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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자라는 아빠] 아이와 처음 찾은 할아버지 묘소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가수 조용필을 아빠라고 생각했던 대여섯 살 무렵의 어느 날, 티브이 브라운관에서 그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우다다 달려가 기쁜 소식을 알렸습니다.

"엄마! 엄마! 아빠가 테레비에 나왔어!"

확신과 기대감에 부푼 한 마디였습니다. 어머니가 다가와 제가 가리키는 티브이 속 남자, 조용필을 봤습니다. 아빠가 아니라고 말하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습니다. 싱긋 웃는 어머니의 맑고 다정한 표정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어머니로부터 실망스러운 대답을 들었지만 멋쩍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씩씩한 어린이였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장기 부재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했었기 때문입니다.

몇 년 후 마침내 ‘아버지가 미국에 돈을 벌러 갔다’는 어른들의 말은 효력이 다했습니다. 초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미국이 아닌 경남 지방의 공원묘지에서 장기 부재중이었던 아버지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럽거나, 새로운 상황도 아니었기에, 눈물겹지도 절망스럽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또래 관계에서의 위축감이 마음에 배어 내향적인 성격에 살을 덧붙여갔을 뿐입니다.

2019년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우리 가족은 아버지 산소가 있는 추모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처음입니다. 저는 가족들보다 앞장서서 양지바른 산비탈을 내려갑니다. 산소 위치를 찾아갈 때면, 소년기 시절의 주된 감정이 떠오릅니다. 불안하고, 조급했습니다. ‘언젠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스스로 산소를 찾아야 할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하고도 불길한 예감에 등 떠밀려, 성묘 때마다 아버지 산소의 위치를 외우려 애썼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버지 무덤 곁에 선 어머니는 잔디 사이에서 자란 잡초를 손으로 뽑으며, 매년 똑같은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 애들 이만큼 컸어요. 하늘나라에서 잘 보살펴주세요.”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아이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아이ⓒ필자 제공

우리 부부와 아이, 어머니와 동생은 산소 앞에 도착했습니다. 정오의 햇살은 밝고 따뜻했으며,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왔습니다. 산소의 모습은 기억 속 그대로였지만, 제가 자란 만큼 산소 크기는 작아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돌 화병에서 빛바랜 낡은 조화를 빼고, 새로 준비한 개나리색, 자홍색 조화 꽃다발을 양쪽에 꽂았습니다. 어머니는 사과와 배, 소주를 제물로 상석(돌상) 위에 꺼냈습니다. 이제 아이에게 할아버지를 소개해 줄 차례였습니다.

“지금까지 할아버지는 본 적이 없지? 이 무덤 안에 계셔. 인사드리자.”
“그럼 풀 속에 할아버지 해골바가지가 있는 거야? 어떻게 인사해?”
“응. ‘안녕하세요’하고 말하면 돼.”

아이는 평소 어린이집 근처 무덤가 잔디밭에서 자주 놀기 때문인지 생전 처음 무덤에 인사하는 것임에도 이를 생소하게 여기지는 않는 눈치였습니다. 아이는 초록색 잔디 옷을 입은 할아버지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습니다. 30여 년 만에 삼대가 처음으로 모인 순간이었습니다. 손자가 다섯 살이 되어서야 처음 보여드린 셈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각자 돌아가며 산소에 술을 뿌렸습니다. 아이는 왜 술을 뿌리는지 궁금해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술을 좋아하셔서 술을 드리는 거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아이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죽었는데 어떻게 먹어?”
(아내가 봉분에 작게 패인 홈을 찾아 가리키며) “할아버지 입이 여기 있을지도 몰라.”
“그럼 내가 줄래!”

재밋거리 사냥꾼인 아이가 새로운 놀이를 포착했습니다. 유리 술잔을 들고 서는 연거푸 봉분 곳곳에 부었습니다. 살아있는 할아버지와는 결코 하기 어려운 놀이였습니다. 아이가 할아버지와 노는 걸 지켜봤습니다. 이제 과일과 술병을 거두고 정리하려는데, 젊었던 아버지보다 두 배가 넘는 나이가 된 환갑의 어머니가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지난여름에 오려고 했는데 이제 왔네. 수현이 하늘나라에서 잘 보살펴주세요.”
“얘는 잘 자랄 거에요, 어머니.”

익숙히 들어왔던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 대신 제가 무심하게 대답했습니다. 아이는 알아서 잘 자랄 것이라고 평소에도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자라는 아이에게 더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에게 특별히 바라는 바가 생겼습니다. 그간 잊고 지내온, 어린 시절의 제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가 너무 가까운 이를 잃어 결정적인 상실감을 배우기보다 적당히 먼 거리의 소식을 통해 죽음을 짐작하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흔들리는 불안감을 견디려 빨리 어른스러워지기보다 안정감 속에서 느긋하게 자라면 좋겠습니다. 부모를 연민하는 대신 그저 든든하게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위축감보다 연결감을 경험하며 자라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할 몫이 있네요. 이 아이가 자라는 동안 아버지의 공백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속으로 조용히 다짐합니다.

아버지 산소를 뒤로하고 나서는 길, 이집 저집 산소마다 꽂힌 꽃을 봤습니다. 어떤 집이 최근에 다녀갔는지, 오래되었는지가 눈에 보입니다. 다음번엔 아버지 산소의 꽃이 너무 빛바래지기 전에 다시 와야겠습니다.

문득, 살아있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창열 정신건강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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