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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노무현 서거’ 직후 언론인들 “여론재판 식 단정 보도” 반성하더니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지붕 낮은 집'의 서재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위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지붕 낮은 집'의 서재ⓒ양지웅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내용 흘리기로 의심되는 수많은 언론보도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피의사실공표죄가 형법상 존재함에도 검찰이 기소도 하기 전에 정보를 흘리고 있다면 그것도 문제지만, 아직 수사가 무르익지도 않은 상황에서 혐의 입증에 주력하는 수사기관의 일방적인 시각을 반론권 보장도 없이 보도하고 있는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극으로 몰아간 수사기관과 언론의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런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 반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언론인·언론학자들로부터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한국언론재단 월간지 ‘신문과 방송’ 2009년 8월호에서 이재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소 전에는 피의사실 보도를 최대한 삼가야하며, 기소된 이후에도 기소내용을 중심으로 한 사실 전달에 충실해야 한다. 언론이 수사기관을 대신하고 있는 듯한 보도, 추측이나 일방적인 주장에 근거한 보도는 하루빨리 버려야 할 잘못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해 7월 한국언론재단에서 열린 언론인·언론학자 좌담회에서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우리 언론은 법원에도 가기 전, 사회적으로 인지된 단계나 수사 단계에서 확인되지 않은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여론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른바 여론재판을 하는 것”이라며 “수사 단계에서 얻은 제한적인 정보로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해 공판을 하기도 전에 피의자의 사생활과 명예를 무참히 공격하는 일에 대해 언론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관계자 85% “피의사실 보도 개선돼야”
“사실 확인, 반론 확보 후 보도해야”...79.9%
“여론재판 식 단정 보도,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한국언론재단 월간지 신문과방송이 2009년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언론계 종사자와 언론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언론인과 언론학자들의 85.6%가 언론의 현행 피의사실 보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답했다.
한국언론재단 월간지 신문과방송이 2009년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언론계 종사자와 언론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언론인과 언론학자들의 85.6%가 언론의 현행 피의사실 보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답했다.ⓒ한국언론재단 신문과방송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언론보도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자성은 언론학자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당시 ‘신문과 방송’이 언론인들과 언론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선물조사에서도 “언론의 현행 피의사실 보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에 85.6%(매우 그렇다 42.6%, 그렇다 43.0%)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사에 종사하고 있는 기자에 한해서 보더라도, 82.3%가 ‘개선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신문과 방송’이 2009년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당시 확보하고 있는 언론계 종사자와 언론학자 총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이메일 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총응답자는 467명으로 기자는 255명(54.6%), 언론학자는 104명(22.3%), 언론사 기술·관리·업무직이 53명(11.3%), PD가 29명(6.2%) 등의 순이었다.

이 조사에서 언론관계자들은 피의사실공표 보도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국가기관의 발표이므로 즉시 보도해도 된다”는 주장에 동의한 응답자는 35.5%에 그친 반면,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43.9%로 더 많았다. 특히 언론학자와 PD들이 더 비판적이었다. 언론학자들은 60.5%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고, PD들도 58.6%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수사 도중 여론을 움직이려는 정보 흘리기가 아닌 공식발표에 대해서도 ‘즉시 보도’는 적절하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했던 것이다.

“피의자 취재를 통해 사실 확인이나 반론 확보 후 보도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79.9%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8.1%에 불과했다. 아무리 국가기관의 공식발표라고 하더라도, 직접 피의자 취재를 통해 사실 확인을 하거나 반론을 확보한 후에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소 전까지는 보도를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62.2%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26.3%로 나타났다.

언론관계자들은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관행으로 ‘여론재판 식 단정 보도’를 꼽았다. 응답자의 37.7%인 176명이 ‘여론재판 식 단정 보도’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기자(33.3%), PD(31.0%), 언론학자(42.3%) 모두 같은 태도를 보였다. 다음은 ‘검찰·경찰 발표 그대로 보도하기’(28.1%), ‘피의사실 관련 의혹 제기하기’(14.3%), ‘피의사실과 관련 없는 피의자 신상 보도’(11.4%), ‘피의자 주변 인물 보도’(4.9%), ‘피의자 실명 보도’(1.9%) 등의 순이었다.

한국언론재단 월간지 신문과방송이 2009년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언론계 종사자와 언론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언론인과 언론학자들은 피의사실 보도에 있어서 가장 개선되어야 할 내용으로 여론재판식 단정 보도를 꼽았다.
한국언론재단 월간지 신문과방송이 2009년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언론계 종사자와 언론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언론인과 언론학자들은 피의사실 보도에 있어서 가장 개선되어야 할 내용으로 여론재판식 단정 보도를 꼽았다.ⓒ한국언론재단 신문과방송

“노무현 대통령 땐 있지도 않은 논두렁 시계로 망신 주더니”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언론인과 언론학자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오늘날 언론의 보도행태는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만 알 수 있는 정보가 공개 브리핑이 아닌 방식으로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이를 최소한의 확인이나 당사자의 반론권조차 반영하지 않은 채 발행되는 기사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동양대 총장 직인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 PC에서 발견됐다’는 한 방송사의 최근 단독보도가 대표적이다. 해당 보도의 내용은 PC를 분석하고 있는 검찰을 통하지 않고선 기자가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이 보도에서 정 교수 측의 입장은 배제됐다. 이에 정 교수는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보도를 자제해 달라”며 자신의 SNS를 통해 반론을 올렸다.

해당 보도에 대한 반발여론은 적지 않았다. SNS에선 “각종 서류 작업을 위해 전결자의 직인을 작업용 회사 PC에 보관하고 있다”, “검찰이나 기자들은 회사 생활조차 안 해 봤냐” 등의 비아냥이 쏟아졌다. 현근택 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은 “직인 파일이 유죄의 증거가 되려면 상장의 직인과 일치해야 하고, 직인 파일이 2012년 9월 6일 이전의 것이어야 하며, 당사자가 직인 파일을 사용할 권한이 없어야 한다. 이중 어느 것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도의 반발여론은 10년 전 언론보도까지 떠올렸다. 바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극으로 몰아간 ‘논두렁 시계’ 사건에 대한 보도다. 게다가 이 보도를 한 방송사는 총장의 직인 발견 보도와 같은 방송사였다.

2009년 5월 13일, 이 방송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회갑 선물로 받은 1억 원짜리 시계 2개를 논두렁에 내다 버렸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 등으로 당시 검찰로부터 뇌물수수 혐의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은 졸지에 ‘파렴치범’이 됐다. 그리고 열흘 뒤인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생을 마감했다.

해당 보도가 논란이 되자,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이인규 대검찰청 중수부장은 “논두렁 시계는 국정원이 개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7년 해당 방송사의 논두렁 시계 보도경위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논두렁 시계 보도에서 국정원과의 연관성은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취재기자는 ‘논두렁’ 표현을 검찰 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 주장할 뿐이었다.

지난달 28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있지도 않은 ‘논두렁 시계’를 가지고 얼마나 모욕을 주고 결국은 서거하게 만들지 않았나. 피의사실을 유포하는 자는 반드시 색출하고 그 기관의 책임자까지도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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