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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이대로면 자동차산업 망해” 30년 전문가의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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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한국 자동차산업 망한다”

<민중의소리>와 만난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내다본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는 녹록치 않았다. 30년간 자동차산업을 연구한 그는 현대자동차를 위시한 완성차업체의 ‘갑질’로 부품사가 무너지는 ‘아래로부터의 위기’를 강조했다. 완성차업체와 부품사 간 불균형한 협상력에서 발생한 불공정거래로 부품사 경영이 악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개별 기업 뜯어 본 ‘미국 빅3’ 보고서, 30년 연구 발판 되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87년 3월 산업연구원에 입사했다. 이후 수송기계산업팀장, 기계산업팀장 주력산업팀장뿐 아니라 대중소기업협력재단 협업연구회 회장, 한국자동차산업학회 부회장, 중견기업학회 부회장 등을 맡으며 연구원 안팎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1986년 일반 사기업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선임연구위원은 우연한 기회로 산업연구원에 들어갔다. 그는 “당시 기획개발실에서 근무했는데 3저 호황으로 대기업들이 외국진출을 많이 할 때라 시장조사를 돌아다녔다”며 “여기저기 자료를 구하러 다녔는데 산업연구원 쪽에 이직 의향을 물어왔다. 괜찮을 것 같아서 시험을 치르고 합격해 이직했다”고 말했다.

당시 산업연구원은 각 연구실에서 추천을 받아 지원자를 모집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을 부른 곳은 미국경제를 연구하는 북미구주실이었다.

미국시장 전반에 대해 조사하던 그가 자동차산업과의 연을 맺은 건 1990년부터였다. ‘산업’연구원이라는 조직 이름에 걸맞게 담당 산업을 정하게 된 것이다. 이후 연구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완성차업체에 집중됐다. 5년간의 연구 끝에 북미 자동차 시장 경쟁 구조를 주제로 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조금 사건이 됐다”며 아주 짧은 순간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어 “연구원은 기아경제연구소에 보고서 평가를 맡겼다. 그때는 기아가 자동차 분야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다”며 “‘아주 퍼펙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역실에서도 이런 산업보고서가 나올 수 있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산업을 통으로 묶어 분석하는 ‘매크로’ 연구가 아닌 개별 기업별로 뜯어보는 ‘마이크로’ 연구였던 점이 좋은 평가를 이끌어낸 핵심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자동차산업에 더욱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된다. 대우자동차 매각을 다루게 된 것이다.

“애초 인수 1순위는 포드였는데 포드라는 기업을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가 한국에 많지 않았다. 국내 산업만 알았지. 그러다가 갑자기 GM으로 가니까 더 헤맸다. 그런데 내가 북미 자동차업체 보고서를 쓴 경험이 있어서 매각작업에 투입됐다.”

그는 2000년 산업실로 자리를 옮겨 ‘대우자동차의 처리 방향과 자동차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 보고서를 작성했다. 산업연구원은 국책연구기관인 만큼 그의 보고서 내용은 정부와 채권단이 매각 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판단근거를 마련해줬을 터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18일 서울 종로구 모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9.18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18일 서울 종로구 모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9.18ⓒ김철수 기자

“현대차 ‘각자도생’ 선언, 부품사 갈 곳 잃어…거래조건 개선해야”

이후 이 선임연구위원은 ‘전속거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전속거래는 부품사가 대부분의 물량을 한 완성차업체에게만 납품하는 거래 형태를 일컫는다. 완성차업체 입장에서는 부품사가 자신하고만 거래를 하면 생산량이나 품질 등과 관련한 요구사항을 잘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전속거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부품사도 확실한 납품처가 생기고 주요 고객사 요구에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에 경영측면에서 효율성이 높아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속거래가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현재는 오히려 그 이면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자동차산업을 붕괴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전속거래를 하면 원청사인 완성차업체와 하청사인 부품사 간 협상력의 균형이 깨진다. 하청사는 원청사 발주가 없으면 회사가 망하기 때문에 납품 단가를 지나치게 낮춘다거나 무리한 설비 확장을 요구하는 등 갑질에 대응할 여지가 없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완성차업체 부품 계열사 영업이익은 8%인데 비계열사는 2%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 자동차산업이 성장가도를 달릴 때는 완성차업체가 만든 자동차가 많이 팔리는 만큼 부품사 주문물량도 많아 단가 인하 등을 감수하더라도 이익이 남았지만, 완성차업체가 고전을 겪으면서 부품사도 덩달아 경영이 악화하고 있다. 기술과 설비 등이 이미 기존 주요 고객사에 맞춰진 탓에 새로운 고객사와 거래를 트기도 쉽지 않다.

