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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호 교육칼럼] 교사들에게 참정권을 전면 허용하라!

한국의 교사들이 시민교육과 관련하여 일상 속에서 생기는 의문이 2가지가 있다. 첫째, 교사들은 왜 수업에서 현실정치와 정당을 원활하게 다룰 수 없는가? 이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면 인간사가 모두 정치와 관련된다는 것이며, 인간을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에서 다루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또 쟁점이 되는 정치이념과 가치일수록 침묵하거나 피하지 말고 다뤄줘야 학생들이 편향된 가치에 예속되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는 성담론과 성교육을 피하지 말고 다룰 때 성범죄가 줄어드는 것과 이치상 다르지 않다. 사실 우리사회는 살아있는 정치교육과 성교육이 부재한 상태다.

둘째, 수업 이외의 시간에 교사들은 왜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가? 교육도 정치를 통해 가장 포괄적이고 근본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한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교육의 당사자들인 교사들의 정치참여는 심히 제약받고 있다. 이는 ‘교사의 참정권’에 대한 의문이다. 교육의 외부가 어떠하길래 이런 의문이 가시지 않는 것일까?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교원,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탄압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리고 있다.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교원,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탄압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리고 있다.ⓒ민중의소리

정치는 한국의 교사들에게 금단의 영역

최근 민주시민교육이 강조되고 있어 고무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사실상 민주시민교육이 실효를 거두기 어려운 환경이다. 왜냐하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학교현장에서는 정치색을 띠는 일체의 것을 다루지 말라는 금기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직교사들이 정치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경험을 바탕으로 생동감있는 시민교육은 물론 관련 법을 손 볼 기회가 차단되어 있다. 이는 마치 손발을 묶어놓고 100미터 경주를 시키는 격이다. 달리 말해서 ‘정치적 금치산자인 교원이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다’는 비판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2019.6.3일자 한겨레. 연관 기사:2018.12.2일자 제주신보).

교육외부의 편견

위의 의문 2가지와 관련하여 우리를 오랫동안 지배하는 강력한 편견이 있다. 즉 “교사들이 수업에서 정치와 정당을 다루게 되면 학생들이 특정 정파의 견해를 주입받을 수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서 교사들은 정치에 대해 교실에서 침묵해야 한다. 교사들이 정치를 하게 되면 학교와 교육은 정치판이 될 것이다”는 것이다.

편견! 우리 인간은 편견에 얼마나 취약하단 말인가! F. 니체는 편견의 연막을 뚫고 들어가 진실을 캐는 작업으로써 철학을 권했으며, 그 이전에 F. 베이컨은 인간의 편견을 절묘하게 동굴에 비유한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를 이어받아 ‘동굴의 우상’으로 정리하지 않았던가?

교육이 정치를 논할 수 없으며 교사가 정치에서 배제된 환경은 편견과 차별이 위력을 떨치는 상태다. 그러면 통일교육도 성공할 수 없다. 현재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긍정평가를 내렸던 ‘남북연방제’를 얘기하기 버겁다.

또 일례로 광복군 부사령관에 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있다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약산 김원봉에 대한 평가를 수업에 도입하기도 어렵다. 이는 다시 남북화해와 통일을 힘들게 할 것이다. 심지어 ‘대동강 맥주가 참 맛있다’고 할 때 수구언론에서 종북으로 몰아갈 개연성도 살아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통일이 얼마나 요원하단 말인가!

교육은 본래 정치적인 것!

미국의 교사들도 정치 및 시민의식 관련 학부모 혹은 정치인들로부터 항의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다. 미시건주립대 교사교육 전공 앨리사 해들레이 던(Alyssa Hadley Dunn) 여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교사가 학생들에 대해 정치적 주제를 다루지 않고 침묵하면서 ‘중립성’을 고수하는 것은 알고 보면 학생들을 속이는 것이다. 교육은 그 성격상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Education is Political)이다. 중립성도 그 자체로 정치적 선택의 하나다. 왜냐하면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곧 현재의 상황을 묵인, 지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부터 교사들의 업무와 교육과정, 학생들의 학습에 이르는 전과정이 속성상 정치적이요 이데올로기 지향적이다.”[(2018.12.11일자 neaToday. NEA(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미국의 최대 교원노조인 ‘전미교사협회’. 위키백과 영문판 참조)].

아울러 위 매체가 소개하는 미국교육연구저널에 따르면, ‘교사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교사에 대한 신뢰, 자율성, 전문성이 결핍되었다고 간주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교사들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중립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다.

