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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올해 한국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음반

전통을 활용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보존, 인용, 재창조다. 전통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지키는 보존이 있고, 전통의 재료나 방법론을 따서 쓰는 인용이 있고, 전통을 전통 바깥의 방법론과 결합시켜 새롭게 만드는 재창조가 있다. 흔히 국악이라고 부르는 한국 전통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이라고 믿는 양식을 똑같이 재현하려 애쓰는 이들과, 한국 전통음악 악기나 어법 등을 필요에 따라 적용하는 이들과, 전통을 최대한 변형시키는 이들이 공존한다.

블랙스트링은 어느 쪽일까. 기타리스트 오정수, 대금연주자 이아람,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 타악연주자이자 소리꾼인 황민왕이 결성한 크로스오버 밴드 블랙스트링과 이들의 두 번째 음반 [Karma]는 어느 쪽일까. 이번 음반은 독일의 재즈 레이블 ACT에서 나왔고, 베트남계 프랑스 기타리스트 누엔레가 참여했다. 수록곡은 9곡. 이 중 ‘Song of the Sea’는 한국의 바닷가에서 부르는 민요를 토대로 했고, ‘Exhale-Puri’는 제목 그대로 액살풀이를 다시 노래하고 연주했다. ‘Breating Road’는 풍물가락 중 하나인 길군악을 모티브로 했다.

하지만 나머지 5곡은 완전한 창작곡이고, ‘Exit Music’은 라디오헤드의 히트곡을 재해석한 곡이다. 수록곡의 면면을 보면 블랙스트링이 어떤 음악을 추구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블랙스트링은 전통을 재창조할 뿐 아니라, 전통의 방법론을 전통 바깥의 방법론과 결합시켜 새롭게 만드는 쪽이다.

무심해지기 불가능할 만큼 곡의 흡인력이 강한 노래

첫 번쩨 곡 ‘Surena’는 “남아메리카의 아름다움을 그린 곡”이고, 두 번째 곡 ‘Hanging Garden of Babylon’은 “BC 6세기경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 왕이 사랑하는 왕비 아미타를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속의 인공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다. ‘Elevation of Light’는 “우주의 빛, 그 신비로움을 표현한 곡”이며, ‘Karma’는 “길고 영원한 업의 세계를 표현한 곡”이다. 마지막 곡 ‘Blue Shade’는 “블루스 음계와 한국전통음악의 메나리 선율을 함께 콜라보한 곡”인데, 오넷 콜맨의 곡 ‘Lonely Woman’ 선율을 차용한 곡이기도 하다. 곡 설명만 읽어보아도 블랙스트링의 시선이 한국이라는 지역에만 머물지 않음을 금세 알 수 있다. 블랙 스트링의 멤버 중 다수가 국악기를 연주하지만, 블랙스트링은 크로스오버이며 월드뮤직에 가까운 팀임을 알 수 있다. 아니 그보다 장르와 지역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소리의 창조자이자 매개자로서 계속 도전하고 실험하는 자유로운 뮤지션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블랙스트링의 정규 2집 [Karma]는 첫 음반에 비하면 훨씬 선율과 장단의 반복이 도드라진다. 한국 전통음악에 기반한 팀답게 한국의 장단에서 출발한 크로스오버 음악을 들려주었던 1집에 비하면 이번 음반에서는 장단과 결합시킨 멜로디가 장단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선명하다. 일반적인 대중음악처럼 노래를 부르면서 기승전결 구조를 분명히 하지 않는 음악이지만, 블랙스트링은 인상적이고 동일한 장단을 반복하면서 또렷한 테마를 제시하고, 이를 변주하면서 곡의 서사를 확장한다. 그래서 노래가 없고, 익숙하지 않은 악기들이 어울리며 등퇴장하는데 곡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곡에서 무심해지기 불가능할 만큼 곡의 흡인력이 강하다.

