 힘도 컸습니다”

지난 2월 19일 교섭으로 홈플러스 주식회사 1만2천 명, 홈플러스스토어즈 주식회사 3천 명, 총 1만 5천여 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사내 인사이동 시점인 7월 1일 자로 이들은 선임 1년 차가 됐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유통업계의 위기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회사는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인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장벽이 도전의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결단 배경을 밝혔다.

“정규직 전환되고 펑펑 울었어요” 10년 넘게 비정규직으로 일한 정미화 본부장은 소회를 전했다. “(정규직 전환은) 꿈같은 이야기였어요. 성취감도 느꼈죠. 회사가 정규직 설명회에서 케이크랑 풍선을 준비해놓고 환영한다고 하더라고요.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트 입사 당시만 해도 제일 밑바닥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친구들한테 창피해서 말도 못 했었는데, 정규직 전환되면서 많은 게 바뀌었죠. 이 나이에 정규직으로 퇴사한다고 하니 모두 부러워하더라고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홈플러스지부 주재현 위원장이 23일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7.23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홈플러스지부 주재현 위원장이 23일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7.23ⓒ김철수 기자

정규직이 됐다고 달라진 건 없다. 주 지부장은 월급이 크게 오르지도, 일이 편해지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똑같이 일하고 있어요. 다만 한해 한해 갈수록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생겼어요. 비정규직이었다면 5년을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을 받으며 일했을 텐데. 지금은 선임 1년 차지만, 주임, 대리 달면 나아지겠죠”

정규직 전환으로 끝이 아니다. 주 지부장은 아직 남은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노조 만들고 (홈플러스를) 비정규직 사업장 중 가장 일하기 좋은 사업장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젠 정규직이 됐잖아요. 정규직다운 정규직을 만들 겁니다. 업계 정규직과 비교해보니 연봉이 1천만 원가량 차이 나더라고요. 올해 목표는 저임금을 해결이에요”

기존 정규직과의 갈등도 줄여나가야 한다. 주 지부장은 “실제 현장에서 (기존 정규직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라며 “그럼 저는 노조로 들어와서 함께 고민하자고 말한다”라고 말했다. 김영준 홈플러스 지부 사무국장은 “노조가 6년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격차를 한 계단씩 좁혀왔기 때문에 기존 정규직들의 반발도 적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지부의 승리 경험은 이마트·롯데마트 등 마트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주 지부장은 “당장은 아니지만, 수년 안에 동종 업계 무기계약직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본다. 홈플러스는 이미 했다. 사회적 분위기와 업계 분위기를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투쟁하는 다른 사업장에도 모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홈플러스 지부를 중심으로 마트 산별 노조가 설립되기도 했다. 정미화 본부장은 이마트·롯데마트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처지가 더 어려운 협력업체 노동자들과의 연대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트 안에 직영 노동자보다 2배 많은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어요. 집안에 숟가락 몇 개가 있는지 서로 다 아는 사이인데, 노조 만들어서 나만 잘 살 수는 없잖아요.”

2014년 임금 협상 이후 기뻐하는 조합원들
2014년 임금 협상 이후 기뻐하는 조합원들ⓒ홈플러스 지부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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