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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사람과 현장] “미안해. 나 그만두려고”

은정이가 나갔다.

“미야야, 나 오늘까지만 하고 회사 그만둘란다.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하네.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짧은 문자를 보내온 은정이는 같이 입사해 동갑이라며 쉬는 시간마다 같이 수다를 떨던 친구였다. 그렇지 않아도 요 며칠째 일이 힘들다며 말수가 부쩍 줄어 걱정이 되던 터였다. 그날도 점심을 같이 먹고 나서 양치를 하고 나오는 그 애를 화장실 앞에서 낚아채 사람들이 없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너 무슨 일 있지?”라며 채근하니 나온 얘기는 이랬다.

조립라인은 총 6개가 있는데 그중 여섯 번째 라인에 배정을 받은 은정이를 라인장이 처음부터 ‘갈구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왜 일을 그런 방식으로 하냐며 작업방식을 타박하더니 나중엔 일을 빠르게 하지 못한다고 타박하고. 타박을 당하니 당황해서 손이 꼬이고, 실수를 하게 되고, 또 눈치를 주고. ‘한동안이겠지, 일이 익숙해지면 나아지겠지’하고 참고 다녔는데, 두 달이 지나도록 계속 몰아세우니 더 이상은 참기가 힘들다고. 조장에게 다른 라인으로 바꿔 달라고 말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며, 힘들면 나가라는 뜻 아니겠냐고, 이번 달까지만 다녀야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정말 나쁜x들이라고, 욕을 한 바가지 했다. 그저 맞장구를 치는 일밖에 할 수 없어 미안했던 그 날.

경기도 안산의 반월공단<br
경기도 안산의 반월공단ⓒ뉴시스

나에게 문자를 보낸 건 그날 저녁이었다. 다음날 출근해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날 잔업시간 내내 사람들에게 시달렸던 모양이다. 다음날 은정이는 출근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조용히 사무실에 와서 사직서를 쓰고 갔다고 했다.

어느 회사나 텃세, 왕따, 괴롭힘이 있다. 그래서 얼마 전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제조업 현장에서의 괴롭힘에는 근본적인 배경이 있다. 바로 회사가 만들어 놓은 물량경쟁이다. 회사는 라인을 쪼개고, 라인장을 세워 놓고, 서로 경쟁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관리한다. 거기에 덜 숙련된 신입사원은 골치 아픈 존재일 것이다. 회사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하지 않으니까, 서로 힘들고, 짜증 나니 누군가에게는 책임을 돌리고, 그러면서 노동자들 간의 관계는 서서히 무너져 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냥 서로서로 왕따를 시키고, 갈구고, 못 견디게 해 나가게 만들고. 결국 나간 사람의 자리는 기존의 사람이 두 배로 일해서 채우고. 또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가르쳐야 하고, 서로 힘들고, 또 구박하고, 어차피 최저임금이나 주는 회사, 미련 없이 나가고. 이런 상황이 무한 반복이 되는 것이다.

이 재밌는 회사,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내용은 또 친절하게 붙여놨다. 아마 7월에 만들어진 뜨끈뜨끈한 법이라 노동부에서 보내주었나.

-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 외적인 범위에서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다(제76조의 2). 직장 내 괴롭힘을 알게 된 누구든지 발생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 가능하며, 신고를 받거나 사실을 인지한 사용자는 지체 없이 조사할 의무가 있다(제76조의 3 제1항).

이놈의 회사, 물량경쟁만 좀 줄여도 사람들이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길 텐데. 10명을 뽑으면 5명이 한 달 안에 나가는 회사로 공단 안에서도 유명하단다. 대부분 이유는 ‘사람들이 힘들게 해서’라고 말하면서. 안타깝다. 진짜 나쁜 건 경쟁을 부추기고 그걸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최고의 이윤을 뽑아내는 자본가들인데.

아파 죽는다, 죽는다 하면서도 ‘강제잔업’ 이라며 손에 붕대 감아가며 꾸역꾸역 하는 사람들
아파 죽는다, 죽는다 하면서도 ‘강제잔업’ 이라며 손에 붕대 감아가며 꾸역꾸역 하는 사람들ⓒ필자 제공

추석이 지나고 또 한 언니가 조용히 오더니 속닥거린다. “미야야, 나 그만둘 거야. 내 손가락 좀 봐봐, 이게 뭐니.” 휘고 부어버린 손가락을 보니 뭐라고 붙잡을 말이 없다.

“네. 언니, 잘 생각하셨어요. 꼭 좋은 곳으로 가시길. 저도 불러주시고”라는 말밖에. 행복을 빌어줘야지 어쩌겠나.

엄미야 금속노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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