‘교육의 중립성‘에 집착하는 환경에서는 학생들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쉽다. 학교에서 쟁점이 되는 정치적 신념을 개방적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호주가 그 사례를 보여준다. 이 나라 젊은이들도 절반가량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한다. 호주의 뉴사우스 웨일즈 주 중등교장회의 의장이며 세인트 클레어 고교 교장 크리스 프레스랜드(Chris Presland)는 이렇게 말한다.

“확실한 것은 학교에서 편견을 개입시키지 않고 학생들에게 정치를 소개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학생들에게 그들의 의사에 반하여 특정 정파와 정당을 지지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것은 학교의 중요하고도 필요한 역할이다.”(2017.10.5일자 the educator. 디에듀케이터:호주의 교육전문 매체)

프랑스 교사들의 정치적 위상

전학선 교수(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가 전하는 프랑스의 상황을 보면, ‘한국은 공직선거법 제58조 제1항에서 선거운동의 개념을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로 하고 있어 매우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하나라도 연루되면 교사들은 법적 제재를 받는다. 그러나 프랑스는 선거운동에 대하여 금지하고 있는 것만을 규정하고 있고 그 이외의 것은 거의 다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상황을 좀더 살핀다.

‘프랑스의 교육법전 제 141-2조에서 교육의 중립성을 이렇게 규정한다. “국가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공교육 기관에서 모든 신념의 동등한 존중을 통하여 자신들의 입장에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보장한다.”’

‘프랑스의 교원들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다. 다만 이들 교원이 선출직으로 진출하면 그 기간 동안 휴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임기만료와 동시에 다시 복직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실제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선출직으로 진출한 교원의 비율은 1981년 총선에서 전체 491석 중 167적을 차지했다. 1997년 총선의 경우 577석 중 150석(10명 중 3명꼴)으로 이전 20여년 동안 의회에 진출한 직종 가운데 단일 직종으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 여기에는 학부모들이 교원에 대해 가지는 신뢰가 원동력이다.’

‘자본주의 사회질서를 감안한다면, 교원의 정치참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주로 자본가 계급의 지역유지들뿐이다. 이들은 경제적인 부담을 감수하고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재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재력이 없는 그러나 특출한 정치능력을 지닌 사람이 선출되더라도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영향력 아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었다.’

(프랑스 교사들도 한국과 같이 공무원으로 분류되는데), ‘공무원이 특히 정치부문에서 선출되어 지방의회, 국회, 유럽의회의 의원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국가에 봉사하는 가장 고귀한 방식이라는 인식이 공유되어 있다’. 선거참여, 출마 등에 거의 제약이 없는 프랑스에서 ‘교원이 직무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중립의무를 준수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직무 이외의 시간에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어떤 제약의 대상도 될 수 없고, 만일 제약이 가해진다면 그것은 정치적 박해로 여겨질 것이다.’(프랑스 교육제도와 교원이 정치활동의 자유, 세계헌법연구 제 19권 3호, 2012)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교사정치기본권찾기연대 관계자들이 교사정치기본권 찾기 헌법심판청구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교사정치기본권찾기연대 관계자들이 교사정치기본권 찾기 헌법심판청구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외부 편견을 거두고 학생들의 가치 및 이념교육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춰야

이제라도 우리는 학생들 각자의 신념에 따라 가치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 제 31조 4항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곧 ‘가치중립’에 대해 교사의 판단을 감추되 모든 정치이념과 정당의 노선을 학생토론에 맡기는 것으로 재규정해야 한다.

이는 학습권과 교육권 모두를 충족하는 것이 된다. 현장 논의에 부쳐 필요하다면 이 조항을 폐지하는 것도 좋다. 왜냐하면 이 조항이 다분히 악법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법이 촘촘할수록 자유재량은 줄어든다.

다음으로 현직교사들이 휴직상태에서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급히 법제화해야 한다. 이를 집단 이기주의로 해석하면 이는 또 하나의 중대한 착각이다. 정치인들이 교사의 참정권에 반대하는 이면에는 직업정치인들의 몫이 뺏기는 것에 대한 편협한 저항의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보수정당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지분을 뺏길 것을 염려하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한국에서 ‘정치 시민교육’과 ‘교사들의 참정권’은 먼 섬에 유배되어 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어찌 학생들의 이념적 지형이 풍요롭게 확대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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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호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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