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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집은 인권이다, 무엇보다 절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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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김슬찬 기자

10월의 첫번째 월요일인 2019년 10월 7일 오늘은 UN이 정한 ‘세계 주거의 날(World Habitat Day)’이다. 1986년 첫 기념행사가 ‘보금자리는 나의 권리(Shelter is my right)’라는 주제로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이후 뉴욕, 런던, 상하이 등 세계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기념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작년 세계 주거의 날에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는 ‘집은 인권이다. 정부는 주거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며,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주거권 실현이 지연되고 있다’는 공감대 형성이 오체투지라는 고행에 종교인, 활동가, 청년들이 함께 한 이유였다. 오체투지에 나선 사람들은 세 걸음을 걷고 온 몸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온전히 던져 절하고 다시 세 걸음을 걸었다. 엄동설한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며 수십,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걸었던 그 길 위였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민달팽이처럼 느린 행진을 하던 날의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고 맑았다.

그 행진 이후 1년이 지나고 다시 세계 주거의 날이 되었지만, 그동안 바뀐 것은 거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엄혹하고, 잔인한 현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8년 11월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로 사망한 7명 중 4명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정부가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수급가구였다. 2018년 12월 세입자 이주 대책이 전혀 없는 재건축사업이 진행 중이던 마포구 아현2구역의 세입자가 겨울철 강제철거로 삶의 자리를 잃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9년 8월 빈곤층이 장기 투숙하는 쪽방으로 사용되던 전주의 여인숙에서 방화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통계청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온 가족이 한방에서 살아가는 단칸방 거주 가구 등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습기와 곰팡이로 가득한 지하·옥탑 거주 가구, 비닐하우스·고시원 등 집도 아닌 주택 이외의 거처 거주 가구가 전국적으로 228만 가구에 이른다. 건강한 일상생활은 물론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지만 소득에 비해 높은 주거비를 부담하고 있는 가구가 대부분이다.

정부는 안전과 건강 심지어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열악한 주거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도 하고 있지 않고, 세입자 이주 대책이 전혀 없는 재건축사업에 대한 제도 개선도 하고 있지 않으며, 쪽방이나 고시원에 살 수밖에 없는 주거급여의 낮은 보장 수준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지 않다. 저소득층이 겪고 있는 심각한 주거권 침해를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함께 우리 사회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재정적·인적 자원이 시급하게 투입되어야 하지만 2020년 예산안에서조차 이런 변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1989년 임대차 계약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 이후 30년 동안 너무 오랫동안 한자리에 멈춰 서 있어서, 세입자의 주거권은 한 걸음도 진전되지 못했다. 공공임대주택의 절대적 부족으로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민간임대시장에서 집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들의 주거권 보호에 소홀했다. 전월세인상률상한제과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기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대해 국회에서만 10년 넘게 논의되었고, 수십 건의 법률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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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김슬찬 기자

서민과 중산층의 소득 정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임대료 규제가 없는 임대인 절대 우위의 민간임대시장에서 전월세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자료에 의하면 2011∼2019년 6월 3.3㎡당 전세가의 상승률은 전국 73.5%, 서울 89.8%로 폭등했다. 쪽방과 고시원에서도 주거환경에 비해 과다한 임대료를 부과하는 빈곤비즈니스가 활개 치고 있다. 대부분이 세입자인 청년들은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결혼과 출산 파업을 벌이고 있다.

여러 국가 및 도시에서 민간임대시장에서의 과도한 주거비 부담에 대한 해법으로 다양한 형태의 임대료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택 시장 상황에 따라 임대료 규제를 강화하기도 하고 완화하기도 하는데,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파리, 베를린 등 세계의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세입자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 임대료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2019년 2월 오리건주를 필두로 9월에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주 전역을 대상으로 임대료를 규제하는 법률이 통과되었고 콜로라도, 네바다 등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이전에는 캘리포니아, 메릴랜드, 뉴저지, 뉴욕 4개 주와 워싱턴 DC만 대도시를 중심으로 국지적으로 임대료를 규제해 왔다.

과도한 주거비 부담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나라 세입자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도 전월세인상률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소관 부처인 법무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국회라는 큰 산이 앞에 놓여 있고, ‘계약갱신구권 도입은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니,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가만히 있으라’는 일부 전문가들과 언론들의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주택은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이기 이전에 누구에게나 필요한 보금자리이다. 이 때문에, 국제 사회는 정부가 주거권 실현의 의무 주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 하에 UN사회권규약위원회와 2018년 5월 공식 방한한 UN주거권 특별보고관 레일라니 파르하(Leilani Farha)는 우리나라 정부에 민간임대시장에 대한 임대료 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2015년 제정된 주거기본법도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세계 주거의 날인 오늘 국회도서관에서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연대(주임법 개정연대)’가 출범할 예정이다. 청년과 세입자가 처해 있는 절박한 현실과 대부분 세입자인 청년들의 참여와 에너지가 주임법 개정연대의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해 ‘평생 세입자로 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청년 당사자들의 각오와 의지, 세입자로서의 강한 연대의식은 그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30년 동안 꼼짝도 않고 길 위에 엎드려 있던 세입자의 주거권이 다시 일어나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주거권 실현의 의무 주체인 정부는 물론 세입자와 청년 당사자, 시민사회, 종교계, 국회, 학계가 힘을 모을 때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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