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사설] 노동존중과 점점 멀어져가는 ‘주 52시간제 보완책’ 주문

문재인 대통령은 8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내년에 중소기업까지 확대하는 주 52시간제의 보완책을 서두르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도 300인 이상 기업들의 경우 비교적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도 50인 이상 기업으로 확대 시행되는 것에 대해서는 경제계의 우려가 크다”라며 “기업들의 대비를 위해 탄력근로제 등 보완 입법의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기업이 준비가 안 됐다는 명분으로 탄력근로제를 대폭 확대해달라는 경제계의 요구를 수용한 발언이다. 이에 장시간 저임금 노동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즉각 비판했다.

주 52시간제는 세계 최장 노동시간으로 한 해 370명이 죽는 ‘과로사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기로 하고 2018년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돼 차차 그 시행 범위를 늘리는 중이다. 경제계의 반발을 고려해 중소기업은 1년 6개월 유예기간을 두었다. 새로 주 52시간제가 새로 적용될 사업장은 299인 이하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2만 7천개로 추산된다. 주 52시간제가 본격적인 가동시기를 맞는 셈이다.

이제 두 달 후면 중소기업까지 주 52시간제를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너무 앞서나간다”고 주52시간제 시행 시기를 늦추거나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이들의 손을 들어주며 주 52시간제 보완책을 주문한 것이다. 주 52시간제 안착을 위해 정부가 자처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경제계 눈치를 보며 보완책을 마련해주는 식으로는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 회초리를 들고 확실히 관리 감독해도 모자랄 판에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격으로 잘못된 시그널을 주면 제도의 안착은 고사하고 여기저기 반발만 살 뿐이다. 결국 문 대통령의 주문이 주 52시간제를 안착시키는 방향으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 52시간제 도입 취지를 흔들고 후퇴시킨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주 52시간제 도입을 둘러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노동존중’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주 52시간제로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탄력근로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다. 일이 많을 때는 야근, 철야로 일을 몰아서 시키고 일이 없을 때 휴식을 주며 주 52시간을 채운다는 점에서 탄력근로제는 ‘과로사 조장법’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빛 좋은 개살구’로 조롱받는 노동개악이다. 최저임금 1만원을 추진하면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줬다 도로 뺏는 식의 노동정책은 그야말로 ‘노동존중’이 빠져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 대통령의 노동 정책은 추진하면 할수록 ‘노동존중’과 멀어지는 모양새다.

올해만 해도 과로사로 숨진 집배원이 13명이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저녁 있는 삶’이나 ‘워라벨’은 딴 세상 이야기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게 걸었던 기대가 허물어져 가고 있다.

민중의소리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