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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일상이 고공농성장인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극단 전화벨이 울린다

서울시청 옆 인권위원회 70m 높이의 광고판으로 올라간 선배가 있었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기아차 불법파견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70m 높이는 생각보다 높았다. 시청 근처에서 올려다본 광고판에서 선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땅에서는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그곳은 보이지 않는 세상이었다. 사실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시청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로도 시청 앞을 일주일에 서너 차례 지나갔지만, 선배가 있었던 그곳을 생각 없이 지나쳐오기 일쑤였다. 선배는 363일이 지나서야 그곳에서 내려왔다. 일 년을 그 70m 높이 광고판 아래에서 지낸 것이다. 선배의 소식은 동문회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선배는 땅으로 내려와 병원에 실려 갔고 회복 뒤, 회사는 선배에게 그동안 손해배상과 압류를 진행했다는 소식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배를 다시 만난 것은 송년회 자리에서였다. 선배는 어린 시절 고향이야기를 하며 학창 시절 늘 보았던 천진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후로 하늘에는 그저 하늘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철탑으로 타워크레인으로 위로 위로 올라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루가 멀다고 들었지만, 그것은 뉴스 기사 속의 이야기로 다가올 뿐이었다. 그렇게 일 년을 70m 허공에서 버텼던 선배의 얼굴을 마주하고 난 뒤 하늘을 보는 일은 더 뜸해졌다. 땅만 보고 살다가도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 계절이 오감을 만끽하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도 쓸어내리곤 했는데. 이젠 하늘을 올려다보면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하늘과 땅 중간 어디쯤에서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곤 해서이다.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는 고공농성을 승리로 마치고 내려온 한 노동자 아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도 마트의 계산원이었던 여자는 이제 동네 편의점에서 일한다. 점주는 그녀의 성실함에 '매니저'라고 추켜세우며 어떻게든 편의점 매상을 올리려 안달이다. 건너편 마트가 파업을 하면서 점주는 손님이 더 늘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여자는 얼마 전 그만둔 알바생 보람의 이야기를 꺼낸다. 여자는 보람에게 부탁받은 밀린 임금 계산서를 점주에게 건네지만, 점주는 무시해 버린다. 점주가 가고 학습지 교사가 누군가를 찾는 듯 편의점 주위를 맴돌고 있다. 한참을 편의점을 기웃거리다 포기한 듯 돌아가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있다. 학습지 교사는 아내의 두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다. 고공농성 이후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 남편을 대신해 일하는 아내는 형편이 여의치 않다. 그래도 아이들은 가르쳐야 해서 학습지를 시키고 있었다. 문제는 학습지 회비가 몇 달째 밀려 있다는 것이다.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극단 전화벨이 울린다

아내를 찾는 것은 학습지 교사뿐 아니다. 남편의 동료였던 명호는 아내를 찾아와 남편에게 주었던 삼백만 원을 갚아달라고 부탁한다. 아내는 자신도 모르는 남편의 빚에 아연실색하고 만다.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보람은 다른 알바 시간을 쪼개서 편의점을 찾아와 다시 아내에게 서류를 부탁한다. 아내에게 밀린 학습지 회비를 받으러 오는 학습지 교사 역시 회사에서 밀린 회비를 받아오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아내는 점주에게 돈을 빌려 명호의 돈을 갚는다. 점주는 어쩔 수 없이 보람의 밀린 임금을 지불하지만 그것 때문에 아내의 급여를 미루게 된다. 급여를 받으면 주겠다는 아이들의 학습지 회비는 다시 미뤄지게 된다. 더는 미룰 수 없는 학습지 교사는 만원이라도 받아야만 회사를 들어갈 수 있다는 절박함에 아내를 찾아온다. 보람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편의점을 점거하게 되고 편의점으로 들어가지 못해 가방 속 만원을 꺼내오지 못하는 아내와 그 돈을 받지 못하는 학습지 교사는 편의점 밖에서 주저앉고 만다.

무대 위의 절망은 현실 속에 비일비재하다. 어쩌면 현실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월급을 받아야 아이들의 학원비와 빚을 갚을 수 있는 우리들은 월급이 끊기면 모든 삶이 멈춘다. 멈춘 삶은 거미줄처럼 얽힌 수많은 관계를 멈추게 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또 다른 이의 삶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극은 고공농성의 절박한 현실을 땅 위 편의점이란 공간으로 내려놓았다. 농성과 협상, 단식과 협상이 수년, 혹은 십수 년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비단 특정한 사람들의 삶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양구 연출은 목동 파인텍 고공농성이 진행되던 당시 고공농성 이후를 기억하는 연극을 만들어 보자는 약속에서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를 준비하게 되었다고 했다. 편의점이란 소외된 노동 현장은 빈약한 우리의 삶을 닮았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보람과 특수고용노동직 학습지 교사들의 현실이 왜 저렇게 절실한지를 공감하기에 부족한 점은 무척 아쉽다. 남편에게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 무엇이었길래 아내의 고통이 증폭되는지 알게 되기까지 극을 한참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도 관객에겐 부담이다. 그런데도 우리 모두 한 발 내디디면 낭떠러지 같은 일상을 산다는 설정에는 공감한다. 뉴스에서나 접하는 고공농성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에 동의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아니길 바라는 그 절실한 바람 앞에 이 연극은 작은 돌멩이를 던져놓고 우리를 응시한다. 세상은 약속은 지키고 있는지, 책임진 이들은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인지. 당신의 삶은 진짜 안전한지.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공연날짜:2019년 9월 27일-10월 13일
공연장소:연우소극장
제작진:작 이연주/연출 이양구/조명디자인 고귀경/무대 디자인 조경훈
출연진:이지현, 김상보, 황순미, 조형래, 정혜지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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