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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엄마의 그림일기] 논바닥 짚더미 놀이터에 신난 아이들

홍천에 이사 오고 봄부터 여름까지 열심히 농사짓고 적응하다 작년 여름에 마을축제 준비위원으로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성남에서 몇 년동안 마을축제를 치러본 경험이 있었지만 규모도 훨씬 커지고 공간이 달라지니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화동리 마을과 함께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사랑말한우에 출근해서 자료 조사를 하고 기획서를 쓰고.

지금 생각해 보면 축제를 치를 기획서 초안을 열다섯 번 정도 썼나보다. 시골 마을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늘 꿈꾸었던 일이 논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노는 일이었다. 삭막한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이런데 와서 뛰어놀면 참 좋겠다. 도농을 잇는 다리로 시골 놀이터는 어떨까, 아이들은 놀고 엄마아빠는 수확해서 반찬 만들어 가면 어떨까? 요즘은 시골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언제든 찾아 갈 수 있는 시골을 만들어 주고, 얼굴 있는 농산물도 서로 팔아주면 좋겠는데. 도시에서 살다가 ‘번아웃’ 된 사람들은 마을 가운데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루이틀 묵고, 논일 밭일도 하면 힐링도 되고 좋을 텐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밌는 상상이다.

홍천 와서 많이 들은 말이 “여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었다. 화려한 관광지도 없고 문화콘텐츠도 없고 역사유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외지인인 내가 보기엔 멋진 산도 있고, 논에서 유유히 걸어 다니며 날개를 펴는 커다란 하얀 새도 멋지고, 밭에 피어나는 갖가지 꽃과 열매도 아름답고, 세상의 박물관 같은 할머니들이 있다. 홍천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강원도이고 아직 시골이라는 게(?) 무엇보다 큰 장점으로 보인다. 다른 곳 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시골의 장점을 살려 무엇인가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꿈틀꿈틀 솟아올랐다.

“이번 축제에는 논에 놀이터를 만들어 보면 어때요? 그곳엔 짚, 나무, 흙과 같은 자연물을 잔뜩 쌓아놓고 아이들이 더러워져도 마음껏 놀 수 있게요. 어린 시절엔 그렇게 놀았잖아요,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시골의 재미를 느끼게 해보면 어떨까요?”

제안은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여져서 순식간에 축제장으로 쓰는 논 외에 놀이터 만들 논 하나를 더 빌리고 트럭으로 15대 분량의 마사토를 가져다 붓고 포크레인이 하루 종일 땅을 다졌다. 꿈만 꾸던 일이 눈앞에서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은 경이롭고 감사한 일이었다. 상상이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되다니.

한편으론 이렇게까지 중장비가 동원되어 열심히 고생해 주시는데 흥행이 안 되면 어쩌지 불안하기도 하다. 논을 질척거리지 않을 만큼 흙을 다지고 나니까 처음 생각했을 때 굉장히 높을 줄 알았던 흙더미는 에게게 소리가 나올 만큼 쬐그매 보였고 아직 추수할 시기가 안 되어 짚단을 구하는 것도 어려워 소 키우는 농가에서 간신히 트럭한대 가져 온 짚풀도 한숨 나올 만큼 작았다. 놀이터 만드는데 신이 나신 반장님은 짚풀이 더 높이 쌓여야 스릴 넘치고 재밌는데 하며 아쉬워 하셨다. 거기에 나무 기둥 몇 개를 가져다가 톱으로 토막토막 잘라서 세워놓았다. 우리가 만든 시골놀이터의 첫인상은 정말이지 깜짝 놀랄 만큼 볼품이 없어보였다.

면에 딱 하나 있는 초등학교 학부모회, 마을의 젊은 엄마들과 시골놀이터 준비위원회도 구성했다. 아이들이 과연 잘 놀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으니 우리는 먼저 ‘놀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접근해 보았다. 놀이전문 강사님을 모시고 놀이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는 강의를 듣고 자신감을 채웠다. 사전에 놀이터 개장 행사를 열어 근방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초청해서 놀이 선생님과 시범으로 놀아보고 가능성을 확인했다.

드디어 축제날! 메인 행사장 옆 시골놀이터에서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짚풀 위에서, 나무 위에서, 흙더미 위에서 놀았다. 이틀 내내 삽질을 해서 놀이터의 모양을 훌륭하게 완성한 어린이도 나타났다. 아이들이 실컷 놀 수 있게 먼저 지치는 엄마아빠를 위해 캠핑의자와 해먹을 갖다 놓은 건 신의 한수이다. 엄마아빠가 힘들면 아이들에게 빨리 집에 가자고 보채게 된다. 아이들은 놀다가 떡도 구워먹고, 마시멜로도 구워먹고, 도자기용 흙으로 흙놀이도 하고, 새도 보고, 나비도 보고, 소도 보고, 미꾸라지도 잡았다. 젊은 엄마아빠들은 다른 것 보다 논과 밭에서 아이들이 논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고 했다.

과자봉지 꼭 쥐고 짚더미 위로 날아다니는 아이들
과자봉지 꼭 쥐고 짚더미 위로 날아다니는 아이들ⓒ박지선
어디에서 덜컹거릴지 모르는 낮은 미끄럼틀이 더 무섭고 스릴 있다
어디에서 덜컹거릴지 모르는 낮은 미끄럼틀이 더 무섭고 스릴 있다ⓒ박지선

축제를 마무리 하고 시골놀이터를 함께 준비했던 엄마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게 정말 되는 일이네요?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과연 가능한 일인가 했는데. 아이들이랑 부모들이 이렇게나 좋아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한다.

올해는 더 큰 흙더미와 더 큰 짚더미를 야심차게 준비했다. 나무 기둥도 조금 더 긴 것으로 포크레인까지 동원해서 땅에 심어 보았다. 그래도 역시나 조촐해 보인다. 놀이터를 완성하는 건 아무래도 아이들이다. 놀이 천재 아이들이 와서 나머지 99%를 채워주리라.

박지선 마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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