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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
니들앤젬
니들앤젬ⓒ니들앤젬

니들앤젬의 새 음반 [곁에 있다 없을 때 빈 자리를 모른다]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다. 이 음반에는 사람의 목소리와 기타 연주 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보컬 에릭 유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중심으로 한 사운드에 자신의 목소리를 얹는다. 여기에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건반 연주와 현 연주, 노이즈는 그만으로 충만한 사운드를 완성한다.

니들앤젬은 이 음반이 시집 음반이라고 한다. ‘시와 음악의 관계성을 탐구하고자, 본래 시로 쓰여진 문장들에 최소한의 편집을 통해 멜로디라는 틀을 주었고, 8편의 시가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한다. 시를 쓴 강선영은 실험비디오, 퍼포먼스와 비디오의 혼합을 연구하고, 조각과 비디오를 연결하는 작품을 시도한 작가이다.


시가 담은 내면의 목소리를 음악으로 재현한 노래

니들앤젬
니들앤젬ⓒ니들앤젬

그동안 한국대중음악계에서 시를 활용해 노래를 만드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송창식이나 이동원의 사례뿐만 아니다. 안치환, 시노래모임나팔꽃을 비롯해 적지 않은 뮤지션들이 시를 노래로 옮겼다. 비교적 중장년 싱어송라이터들이 자주 시도하는 편이었으나 젊은 뮤지션들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진다. 그 중에서도 니들앤젬의 작업은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작가의 시 14편만으로 음반을 다 채웠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니들앤젬은 시를 읽거나 노래하면서 시를 음악 쪽으로 끌어당긴다. 강선영의 시가 바라보는 방향은 자신의 내면이다. 불안과 외로움, 죽음이라는 실체, 관계로 인한 파동, 다르게 인식하는 정체성으로 인한 갈등, 과거의 자신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 이별이 남긴 빈 자리, 상상과 실제 사이와 허구와 믿음 사이를 응시하는 시의 결을 노래는 가만가만 따라간다. 노래에는 들뜨거나 격한 순간이 좀처럼 없다. 리듬마저 사라져버리지는 않았으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계속 읊조리는 노래는 시가 담은 내면의 목소리를 음악으로 재현하는데 충실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한 편의 시를 반드시 하나의 음악으로만 재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이 음반은 강선영의 시에 대한 니들앤젬의 해석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가령 ‘껍질’에서 “왜 하필 이다지 위태롭게 태어났나”라고 노래할 때, 니들앤젬이 느리고 쓸쓸하게 노래하는 방식, 그것이 음악을 구현하는 태도이며 실체이다. 나른한 리듬감과 매끄러운 멜로디가 탄식 같은 창법으로 발화할 때, 시 속 내면의 위태로움과 연약함은 그만큼의 노래로 옮겨진다. ‘샘’에서도 좀 더 높은 톤의 멜로디로 “길 위를 채우는 다양한 죽음들”을 노래할 때, 노래는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할 수 없는 죽음의 보편성으로 빠르게 잠입한다. 노래만큼 리듬을 고려하지 않고 썼을 시를 노래로 옮기며 니들앤젬은 시에 내재한 반복을 디딤돌로 삼아 리듬을 만들어 냄으로써 시를 노래로 재탄생시킨다. 그리고 시와 시 사이에 인위적인 여백을 만들고, 시어를 노래하는 사이의 간격을 만들어냄으로써 시의 서사를 더 풍부하게 연출한다.

시의 구조와 호흡을 기초로 창작한 음반

‘H의 미간’에서 니들앤젬의 목소리는 조금 더 따뜻해지고, 그 따스함은 “-습니다”로 끝나는 문어체 종결어미를 자연스럽게 감싸 안는다. 자신의 정체성을 다층적으로 구분하는 과정의 갈등과 분리라는 쉽지 않은 일이 보컬의 다정한 톤으로 인해 더 견딜만 해진다. 영롱한 톤으로 보컬을 뒤따르는 기타 연주와 은근한 첼로 연주는 그 온기를 함께 지핀다. 과거를 회상하며 느끼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막막하게 쓴 시 “기록해도 기록해도 모자란다”를 니들앤젬은 담담하고 아련하게 노래한다. 리듬을 부각시킨 기타 연주 덕분에 외로움과 두려움의 정서는 묽어지고,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견딜만하게 전화한다. 부모와 다를 수밖에 없는 고향에 대한 인식 차이를 노래한 곡 ‘몽고반점’은 첼로 연주와 함께 차분하다. 후렴이 없어 담백한 노래들은 이 음반이 시의 구조와 호흡을 기초로 창작한 노래임을 분명히 한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열망과 좌절을 노래하는 ‘한 토막의 하루의 토막’에서도 니들앤젬의 음악은 예쁘다는 생각이 들만큼 단정하다. 낮고 젖은 목소리 곁에서 반짝이는 기타와 건반 연주가 만드는 소박한 아름다움은 화려한 사운드가 없어도 충분하다. “이별의 뒤에는 누구의 이름도 남지 않는” 슬픔을 노래한 ‘어깨 소리’ 역시 기타와 재잘대는 새소리 같은 사운드로 이별 후의 고통과 고요가 감도는 풍경을 노래한다. 애잔하게 감도는 아름다움은 공허를 위로하기에 충분하다. ‘습어’에서도 음악의 매력은 시의 모호함을 명징하게 뒤바꾸는 힘이 있다. 미니멀한 포크 음악으로서, 그리고 시를 노래하는 시노래로서 니들앤젬의 음악은 각각 충실하며 충분하다. 악기가 적어도, 노랫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울림 깊은 음악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왜 필요하고 값진지 보여준다. 여전히 음악을 찾아 들어야 할 이유.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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