“최근 현대차가 ‘각자도생’하라며 부품사 전속거래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새로운 고객사 찾아 외국 나갔던 나름 덩치 있는 부품사 몇 군데 만났는데, 공통적으로 3가지 얘기한다. 기술력, 품질, 원가에서 외국 부품 경쟁사를 못 따라간다는 거다.”

현대차가 부품사에게 선심 쓰듯 판로를 열어 준 것 같지만 사실상 내팽개친 것과 다름없다는 게 이 선임연구위원 설명이다. 그는 완성차업체가 부품사 거래 관계를 개선하는 가운데 서서히 전속거래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18일 서울 종로구 모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9.18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18일 서울 종로구 모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9.18ⓒ김철수 기자

발표되지 못한 전속거래 연구, 책으로 엮는다

이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역대 정부 중에서도 전속거래에 관심 갖고 연구조사를 맡긴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연구결과는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전속거래에 대해 대기업들이 굉장히 거북스러워한다. 자신들의 만행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원가나 임률 등 기업비밀과 관련된다는 점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기업이 로비 안 했겠나. 조사를 해도 결국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대기업들 불러서 야단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연구를 해도 성과가 없다보니 전속거래를 연구하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다”

전속거래 연구 대상에는 완성차업체뿐 아니라 500여개에 달하는 1차 부품사, 그 아래 정확히 집계조차 힘든 2·3차 부품사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들 개별 기업의 원가·임률·영업이익·유동비율 등을 바탕으로 혁신성·성장성·수익성·재무건전성 등을 분석해 전속거래에 발생하는 장단점을 파악한다. 양이 방대하고 접근이 어려운 기업 정보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이 숨기면 일반 국민에게 공개될 길이 막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쩌다 새어 나온 전속거래 보고서는 ‘단독’을 달고 보도된다. 2010년 1월 4일 산업연구원 내부적으로 전속거래 관련 세미나가 열렸는데 회의장에서 미처 수거되지 못한 내부자료를 동아일보와 MBN이 챙겼다. 두 언론사는 2010년 1월 5일 두 언론사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각각 단독기사를 냈다. 현대차와 계열사, 비계열사 영업이익률이 극과 극이라는 내용이었다. 현대·기아차 거래비중이 높은 부품사가 다른 완성차업체 하청사보다 자산유동성이 나쁘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이 일이 있고 나서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국정원 관계자가 산업연구원을 방문했다. 당시 정부가 전속거래에 얼마나 민감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이른바 ‘친 현대차’ 일색인 전문가그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자동차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현대차와 관계를 맺고 있다. 나도 전속거래 연구하기 전에는 현대차에서 강의도 했다. 지금은 다 끊었다. 그거 없다고 못사는 것도 아니고. 전문가와 현대차 관계가 쫀쫀하다. 현대차 치부는 쉬쉬하다가 전략을 내놓으면 다들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이유가 다 있다.”

이 선임연구위원의 전속거래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그리고 그간의 연구결과를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업계·학계·정계에서 쉬쉬해 온 완성차업체 갑질 행태가 수치로 정리된 데이터로 공개되는 셈이다. 출간은 정년 퇴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짧으면 1년, 길면 3년 후 연구원을 나온다.

“기업 스스로 안 변해…정부가 지속적으로 관심 보여야”

이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부품사 경영은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고 결국 완성차업체에도 악영향을 줘 산업이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위기’가 온다. 부품사부터 무너진다. 현대차는 살겠지. 기업 규모가 워낙 커졌고 외국 업체에서 부품 조달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완성차업체는 힘들다. 부품 국산화도 물 건너간다. 그러다가 이번 일본 수출 규제처럼 무역 분쟁 일어나면 현대차도 장담 못 한다”

정부 의지가 중요하다는 게 이 선임연구위원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참여정부가 동반성장을 국정기조로 추진한 2006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한 2010년, 전속거래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진 2016년 부품사 수익성이 개선되는 조짐을 보였다. 그는 “기업은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며 “정부가 개선 의지를 갖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18일 서울 종로구 모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9.18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18일 서울 종로구 모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9.18ⓒ김철수 기자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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