첫 곡 ‘Surena’부터 거문고가 제시하는 테마는 선명하다. 그런데 여기에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곧바로 결합하면서 몽환적인 사운드로 블랙스트링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대금이 등장하면서 테마를 변주하고, 환상적인 사운드를 더욱 그윽하게 이어갈 때, 남아메리카이거나 아닌 다른 시공간으로 빠져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 후 등장하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 역시 몽롱한 아름다움을 이어간다. 연주하는 악기가 다르고 소리의 질감 역시 다르며, 장구와 거문고가 장단을 빠르게 바꾸어도 몽롱한 무드와 멜로디 악기들의 선명한 테마 연주는 곡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곡의 후반부에서 모든 악기들이 자유분방하고 격한 연주를 이어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지키면서 변화하고 변화함으로써 더욱 묵직해진 음악 ‘블랙스트링’

블랙스트링
블랙스트링ⓒ(주)씨앤엘뮤직

두 번째 곡 ‘Hanging Garden of Babylon’에서는 신디사이저와 태평소의 협연으로 만드는 환상적인 사운드와 명료한 멜로디가 곡을 주도한다. 그 다음은 장단의 차례이다. 돌연 속도감을 불어넣는 퍼커션과 양금 같은 악기들의 연주 역시 또렷한 장단과 가락을 연결해 반복하면서 일렉트릭 기타를 비롯한 악기들을 변주함으로써 중심과 탈주를 교차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심은 더 선명해지고, 소리의 영역은 더 넓어진다. 블랙스트링의 이번 음반을 듣고 즐기는 방식은 이처럼 순도 높은 테마 멜로디와 장단에 빠르게 빠져드는 일이고, 그 테마를 변주하는 블랙스트링의 인터플레이를 세심하게 따라가는 일이다. 어느 쪽이 먼저라거나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블랙스트링은 매 순간 밀도 높고 뜨거우며 화려하다.

처음부터 빠르게 혼돈스러운 사운드를 먼저 풀어놓는 ‘Elevation of Light’에서도 블랙스트링은 거문고와 기타 연주로 귀에 확 들어오는 연주를 버리지 않는다. 여기에 다른 악기들이 제 역할을 하면서 우주의 빛은 뻗고 타오르고 움직인다. 역동성과 눈부심을 재현하는 연주는 속도를 바꾸며 영롱함과 신비로움을 놓치지 않는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악기로 최대한 표현하는 소리의 파동으로 곡은 실체를 재현할 뿐 아니라 충만하게 체감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런데 ‘Song of the Sea’에서 블랙스트링은 황민왕의 노래와 팀의 연주를 함께 배치한다. 민요를 노래할 때 대개 연주하는 악기의 방법론과 다른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노래의 기상 안에 잠재하지 않았거나 잠재했으나 부각되지 못한 영적인 기운을 노래에 실어낸다. 그 결과 이 곡은 민요라는 재료를 가지고 얼마나 다른 소리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소리가 얼마나 보편적인 감각을 담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게다가 노래를 진행하면서 변화하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한국 전통음악의 혼곤함까지 표현해냄으로써 다른 악기로도 같은 질감에 이를 수 있음을 증명한다. 블랙스트링은 이렇게 전통의 계승과 재창조를 동시에 이뤄냄으로써 한국 크로스오버 음악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채운다.

거문고와 기타의 앙상블로 연주한 ‘Exit Music’은 고아한 한국 전통음악의 질감으로 버무렸고, ‘Exhale-Puri’는 황민왕의 노래에 거문고와 일렉트릭 기타를 앞세워 질박함을 보존하면서 극적으로 격렬하게 연출했다. 기원의 뜨거움은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새로워진다. 뿐만 아니라 노래를 멈춘 순간 단소 연주가 흘러나올 때 기원의 마음은 더 은근하고 깊어진다. 원곡의 이야기를 최대한 복원하면서 새롭게 잇는 솜씨가 단단한 곡이다.

타이틀곡인 ‘Karma’는 가장 길면서도 정적인 속도로 “길고 긴 업의 세계를 표현”한다. 범패와 거문고, 대금, 소리가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실려 둥실둥실 흘러갈 때 우리는 누구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삶이라는 업을 마주하게 된다. 슬픔과 고통, 기쁨과 안타까움으로 버무려진 삶의 초상 같은 곡이다. 반면 길군악을 모티브로 한 ‘Beating Road’는 원곡의 기운을 해사하고 앙증맞게 풀다가 일렉트릭 기타를 동원해 농염하게 변화시킨다. 좀 더 길게 놀았어도 좋을 곡이다. 음반을 농염하게 마무리하는 ‘Blue Shade’까지 대담하면서도 서정적인 사운드는 멈추지 않는다. 지키면서 변화하고 변화함으로써 더욱 묵직해진 음악. 블랙스트링은 이렇게 올해 한국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음반을 완성했다. 이제 듣는 일만 남았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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