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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내가 너무 싫어질 때 들을 음악
전진희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 음반 표지
전진희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 음반 표지ⓒ전진희

내 일기장을 옮겨 놓은 줄 알았다. 9월 25일 내놓은 전진희의 두 번째 정규 음반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를 듣다 여러 번 깜짝 놀랐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거다/생각해 보지만/달라지는 건 없지/달라지는 건 없지//언제까지 견디면 될까/상처도 미련도/이제 아무 소용없는데/그저 아침에 눈 뜨기 두려운 건데//언제까지 버티면 될까/짧을지 길지 모를/살아가는 동안/난 행복할 자신 없는데”라는 ‘자신 없는데’의 노랫말 때문이다. “내가 싫어/너무 싫어/좀 더 멋진 어른일 거라 생각했어//내 마음조차 책임질 수 없을/그런 사람 말고” 같은 ‘내가 싫어’의 노랫말 때문이다.

노래를 듣다 마음이 멈춰버렸다.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마음 옆에 주저앉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물끄러미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전진희는 그런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다. 밴드 하비누아주에서부터 그러했다. 팝 밴드 하비누아주에서 피아노를 치는 전진희는 절망과 답답함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팀의 음악을 더 섬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팀의 새 음반을 발표한지 8개월만에 발표한 자신의 2집 음반에서도 한결같이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음악을 들려준다.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음악

악기는 더 단출하다. 건반 연주자인 전진희는 이번 음반에서 자신이 연주하는 피아노와 보컬 외에 현악기 말고는 다른 악기를 별로 쓰지 않는다. 어쿠스틱 기타와 클라리넷을 쓰기도 하지만 아주 잠깐이다. 그래서 이번 음반은 2017년부터 진행해 온 전진희의 솔로 프로젝트 ‘피아노와 목소리’의 연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음반은 첫 곡부터 연주곡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모든 곡의 노랫말과 멜로디를 쓴 이번 음반에서 전진희는 첫 곡 ‘나의 호수’를 건반과 현 연주로만 채운다. 그러나 그 호수가 반짝이지 않음을 모를 수 없다. 피아노의 리듬은 파도처럼 일렁이고 현은 번뇌처럼 현을 긁는다. 그리고 아름답다. 고통을 노래한다는 것, 그리고 그 노래가 아름답다는 것, 그것이 이번 음반의 거의 전부이다.
노래 속 고통은 먼저 언급한 노랫말처럼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에서 비롯한다. 전진희는 누군가의 일기장에서 가져온 듯 생생한 절망의 언어들로 실망과 좌절에 배인 고통을 노래한다. 실망하고 좌절하는 마음은 ‘물결’에서 노랫말로 표정을 드러낸다. “성난 파도가 치”는 호수처럼 “파르르 파르르 파르르” 떤다. “그 어디에도 숨을 수 없”다. 전진희의 노래는 그렇게 떠는 호수 같은 마음의 노래다. 그래서 노래 역시 파도치고 떤다.

하지만 전진희의 노래는 슬프고 처량한 노랫말처럼 어둡지만은 않다. 음반에서 절망편을 담당하는 <물결>, <자신 없는데>, <내가 싫어>, <달이 예쁘네>의 4부작에서 전진희는 좀처럼 절망을 배가시키지 않는다. 대부분의 대중음악이 감정을 증폭시키는 태도와 비교되는 전진희의 톤은 의외로 담담하고 차분하다. 이는 전진희의 노래 속 절망이 이미 오래되어 특별하게 강조하고 부풀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거나, 지나간 과거이기 때문일 수 있다. 오래 앓은 절망, 지나간 절망은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그래서 노래 속 전진희의 보컬은 목소리를 올리지 않고, 연주를 통해 감정을 강화하지도 않는다. 전진희의 노래와 연주는 대부분 노래 속 누군가가 느끼는 조심스러움을 대변하듯 담담하고 정갈하다. 덕분에 감정의 실체에 흔들림 없이 근접할 수 있다. 감정과 상황을 오롯하게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최소한 세상에서 나만 힘든 것은 아님을 공감할 수 있다. 그 순간 전진희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고통의 지극함과 공감의 온기를 소리로 충분히 전달한다. ‘물결’의 후반부에서 현과 건반, 보컬 허밍이 만드는 영롱한 앙상블이나 ‘내가 싫어’의 피아노 연주가 대표적이다. 생활의 냄새를 풍기는 ‘달이 예쁘네’의 사운드와, 감정을 해소하는 과정을 기타 트레몰로로 표현한 ‘놓아주자’, 해사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왜 울어’도 인상적이다.

떠는 호수 같은 마음을 노래하는 전진희

위로는 힘든 상황에 대해 요란하게 맞장구치거나 명쾌한 해답을 찾아줄 때 느끼는 게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부풀려 과장하지 않고,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동의하고 공감할 때, 위로를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절제하는 사려 깊은 태도가 전진희 음악의 위로와 다정함을 만드는 힘이다. 소리를 조율하고 연출하며 드러내는 노래 속 태도가 위로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리하고 다잡아야 한다. 전진희는 이아립과 함께 부른 ‘놓아주자’에서 “우리라는 단어 안에/묶여있던 죄책감들을/놓아주자/놓아주자/이젠/이젠”이라는 노랫말로 노래 속의 누군가가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자신을 괴롭히는 마음을 보내주며 자신을 다독이는 모습을 그린다. 연주곡인 ‘모두가 너를 미워해도’에서도 피아노로 연주하는 선율은 모두가 너를 미워해도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을 거라거나, 너 자신은 소중하다라는 이야기로 이어질 것 같다. 그래서 강아솔과 함께 부른 ‘우리의 슬픔이 마주칠 때’에서 “우리의 슬픔이 마주칠 때/그냥 웃어줄래/알고 있잖아 우리 우리/짙은 마음의 무게를”이라는 노랫말의 공감은 자연스럽다. 코듀로이와 함께 부른 ‘왜 울어’에서 “별빛은 널 향해 반짝이고 있어”라고 위로하고, “외로운 이 세상 어느 누구도/네 슬픔 알지 못해도 괜찮아”, “괴롭고 무거운 짐은 내려놓고 숨겨둔 너의 미소를 만나는 오늘 밤”이라고 응원할 때도 전진희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편안해 기댈 수 있다. 다른 이의 어깨에 기대 빛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좋은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지’라는 마지막 곡의 그리움도 자신을 완전히 무너뜨리지 못한다. 어떤 슬픔은 견디지 못하지만 그 슬픔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여운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은 여름이었고, 이제는 가을이 되어버렸지만 노래와 함께 우리는 괜찮다. 노래가 있어서,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전진희
전진희ⓒ전진희

필자의 사정으로 예정보다 늦게 연재됐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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