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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극우집회가 ‘10월 항쟁’이라니...
지난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 촉구 집회’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0.09
지난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주최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 촉구 집회’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0.09ⓒ김철수 기자

지난 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극우단체 집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단상 위에 올라 “이것은 10월 항쟁”이라며 “4.19와 6.10보다 우리가 훨씬 더 많이 모였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집회의 참가자 실제 규모를 떠나 ‘4.19혁명’, ‘6월 민주항쟁’과 비교한 것도 참을 수 없지만, 이날 집회를 ‘10월 항쟁’이라 칭한 것은 ‘10월 항쟁’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실제 ‘10월 항쟁’은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시작돼 한강 이남 전역으로 번진 민중항쟁으로, 당시 미군정과 미군정의 비호 아래 살아남은 친일파들을 향해 민중들의 분노가 표출된 사건이었다.

당시 ‘9월 총파업’이 활발히 진행되던 대구에서는 10월 1일 민중들이 대거 파업단에 가세했다. 수천명의 민중들은 대구시청에 몰려가 일제와 달라진 것이 없는 미군정의 식량배급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던 중 대치하고 있던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 2명이 사망하자 민중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다음날 대구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는 항쟁으로 커졌고, 민중들은 대구경찰서를 접수하고 친일 경찰들을 공격했다. 당시 공무원들도 파업에 참여했으며, 의사들도 ‘경찰은 시민들에게 발포하지 말라’는 성명서를 내 동참했다.

대구 민중들의 항쟁에 미군정은 계엄령을 내리고 전차 4대와 경찰력을 대거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했다. 경찰은 물론이고 미군, 심지어 우익청년단까지 합세한 야만적인 진압으로 경북지역에서만 수백 명이 사망했고 7,000여 명이 검거됐다.

무력진압으로 대구에서의 항쟁은 표면적으로 일단락됐으나 불씨는 전역으로 퍼졌다. 경북 대부분 지역으로 번진 항쟁은 같은 해 12월 중순까지 한강 이남 모든 지역으로 퍼져나갈 때까지 계속됐다.

1946년 10월 2일 대구 항쟁 당시 발포 현장 사진
1946년 10월 2일 대구 항쟁 당시 발포 현장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항쟁에 참여한 민중들 상당수는 이후 들어선 이승만 정권의 사면 약속을 믿고 국민보도연맹에 이름을 올려 ‘보도연맹 학살사건’의 희생자로 이어졌다. 또 당시 항쟁에 참여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 박상희가 추격하던 경찰에 의해 사망해 박 전 대통령이 남로당에 가담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10월 항쟁’은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이었다.

‘10월 항쟁’은 해방 후에도 득세하던 친일파의 처단을 요구한 친일청산투쟁이었으며 이를 비호하던 미군정을 비판한 반미투쟁이었다. 항쟁 당시 민중들이 외친 “왜놈순사들이 어찌우리를!!”이라는 구호는 당시 민중들의 정서를 한마디로 대변한다.

‘10월 항쟁’은 그저 10월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그 자리에서 박수 한번 받아보자고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 해방 이후 새로운 질서를 원했던 민중들의 소망이 표출된 사건이며, 미군정과 국가폭력으로 많은 민중이 희생된 역사의 상처다.

그럼에도 ‘친일정당’이라 비판받는 정당의 의원이 성조기가 나부끼는 자리를 두고 ‘10월 항쟁’이라 입에 담다니 희생자와 유가족이 들었다면 통탄할 일이다. 역사에 대한 무지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거나, 항쟁 희생자들을 욕보이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자신의 정당이 ‘정치적 고향’이라 부르는 대구의 가장 아픈 역사에 대해 정작 무지했다는 것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10월 항쟁’에 무지한 김 의원에게 지금이라도 근현대사 서적을 읽어보기를 당부하고 싶다.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이 자국의 역사에 무지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아울러 부디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을 세겨 모르면 말을 아끼는 자세를 가지기를 권한다.

김백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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