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을 염원하는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일대 검찰청을 포위하고 “적폐 검찰, 정치 검찰 아웃”을 외쳤다. 시민들은 ‘200만 촛불’ 보도를 가짜뉴스로 치부하던 보수 야당 보란 듯이 지난 주 28일 열린 ‘검찰개혁 촛불문화제’보다 더 많이 모였다.
이날 오후 6시부터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 등 주최로 ‘제8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서초역 인근에는 집회 시작 6시간 전인 정오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국 구속’을 외치는 우리공화당의 맞불 집회가 12시 반부터 열려, 오전부터 모이자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공유된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는 서울시민 뿐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각지 시민들이 관광버스를 대절해 참여했다.
이날 집회 무대는 지하철 2호선 서초역 사거리를 중심으로 대검찰청 방향, 교대역 방향, 예술의전당 방향, 대법원 방향에 모두 설치됐다. 오후 3시가 되자 메인 무대가 설치된 서초역 사거리부터 대검찰청 앞까지 500m 구간 8차로가 ‘검찰개혁’ 피켓과 노란 풍선을 든 시민들로 꽉 찼다.
주최 측은 참여 인원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지난 28일 검찰개혁 집회에 참여한 인원이 200만 명 이상이라고 추산하자, 보수 야당들은 가짜뉴스라며 참여인원은 5만~10만 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에선 200만 촛불이라고 보도한 언론을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현장에는 ‘숫자 공방’이나 벌이는 보수 야당에 화가 나서 참가했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A(57·여) 씨는 “국민이 요구하는 검찰개혁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고, 집회 참가 인원만 물고 늘어지는 자유한국당의 태도에 답답해서 참가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B(66·남) 씨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조국 사퇴를 요구하는) 광화문 집회에 300만 명이 왔다길래 (검찰개혁 집회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정확한 인원을 추산할 수 없었지만, 집회 중반부인 오후 7시 50분경 대검찰청부터 예술의전당까지 약 970m, 서리풀터널 입구부터 교대역 인근까지 약 1.2km 8차선 도로가 집회 참석자들로 가득 찼다. 도로 뿐 아니라 인도에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최 측이 예상한 인원보다 많은 수가 참여해, 이들은 중간에 집회 신고 장소 범위를 늘리기도 했다.
남녀노소 모두 “정치 검찰 아웃”
이번 집회에는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많았다.
전남 순천에서 10살 딸과 함께 온 C(41) 씨는 “(촛불 집회는) 살아 있는 교육의 현장”이라며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과도하다고 생각해 참가하게 됐다. 검찰과 언론은 고 노무현 대통령 당시 ‘논두렁 시계’ 보도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공수처 설치로 비대해진 검찰 권력을 나눌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면목동에서 어린 두 자녀, 아내와 함께 온 40대 D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때도 다 같이 참가했다”라며 “검찰이 공평하지 않다.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먼지 털 듯이 수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50대 세 자매는 “(조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보면서 답답했다.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검찰은 국민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검찰개혁 요구가 국민적 열망임을 보여주듯 집회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했다.
부산에서 온 E(29) 씨는 “검찰은 조사를 선택해서 한다. 내부 범죄는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언론 역시 편파적이다”라고 참가 계기를 말했다. 서울에 사는 F(33) 씨는 “지금 검찰을 보면 나라 위에 검찰이 있는 것 같다. 검찰 권력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온 G(65) 씨는 “내 위에 세대들은 대한민국 검찰을 겪었는데 아직도 모른다. 검찰은 박정희 정권부터 권력의 개였다”라고 말했다. 전주에서 온 H(77) 씨는 “울분이 터져서 나왔다. 국민을 위한 검찰이 아니라 검찰을 위한 검찰이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지만, (조 장관) 가족을 말살시키는 조사들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로 온기 느끼며 끝까지 자리 지켜
“태극기 되찾겠다” 태극기 퍼포먼스도
쌀쌀한 가을 날씨에도 시민들은 서로의 온기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시간이 늦어지자 담요를 덮고 부모들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무대와 거리가 먼 곳에서도 시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참가자들은 유튜브를 통해 집회 현장을 보며 구호를 외쳤다. 집회 행렬 끝자락에서는 사물놀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연신 휴대전화로 집회 모습을 담았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장면은 태극기 퍼포먼스였다. 시민들은 머리 위로 대형 태극기를 넘기거나 태극기가 그려진 피켓을 흔들며 “태극기 부대로부터 태극기를 되찾겠다”라고 외쳤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촛불 파도타기는 오르막길 탓에 더욱 물결처럼 보여 장관을 이뤘다. 참가자들은 피켓을 들고 인증샷도 남겼다.
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집회는 오후 9시 20분경 큰 사고 없이 종료됐다. 경찰은 이날 서초역 인근에 88개 중대 5천여 명의 인력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날 정오부터 서울지방조달청부터 서초경찰서까지 우리공화당의 ‘조국 구속’ 집회가 열렸지만, 양측의 물리적 충돌은 전혀 없었다.
강석영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