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만민보] “내가 말하는 혁명이란” 세상을 뒤집고 싶은 아나키스트 소설가
없음

서기 2250년.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대기업들은 제품의 낮은 단가를 유지하기 위해 과잉생산을 거듭한다. 역사에 없던 규모로 경제가 붕괴되고, 성난 민중들은 기존의 국가주의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세계의 국경도 허물어진다. 지역별로 국가가 배타적으로 점유하던 영토는 시민연합혁명에 의해 연합정부의 영역으로 재편된다. 챔핀코(한국+중국+일본+러시아 일부)와 올리칸(남·북 아메리카) 등 5개의 연합정부가 들어서고, 일부 소규모 중립정부가 남아있을 뿐이다.

인간의 삶은 기계에 의해 결정된다. 초국적기업 '밸류 컴퍼니'에서 개발한 마인드 스캐너는 인간의 뇌를 초전도양자간섭장치로 측정한 결과를 감마선 투과영상과 합쳐 현재 능력과 성격, 잠재력을 분석한다. 이를 통한 직업탐색검사는 제도화되어 청소년들에게 여섯 가지의 운명을 제시한다. 그에 맞는 직업 교육이 이뤄지고 그렇게 개인의 삶은 결정된다.

사상과 철학으로 소설 쓰는 아나키스트

이 내용은 요즘 연재되는 한 공상과학(SF)소설의 세계관이다. 소설가 서종원 작가는 SF소설 '스캔'을 인터넷에 연재한다. 지난 8월 한 웹소설 플랫폼에서는 SF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요즘 세상에 SF소설이라니' 생각이 든다. 그의 글이 주목을 끌고 있는 이유는 뭘까.

서 작가는 화려한 기교나 문학적 미사여구보다는 철학적 공상과 이를 토대로 확고히 자리잡은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거침없이 글을 써내려간다. 그는 분석심리학의 시대를 연 칼 구스타프 융의 이론과 도덕경의 노자철학, 양자물리학, 카톨릭 교리가 하나의 진리로 수렴된다고 믿는다. 그는 사상과 철학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다.

"모든 사람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각자 그 자체로 갖는 존재의 의미와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그래서 개인이 국가나 조직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은 자연적이지 못하죠. 사회적 재부를 기준으로 본다면, 그것이 특정 집단의 이익에 매여 자연스러운 분배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인위(人爲)를 제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자연스러운 상태'로 자리잡는 것이 정의(正義)라고 생각해요. 네, 저는 아나키스트입니다."

연재소설 ‘스캔’ 작가 서종원 씨
연재소설 ‘스캔’ 작가 서종원 씨ⓒ서종원 작가

소설 스캔에 등장하는 마인드 스캐너는 17살 청소년들에게 일괄적으로 직업탐색검사를 실시한 뒤 여섯 가지의 특성에 따라 네임카드를 어깨에 이식한다. 개인의 잠재력과 특성에 따라 '옐로우', '블루', '그레이', '화이트', '바이올렛', '레드'가 부여된다. 계급적 역할로 치면 레드는 사회를 움직이는 최상위 엘리트이고, 옐로우는 삶에 대한 의지가 없는 무기력자로 구분된다.

"이제 여러분은 가장 적합한 능력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해당 직업으로 가기 위한 전문 훈련을 받고 사회에 나가게 됩니다. 이건 축복입니다 챔피코 시민정부의 사교육이 사라져 국민들은 부유해졌고, 능력없는 자들이 권모술수로 요직에 앉는다거나, 엉터리 그림을 그려 예술시장에서 사기를 치는 일도 사라졌죠. 이게 다 밸류 컴퍼니의 회장이신 감마님께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열정으로 마인드 스캐너를 개발한 덕분입니다." - 소설 '스캔' 중

주인공인 론리 져스틴은 교육진로설계부 장관에 의해 레드 명찰을 부여받는다. 정해진 운명대로라면 그는 국가의 상급행정, 사법기관, 원로원, 언론 등에서 지배적 계급으로서 특권을 누리면서 살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눈앞에 특권적 삶을 쥐여준 네임카드 시스템에 저항하는 삶을 택한다.

허상과 본질

서 작가는 글 속에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상하면서 전체 스토리를 구성하고, 1년 넘게 양자물리학을 독학했다. 사실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5년간 군에서 부사관 복무도 했다. 농업전문지 기자생활을 3년쯤 하다가 농업용 드론 제작회사에 스카웃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회의감이 들어 다 그만두고 글을 쓰기로 작정한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구조적 강요에 대한 저항감이기도 했다.

