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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박종철 열사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 검사의 불편한 동거
고 박종철 열사 영정.
고 박종철 열사 영정.ⓒ김철수 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에 위치한 모란공원 묘역은 광주 망월동 묘역, 서울 풍산공원 묘역, 부산 솥발산 묘역과 함께 암울한 한국 현대사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민주 열사들의 안식처다. 이곳엔 전태일, 이옥순, 박태순, 박윤정 등 노동운동가들을 비롯해 박종철, 박래전, 김귀정 등 학생운동가들,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 등이 잠들어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든 후에도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열사들의 영령도 이곳에서 숨쉬고 있다. ‘효순이·미선이 미군 장갑차 살인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몸 바치다 의문사를 당한 지역운동가 제종철 열사와 한미FTA 타결 반대를 부르짖으며 분신한 허세욱 열사, 2009년 경찰 강경진압에 희생된 철거민들이 대표적이다.

자연스럽게 이곳에서는 1년 365일 열사들을 추모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그런 이곳에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덮으려 했던 전직 검사가 지난달 안장됐다. 군사독재 시절 30년 가까이 검찰에 몸담았다가 김영삼 정부 시절 민자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을 지냈던 故신창언 씨다.

신 씨는 서울지검 형사2부장으로 있던 1987년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 수사팀장을 맡아 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덮으려 했다. 신 씨로 인해 박종철 열사 사망 원인이 영원히 묻힐 뻔했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 치안본부는 정권 차원의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 자체 수사를 약속받아 사건 축소에 나섰고, 고문에 가담한 5명 중 2명이 죄를 뒤집어쓰고 끝내는 것으로 정리했다. 신 씨가 이끌었던 검찰 수사팀은 경찰이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였다. 검찰은 부검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려고 했던 최환 검사를 수사라인에서 배제하면서까지 사건을 덮으려 했다.

검찰은 사건 송치 후 4일 만에 경찰의 각본대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4달여 뒤 관련 증언들을 수집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사건이 조작됐다’고 폭로한 것을 계기로 박종철 열사 죽음의 진상이 규명될 수 있었다.

당시 신 씨 밑에서 박종철 열사 사건을 은폐하는 데 가담했던 박상옥은 박근혜 정권인 2015년부터 지금까지 대법관으로 승승장구하고 있고, 또 다른 후배 검사였던 안상수는 한나라당 대표와 창원시장을 지내며 화려한 정치 인생을 영위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이 사건 처리 과정의 문제점을 다시 살폈으나, 검찰에 대해서는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경찰 치안본부가 사망원인을 조작하는 등 사건 은폐를 시도하고 고문치사의 범인을 2명으로 축소·조작한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당시 검찰에 대해서는 “실체적 진실 발견과 인권보호 의무를 방기하고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조작할 기회를 줬다”며 책임을 축소했다.

이렇게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검찰은 박종철 열사에게 지은 죄를 회피하려 한다. 조직으로부터 과오를 선처받고 생전 박종철 열사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았던 신 씨는 민주 열사들의 안식처인 모란공원에 묻혀 박종철 열사와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

강경훈 기자

법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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