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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여전한 록음악의 패기
전국비둘기연합
전국비둘기연합ⓒ제공 = 전국비둘기연합

첫 곡부터 호쾌하다. 록 음악이니 호쾌한 게 당연할 수 있지만, 록 음악도 다르고 달라서 호쾌하지 않은 록 음악도 많고 많다. 그런데 2007년 데뷔한 2인조 밴드 전국비둘기연합은 2017년에 발표한 정규 3집 ‘Hero’에 이어 2년 반 만에 내놓은 네 번째 음반 ‘999’를 간명하게 몰아치는 록 음악들로 채운다. 이것이 록이라고, 이것이 록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반문하는 듯한 곡들은 짧고 굵다.

9곡의 직설적인 음악...곧장 절정으로 내달리는 곡들

9곡의 음악을 담았지만 다 듣는데 30분이 걸리지 않는 음반은 직설적이다. 그래서 들으면 바로 안다. 이 음반에는 긴 곡의 파노라마와 화려한 도입부, 장엄한 대미, 심오한 메시지 같은 건 없다. 3분이 채 되지 않는 첫 곡 ‘하이퍼 썬’에서부터 전국비둘기연합은 짧은 도입부를 지나쳐 곧장 곡의 절정으로 내달린다. “강렬한 에너지로 지구를 비추는 태양의 입장에서 써본 곡”이라는 설명처럼 움트는 에너지를 지글지글 끌어올린 후,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의 협연으로 속도감을 분출한다. 종횡무진 확장하는 일렉트릭 기타의 에너지를 겹쳐 쌓은 연주와 계시처럼 전해지는 보컬, 속도를 늦추며 이글거리는 사운드는 노랫말의 크낙한 마음을 그대로 옮긴다. 속도를 늦춘 두 번째 곡 ‘망고’는 “망고라는 이름 뒤에 숨어있던 친구를 위한 곡”으로 기타 리프의 선명한 멜로디와 사이키델릭한 톤이 리드미컬하다. 드럼이 변주하며 멋을 부리고 기타 연주의 톤을 바꾸며 노래 이상의 매력을 만들어내는 이 곡 역시 2분 32초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타이틀곡 ‘끼리끼리’는 “끼리끼리, 유유상종, 우리도 한번 잘 놀아보세!.”라는 곡 설명처럼 1분 50초의 시간을 다시 속도감으로 불태운다. “아무 생각 없는 쓰레기들/생각만 잘하는 겁쟁이들//다들 끼리끼리 노네/우리 끼리끼리 놀자”라는 명료한 노랫말을 전국비둘기연합은 부와왕거리는 엔진 소리 같은 일렉트릭 기타 연주와 드럼 소리에 맞춰 내지른다. 선명한 기타 리프와 코믹한 속도 변화는 전국비둘기연합이 낙관적이거나 당당한 태도 쪽에 서 있음을 드러낸다. 기실 이 음반의 어떤 곡에도 우울함이나 비탄의 정서는 없다. 전국비둘기연합은 오직 한 번뿐인 순간의 삶을 온전히 움켜쥐고 불살라버리겠다는 듯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듯한 태도는 2분 28초의 곡 ‘워터마크 파크’로 곧장 이어진다. 지금껏 이어온 속도감과 일렉트릭 기타의 광폭함을 이어받아 연신 터트리는 곡은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의 비중을 조율하며 곡의 드라마를 진하게 덧칠한다. 연주력은 단지 정확한 음과 비트를 구현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이렇게 자신들이 표현하려는 서사를 소리로 전환시켜 구현하는 능력이다. 즐거움 가득해 정신 차릴 수 없을 만큼 신나는 시공간을 날카롭고 몽롱한 기타 소리와 짧게 반복하는 비트로 풀어놓음으로써 전국비둘기연합은 ‘워터마크 파크’가 아니더라도 흥건했던 열정의 찰라에 젖어들게 만들고 만다.

전국비둘기연합
전국비둘기연합ⓒ제공 = 전국비둘기연합

전국비둘기연합, 태도를 분명히 하겠다는 곡들
“어려운 세상에 뾰족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스스로 응원하기에 충분한 음악이다”

좀 더 경쾌한 곡 ‘페이스타임’은 “페이스타임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사람에게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상쾌하게 노래하면서 전국비둘기연합의 화사하고 화끈한 스타일을 잇는다. 이 곡에서도 보컬의 노래보다는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의 협연이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감각에 집중하자”라고 다짐하는 곡 ‘필 잇’도 연주만으로 이성보다 감각의 편에 서는 태도를 드러낸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느껴질만큼 밀려오는 속도와 강렬함과 묵직함은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수거나 헤치며 진군하겠다는 자신감이 돋보이는 멜로디와 싱그러운 변주, 다시 몰아치는 곡의 흐름은 자연스럽다. 전국비둘기연합은 그 자연스러움으로 자신들의 음악적 깊이와 매력을 발산한다. 이 같은 스타일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흘러가는 데로 내 몸을 맡기는 기분”을 노래한 곡 ‘소용돌이’로 연장된다. 속도를 조율하며 드라마를 버라이어티하게 확장하고 미련 없이 곡을 끝내버리는 단호함은 곡의 설명과 다를 바 없다.

한 곡이 모든 정서를 다 표현할 수 없다 할 때, 전국비둘기연합의 음반이 어떤 태도와 정서의 편에 서 있는지는 분명하다. ‘예스 오어 노’처럼 태도를 분명히 하겠다는 태도, 그리고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태도가 바로 전국비둘기연합의 태도이다. 인트로처럼 만든 곡에 이어 아웃트로 같은 마지막 곡 ‘세상을 다 다 달리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목처럼 내달리기보다는 싱얼롱하듯 노래하는 곡에서도 전국비둘기연합은 그저 선언하고 외칠 뿐, 걱정하지 않는다. 고민하지 않는다. 태도로서의 록큰롤을 사운드로 정확하게 재현해낸 음악은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에 뾰족한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포기하거나 단념하지 않는 에너지로 힘을 내고 스스로 응원하기에는 충분한 음악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고. 이왕 버틸 거라면 웃으면서 버티자. 전국비둘기연합의 음악이 곁에 있다면 갈수록 답답해지는 세상, 좀 더 즐겁게 버틸 수 있다.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음악과 자존심은 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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