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동물에게 권리를” 200kg 콘크리트에 몸 결박하고 도살장 막은 사람들

“우린 합법이야. 정부에 허가 맡고 세금도 낸다고.”
“닭들에게도 허락 맡으셨나요?”
“미치셨어요?”

세계 동물의 날인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용인의 한 도계장. 방역복을 입은 동물권 활동가들이 카메라를 든 채 난입했다. 도살된 닭을 가공하던 직원들은 카메라부터 뺏었다.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폭력을 멈춰주세요” “(방금 촬영한 영상 파일) 당장 지워!” “무엇을 숨기고 있습니까?” “나가라고!” 한참을 실랑이하던 끝에 이들은 도계장 밖으로 밀려났다.

끝인가 싶었는데, 시작이었다. 시멘트로 가득 찬 여행 가방 안으로 서로의 손을 결박한 활동가 4명이 도계장 입구를 가로막고 누워있었다. 시멘트가 약 200kg에 달해 강제집행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국, 영국, 멕시코 등 전 세계 14개국 29개 도시에서 진행된 ‘글로벌 락다운’(lockdown·도살장 등을 점거하는 동물권 직접 행동)에 한국이 동참한 건 처음이다.

경기도 용인의 한 도계장에서 동물권리장전을 선언하는 디엑스이 서울 활동가들과 시민들
경기도 용인의 한 도계장에서 동물권리장전을 선언하는 디엑스이 서울 활동가들과 시민들ⓒ동물권리장전 코리아
약 200kg 시멘트로 채워진 여행가방에 서로의 몸을 결박하고 도살장 입구를 가로막은 네 명의 동물권 활동가들
약 200kg 시멘트로 채워진 여행가방에 서로의 몸을 결박하고 도살장 입구를 가로막은 네 명의 동물권 활동가들ⓒ동물권리장전 코리아

“모두 같은 생명체입니다. 쓰이기 위해, 죽기 위해 태어나는 생명은 없어야 합니다” 이날 디엑스이서울(DxE-Seoul·Direct Action Everywhere-Seoul) 등 활동가들과 시민 60여 명은 동물권리장전을 선언했다. 비인간 동물이라는 이유로 착취당하고 살해당하지 않을 권리, 동물 존재 자체로 보호받을 권리를 법제화하자는 목소리다.

동물권리장전은 로즈 법(Rose`s law)에서 출발했다. ‘로즈’는 지난해 동물권 직접 행동 단체인 디엑스이(DxE)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양계장에서 공개 구조(Open Rescue·오픈레스큐)한 닭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닭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로즈 법은 생존자인 로즈처럼 모든 동물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통과 착취의 상황에서 구조될 권리 ▲보호받는 집, 서식지, 또는 생태계를 가질 권리 ▲법정에서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법에 따라 보호받을 권리 ▲인간들에게 이용·학대·살해당하지 않을 권리 ▲소유되지 않고 자유로워질 권리 또는 그들의 권익을 위해 행동하는 보호자가 있을 권리 등이다.

현재 시행되는 동물보호법과는 차원이 다르다. 동물보호법은 학대 등을 방지하며 동물을 보호할 대상으로 여길 뿐, 그 자체로 권리를 가진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행법이 정한 학대 범위는 매우 좁아서 밀집 사육, 도축 등 농장 동물이 일상적으로 겪는 폭력과 착취는 인정받지 못한다. 축산법 역시 동물 권리가 아닌 축산이 목적이다.

“동물 살해는 합법이고, 동물 구조는 불법이냐”
9천 마리 닭 마주하자 “죄책감 든다”

“왜 남의 영업장에서 행패야” 영업 방해라며 신고부터 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살고 싶은 동물을 살해하는 건 합법이고, 고통받는 동물을 구조하는 건 불법인 현실이 이상하지 않냐”라고 따져 묻는다. 부당한 법에 저항하는 시민불복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어 “살아있는 동물을 살해해 이윤을 얻는 행위는 영업이 아니기에 영업방해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락다운’으로 도살·가공 등 도계장의 모든 업무가 마비됐을 즈음 트럭 한 대가 진입했다. 도살될 닭 4천5백여 마리가 날갯짓도 한 번 못 할 만큼 닭장 안에 빽빽했다. 뒤이어 한 대가 더 들어왔다. 총 9천여 마리의 닭들을 실은 트럭은 도살장 입구 앞에서 오도 가도 못 하게 됐다. 죽음의 시간을 잠시 멈춘 시민들은 닭들을 마주했다.