"제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모든 것이 불합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대기업이 하는 일이라고는 국가와 결탁해서 사업을 독점하고, 힘 없는 중소기업의 기술과 부품을 빼내가서 단가를 후려칠 궁리만 합니다. 제가 본 대기업들은 그냥 깡패들이었어요. 그럼 중소기업들은? 정당하게 분배돼야 할 자원을 받지 못하니까 직원들에게 돌아갈 몫을 빼돌려서 충당해요. 공무원들도 결정적 위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죠. 사회라는 것이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데 혈안이 된 결정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대체 다단계 사기꾼과 다를 게 뭐죠?"

서 작가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중도에 그만둔 케이스다. 그는 "한 개인의 양심적인 신념과 행동이 특정 진영에 속해있을 때 오히려 왜곡된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떠올렸다. 대신 글을 통해 현실 세계의 모든 개인 주체들은 정의로울 권리를 방해하는 인위에 저항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서 작가는 혁명을 꿈꾼다. "시민들이 아나키즘을 갖게 되면 국가가 시민을 두려워하고, 오히려 국가가 제기능을 발휘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요지다. 다만 조직이나 연대가 아닌 '개인'을 내세운다.

연재소설 ‘스캔’의 일부
연재소설 ‘스캔’의 일부ⓒ서종원 작가

"제 작품에서는 마인드 스캐너가 사회가 사람의 가치를 정량화해서 역할을 결정해요. 하지만 사실 그게 한국사회의 모습이기도 하잖아요. 더 이상 가난한 가정의 자녀가 서울대에 갈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고, 대기업에서 임원을 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에요. 인맥과 연줄, 든든한 자본력 없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창업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죠. 그런 강고한 질서를 마인드 스캐너와 동일시한 겁니다.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복종하는 시민들은 그런 사회에 실체적 힘을 부여하는 거고요."

서 작가는 모든 개인이 허상을 걷어내고 본질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생각하는 현실 사회의 허상은 '자본주의'다. 이 사회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구나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일원이 되기 위한 질주의 출발선에 선다. 그 대열에서 탈락하는 순간 실패자의 낙인이 찍히는 것이 두려워 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한 속박을 자처한다. 그래서 서 작가는 두려움을 과감하게 떨쳐내고 자신을 둘러싼 허상을 걷어내라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회사의 부당한 야근 지시를 거부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지시하는 직장에는 사직서를 내고, 정당하지 않은 단가에 납품을 거부하고, 나아가 대기업의 독점을 싸고 도는 국가에는 세금 납부를 거부하는 것들도 훌륭한 노력이 될 수 있습니다. 국가권력과 회사의 상급자가 두려워하는 개인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공상을 통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 그리고 교감

스캔에는 '씨드'(SEED)라는 종자회사가 등장한다. 씨드는 가장 맛있는 농산물을 길러낼 수 있는 단일 유전자의 종자들을 싼 값에 전 세계로 보급한다. 경쟁사들이 도산할 때까지 어마어마한 자본력을 앞세운다. 결국 전 세계의 농산물을 독점한 씨드는 기다렸다는 듯 가격을 폭발적으로 올려 버린다. 판매한 종자에서 자란 농작물의 자체 재생산을 막기위해 유전자 조작까지 한다. 결국 생존의 위기를 맞은 인류가 기존의 사회적 질서를 파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서 작가는 씨드를 자본주의의 자기 파괴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한다.

그렇다면 서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질서의 파괴와 붕괴인가. 그는 단지 한 사람의 가치를 마음대로 재단하고 불합리하게 이뤄지는 가치 분배에 대항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역사의 수순이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한다.

연재소설 ‘스캔’ 작가 서종원 씨
연재소설 ‘스캔’ 작가 서종원 씨ⓒ서종원 작가

"권력 집단의 독단과 무능으로 무고한 인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면 정치지도자를 끌어내리는 투쟁도 필요해요. 그 다음 단계로 극단적인 상황으로 갈 것인지, 협상으로 새로운 질서를 타협할 것인지는 역사의 선택에 달린 문제죠. 다만 이러한 길의 끝에 쟁취해야 할 것은 '정의'와 '사랑'의 가치에요. 재화를 올바르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라면, 그것이 구현된 토대에서 생존의 위기에 처한 존재를 위해 내 몫을 기꺼이 떼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스캔은 현재 61화까지 연재됐다. 서 작가가 짜놓은 스토리는 단행본 기준 총 5권 가량이다. 연재는 앞으로 1~2년 정도 이어질 예정이다. 그는 스캔을 퇴고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글을 매개로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고 교감하는 삶을 살 계획이다. 경영학에도 조예가 깊은 서 작가는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회사 조직 안에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왜곡되고 존재의 자연성이 훼손되는지를 드러내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한다.

"천 명이 한 번 읽고 마는 소설보다는 한 명이 천 번 읽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단 한 명이라도 스스로 갖고 있는 진짜 욕망이 뭔지 들여다 보고, 세상의 허상과 진실이 뭔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보람이 될 것 같습니다."

신종훈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