한 트럭에 약 4천5백~5천 마리의 닭들이 타고 있다.
한 트럭에 약 4천5백~5천 마리의 닭들이 타고 있다.ⓒ동물권리장전 코리아
트럭을 타고 도살장에 실려 온 닭들
트럭을 타고 도살장에 실려 온 닭들ⓒ동물권리장전 코리아

상상 속 닭의 모습이 아니었다. 털은 숭숭 빠졌고, 틈새로 드러난 피부는 시뻘겠다. 피부병에 걸린 상태였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꼬꼬댁’은커녕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들은 ‘삐약삐약’ 작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닭이 아니라 ‘병아리’였다. 육계로 자란 닭들은 태어난 지 30일 만에 도살장 신세다. 닭의 평균 수명은 8~10년이다.

시민들은 오랜 시간 달려왔을 닭들에게 물을 주고, 닭장에 ‘로즈 법’을 상징하는 장미꽃을 매달았다. 문수영 씨는 “저는 닭만 먹지 않는 게 아니라 인간도 먹지 않는다. 어떤 생명도 맛을 위해 이용돼선 안 된다”라며 “저는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동물들의 고통을) 알게 돼서 실천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성엽 씨는 “실제로 동물을 마주하니 죄책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육식할 때는 죽음과 고통의 현장에서 떨어져 있다. (동물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모르면 ‘맛있다’는 이유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들으니 ‘나였으면’ 하고 투영된다. 그들을 먹어왔던 과거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죄책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닭장 속 빽빽하게 갇혀있는 닭들
닭장 속 빽빽하게 갇혀있는 닭들ⓒ동물권리장전 코리아

한 도계장 직원은 “나도 개고기를 안 먹게 됐다. 그러나 강아지와 닭은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에 은영 활동가는 “모두 같은 동물”이라며 ‘종 차별적’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는 “도살장에 실려 온 닭들은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처럼 하찮게 다뤄진다. 그래야 종 차별을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개나 고양이처럼 바라본다면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은영 활동가는 “오히려 이(해당 직원의) 목소리가 희망적”이라며 “(동물을) 먹다가 언제든지 안 먹을 수 있다. (이 직원은) 앞으로 (농장 동물을) 먹지 않을 수 있는 분이다”라고 말했다.

도계장 입구를 가로막고 동물권리장전을 선언하는 시민들
도계장 입구를 가로막고 동물권리장전을 선언하는 시민들ⓒ동물권리장전 코리아
도계장 앞에서 동물권리장전을 선언하는 시민
도계장 앞에서 동물권리장전을 선언하는 시민ⓒ동물권리장전 코리아

“사회적 차별과 멸시,
인간이 동물 대하는 태도의 연장선”

도살장에 들어간 닭들은 산 채로 갈고리에 다리가 걸린다. 전기가 흐르는 물에 닭의 얼굴을 담가 기절시킨다. 바로 목을 자르는 칼날이 이어지지만, 전살 공정이 허술한 탓에 많은 닭이 의식이 있는 채로 피가 뽑힌다. 푸드덕 거리다가 자동 칼날도 피한 닭들은 목이 비틀려 죽는다. 이는 대부분 이주 노동자들의 몫이다.

“어차피 죽을 거 왜 가로막고 있는 거냐” 닭들이 더위에 폐사할까 봐 직원들은 전전긍긍했다. 은영 활동가는 “우린 이미 닭의 시간을 벌어냈다. 죽기 직전 닭의 모습을 오랫동안 멈춰두고, 그 순간들을 도살장 직원들, 경찰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죽음의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점차 시간이 흐르자 한 직원은 닭장 속에서 죽은 닭 한 마리를 꺼내 누워있는 활동가들 옆에 팽개쳤다. “너희들이 죽였다. (닭이) 불쌍해 죽겠다” 활동가들은 자신이 깔고 있던 담요로 죽은 닭을 감싸고 시위가 끝날 때까지 안고 있었다. 이들은 “맞다. 우리가 죽였다. 살고 싶었던 그의 죽음에 책임이 없는 인간은 없다”라고 지적했다.

죽은 닭 '구름이'를 안고 있는 활동가
죽은 닭 '구름이'를 안고 있는 활동가ⓒ동물권리장전 코리아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이은조 씨는 대표적인 채식주의자 배우 나탈리 포트먼의 말을 빌리며 “우리가 겪는 사회적 차별과 멸시는 많은 부분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것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노예제도, 고문, 생체실험, 전쟁 속 살육을 포함해 일상 속에서 행해지는 인종차별, 성차별, 각종 사회적 혐오는 모두 내 앞의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는 멸시와 분리에서 기인했다”라며 “돼지는 돼지에 불과하며 사육하고 도축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과 노예는 노예일 뿐이며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시각은 근본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날 오후 5시 무렵부터 강제집행이 시작됐다. 경찰은 전기톱으로 시멘트를 가르고 활동가들의 팔을 결박하던 쇠사슬을 끊어냈다. 이 과정에서 탈진한 활동가와 팔과 다리에 마비가 온 활동가 2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시위 참여자 중 활동가 5명이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약 200kg 시멘트로 가득 찬 여행가방에 서로의 몸을 결박하고 도살장 입구를 가로막은 동물권 활동가들
약 200kg 시멘트로 가득 찬 여행가방에 서로의 몸을 결박하고 도살장 입구를 가로막은 동물권 활동가들ⓒ동물권리장전 코리아

“벌벌 떨렸지만 ‘인권’을 가진 난 죽지 않았다”
“어떤 비인간 동물도 죽음 원치 않는 것 명백한 진실”

몸을 결박했던 활동가들은 며칠 후 페이스북을 통해 “비인간 동물이 되어본 느낌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유비 활동가는 “다 밀어버려. (한 도살장 직원은 트럭이 진입하던 당시 이렇게 말했다) 몸을 돌리기도 어렵고 눈을 마주칠 용기도 없어 차가 가까이 오는 소리를 벌벌 떨며 듣기만 했다”라면서도 “그래도 스스로를 안심시킬 수 있었다. ‘인권’을 가진 나는 여기서 차에 치여 죽지 않을 테니”라고 말했다.

이어 “가장 낮은 곳에 묶인 채 갇힌 그들을 바라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지만, 평생 그들을 모를 것이다”라며 “동물권 제정을 위해 누웠는데 역설적이게 내 인권의 거대함만 알게 되어버린 날이다. 인권은 곧 동물권이고, 동물권은 곧 인권이다. 우리는 모두 동물이다”라고 말했다.

향기 활동가는 “비인간 동물들이 어떤 끔찍하고 부당한 폭력을 겪든 얼마나 살해당하던 합법이라는 단어 하나에 동물들을 살리기 위한 모든 행동이 억압받았다”라며 “아무리 그럴듯하게 법을 만들어도 트럭 속에 닭들이 살고 싶어 한다는 것과 어떤 비인간 동물도 죽음을 원치 않는다는 게 가장 명백한 진실이고 정의”라고 강조했다.

자야 활동가는 “동물권리장전을 요구한다. 그저 이용 거리로 세상에 태어나 철저히 은폐되는 삶을 살다가 죽임당할 때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그들의 삶이 지속하는 한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다른 인권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라며 “가장 멸시받고 지워지는 존재들의 권리가 존중받기 시작할 때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폭력 시위를 뜻하는 브이를 높이 올린 시민들
비폭력 시위를 뜻하는 브이를 높이 올린 시민들ⓒ동물권리장전 코리아

강석영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